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MBC사옥.
▲서울 여의도 MBC사옥.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11일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해임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앞서 방통위는 지난 8월21일 권 이사장을 해임 처분했는데, 법원은 해임 처분 취소소송 1심 선고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효력을 정지하도록 결정했다. 공영방송 이사의 해임 처분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집행정지 결정문에서 “방송문화진흥회법은 별도로 징계 절차나 해임 사유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방통위에 방문진 이사를 해임할 권한이 있다 하더라도, 이사의 특정한 행위를 해임 사유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이사의 임기를 법률이 명시적으로 보장한 취지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권태선 이사장) 해임 사유 중 상당 부분은 방문진 이사회가 심의‧의결을 거쳐 그 의사를 결정했거나, 그 심의‧의결과 관련된 사항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며 “신청인(권태선)이 방문진 이사장으로 방문진을 대표하고 업무를 총괄하는 지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사안에 대해 이사 개인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방통위가 통보한 권태선 이사장 해임 사유는 △과도한 MBC 임원 성과급 인상 방치 △MBC 및 관계사의 무리한 투자로 인한 경영손실 방치 △MBC 부당노동행위 방치 △MBC 사장에 대한 부실한 특별감사 결과에 대한 관리 감독 부실 △MBC 사장 선임 과정에서 부실 검증 △방문진 임원 부적정 파견으로 MBC 감사 업무 독립성 침해 △사장 선임 과정에서 지원서 허위 사실 기재한 후보자가 최종후보자 3인에 선정되도록 방치 △공공기록물 폐기 및 무단 유출에 따른 법 위반 △감사 방해 및 감사 지연에 따른 법 위반 등이다. 

이에 방문진 이사회는 지난달 8일 입장문을 내고 “방통위가 해임사유로 적시한 사안들은 이사회 논의를 거쳐 정당하게 수행한 업무이거나 현 이사회 재임 기간 이전에 발생한 사안으로서, 이사회는 위 사안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리 감독을 했으며 방치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2023년 2월 사장 선임 절차는 시민평가단을 거쳐 이사회에서 논의‧진행한 것으로 특정 이사 해임 사유가 될 수 없다. 옵서버 파견은 사장 선임 책임이 있는 방문진으로서 MBC감사 동의와 협조로 진행했으며 MBC 감사업무를 방해한 적이 없다”고 했다.

법원 역시 이번 결정문에서 “신청인은 2021년 8월13일 이사로 임명되었으므로, 이 사건 해임 사유 중 그보다 과거에 있었던 MBC 및 그 관계사의 경영상 잘못이나 방문진에 대한 감사 지적 사항에 대해 과연 신청인이 관리‧감독 의무 또는 선관주의의무를 해태했다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무엇보다 “신청인이 방문진 이사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입는 손해는 참고 견딜 수 없거나 견디기가 현저히 곤란한 경우의 유형‧무형의 손해로서 본안에서 승소하더라도 회복하기 어렵다고 봐야한다”면서 “신청인의 남은 임기, 처분 사유의 내용, 본안 판단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도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권 이사장의 임기는 2024년 8월까지다.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해임을 주도했던 김효재 전 방통위원장 권한대행. ⓒ연합뉴스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해임을 주도했던 김효재 전 방통위원장 권한대행. ⓒ연합뉴스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는 “지금까지 공영방송 이사를 내보내는 방식이 사법적 판단과 상관없이 저지른다는 게 경험칙으로 남은 측면이 있는데, 이번에는 사법부가 즉각 개입이 필요하다며 행정부 전횡을 제지한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방통위는 이날 입장을 내고 “오늘 법원 결정과 같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해준다면 어떤 비위나 잘못이 있더라도 행정소송이 종결될 때까지 해임할 수 없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께 돌아갈 수 밖에 없다”며 “방문진의 의사결정 과정에 혼란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즉각 항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피신청인(방통위)이 제출한 자료들만으로는 이 사건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경우 방문진 이사회의 운영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점이 선뜻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피신청인이 주장하는 공익상 필요가 신청인이 입는 손해를 희생하더라도 옹호해야 할 만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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