# 2012년 9월. 1등 신문이라고 자랑하는 종합일간지 1면에 나주 초등생 성폭행범 피의자 고종석의 얼굴이라고 설명한 사진 한 장이 게재됐다. 그런데 사진 속 인물은 범죄와 전혀 상관 없는 일반인으로 밝혀졌다. 이 신문은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일순간 범죄 피의자가 돼버린 사진 속 인물의 피해는 심각했다.

# 직장인 A씨는 가수 아이유와 블랙핑크를 좋아해 구글 뉴스피드로 이들이 검색어로 잡힌 뉴스가 모바일 창으로 뜨게 했다. 아이유가 제목에 들어간 뉴스가 떴길래 클릭을 했더니 가나 국적 축구 선수인 안드레 아이유의 근황 소식이다. “리사, 결혼발표… 팬들 멘붕”이라는 뉴스에도 클릭을 했더니 일본 가수 리사의 소식이다. A씨는 자신이 언론의 제목 장사에 낚였다며 한숨을 쉬었다.

# 검색창에 ‘오늘의퀴즈’ 혹은 ‘오퀴즈’라는 단어를 쳐보자. 퀴즈를 일정시간까지 풀면 소정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 수많은 매체의 뉴스로 도배돼있다. 포인트 업체는 상품 홍보를 하고 언론 매체는 트래픽을 얻는다. ‘퀴즈 뉴스’의 유효시간은 반나절도 되지 않는다. 이런 기사를 쓰는 기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트래픽에 눈이 멀어 제목을 가지고 장난을 친 뉴스가 포털에 돌아다닌다. 기자는 선정적이고 저질적인 콘텐츠을 내세워 독자를 사냥한다. 사실 확인이 미흡한 오보로 인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사례도 꽤 많다. 한국 사회 언론의 신뢰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이런 뉴스 때문에 기자라는 직함은 불명예스러운 그 무엇이 돼버렸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 같은 문제에 도통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진영을 성가시게 구는 뉴스를 ‘가짜뉴스’로 규정한다. 지난 정권에서 민주당이 추진한 언론의 징벌적손해배상은 언론 피해 구제책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가짜뉴스 개념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결국 언론 탄압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 지난 9월12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 방지에 대해 발언했다. 사진=윤석열 유튜브
▲ 지난 9월12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 방지에 대해 발언했다. 사진=윤석열 유튜브

현 정권과 여권은 오보에 대해서도 가짜뉴스라고 정의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규제에만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에 정치 진영을 검증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보도의 흠결을 최대치로 부풀리고 가짜뉴스로 낙인을 찍는다. 오보 피해를 줄이고 바로잡는건 당연하지만 이를 의도된 가짜뉴스로 규제하는 것은 사실상 검열이다.

충분하지 않지만 현행법 체계에서 오보 피해는 배상할 수 있다. 오보 매체와 기자는 독자로부터 저널리즘 원칙과 윤리를 지키지 못했다고 비난받는다. 오보를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이젠 단순 오보조차도 하게 되면 매체 폐간을 걱정해야되는 판이다. ‘가짜뉴스 기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른 매체로 이직할 수 없는 상황도 올 수 있다.

‘오보=가짜뉴스’ 등식은 언론자유의 저지선을 급속히 무너뜨리는 위험을 낳고 있다. 가짜뉴스 즉, 허위조작정보라고 밝혀져도 그 규제 방향과 방안이 옳은지 따져보고 ‘핀셋’에 가까워야 하는데 오보조차도 도끼로 베어버리자는 형국이다.

이렇다보니 소송이 걸린 언론 보도에 당국의 수사 결과를 보고 규제해도 늦지 않는다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언론자유를 지키는 심리적 저지선이 강력한 가짜뉴스 규제책에 흔들리고 후퇴한 것이다. 일례로 방송사고를 낸 YTN 압수수색이 제동이 걸려 다행이지만 경찰이 압수수색을 신청한 것부터 언론자유 저지선이 크게 낮아져버린 것이다.

특히 인터넷신문 심의까지 가능토록 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가짜뉴스 대응방안은 한국 언론 자유 문제를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정보통신망법에 근거해 심의하겠다고 하지만 법 적용에 논란이 있고, 언론중재법 적용을 받는 이중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심의 절차에 매체 당사자가 참여하는 것도 여의치 않고 심의 조치 결과도 행정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언론중재위원회.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언론중재위원회.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언론중재위원회가 언론 보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등 중재에 역점을 두고 있는 기구라면 방통심의위의 인터넷언론 심의는 가짜뉴스 정의를 둘러싸고 갈등을 증폭시켜 소송으로 가는 수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막지 못하면 한국 언론은 가짜뉴스라는 감옥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언론자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의식이 커져야 한다. 윤석열 정권은 언론탄압 정권이라고 이미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