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당시 대통령 관저 후보지였던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백재권씨가 방문했다고 경찰이 결론내렸다는 KBS 단독 보도에 여야 정치권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 지난 7월21일 KBS 뉴스가 보도한 "[단독] 경찰 "천공 아닌 다른 풍수학자가 尹 관저 후보지 답사"" 갈무리.
▲ 지난 7월21일 KBS 뉴스가 보도한 "[단독] 경찰 "천공 아닌 다른 풍수학자가 尹 관저 후보지 답사"" 갈무리.

그런데 국민의힘 논리가 이상하다. 김민수 대변인은 “민주당은 금세 말을 바꿔 조선시대 왕실 터를 정하듯 풍수가가 대통령 관저를 정했다며 또다시 근거 없는 맹공을 퍼붓고 있다. 백재권 교수는 미래예측학 박사로서 풍수지리학의 최고 권위자다”라고 밝혔다. 애초 역술인 천공이 공관 방문 의혹 당사자로 제기됐다는 점에서 말을 바꿨다는 공세는 가능할지 몰라도 백재권씨를 풍수지리 전문가라고 강조한 것은 한참 잘못 짚었다.

대통령 관저 결정 과정에 백 교수가 참여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핵심은 전문가가 아니라 국가 중대사로 볼 수 있는 공적 문제에 자격없는 ‘민간인’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국정농단’이라는 비판이 과할지 몰라도 풍수학자가 관저 후보지를 방문한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시민은 윤석열 정부 정책 결정 시스템을 의심할 수밖에 없고, 그 불신은 국정운영에 누를 끼치게 된다. 대통령실이 해당 의혹을 명쾌히 해명하지 않으면 불신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해당 의혹은 공권력의 공정성 문제와도 맞닿아있다. 반대편 진영에 대해선 공권력을 동원한 ‘압수수색 정치’를 통해 깔아뭉기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는데 불리한 이슈에 대해선 수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정황이 드러난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해당 의혹이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천공이나 백재권씨를 직접 수사하지 않았다. 공관 방문 자체로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는데도 참고인 조사를 통해 방문 사실만 확인한 것이다.

이에 더해 한가지 짚고 넘어갈 내용이 있다. 어떻게 백재권씨가 정책 결정 시스템에 참여할 정도로 ‘전문가’ 권위를 부여받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다. 누군가 관저 후보지 선정에 백씨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그널을 준 것이 분명하다.

▲ 사진=백재권 교수 트위터
▲ 사진=백재권 교수 트위터

판을 깔아준 건 언론이었다. 백씨를 대중에 알린 건 중앙일보 고정 필진으로 참여한 칼럼의 영향이 컸다. 백씨는 관상학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백재권의 관상·풍수”라는 코너를 통해 공적 인물을 분석해왔다. 2017년부터 무려 99회 연재했다. 방탄소년단 멤버 RM은 힘과 카리스마 넘치는 표범상이라며 “성상과 관상이 일치가 잘 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관상”이라고 분석하는 식이다. 관상이 공적 인물을 향한 평가의 소재로 쓰이면 뒷말을 낳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백씨는 종합일간지 고정 필진이라는 권위를 부여받으면서 그가 칼럼에 올린 공적 인물의 평가는 일방향으로 굳어져버렸다. 중앙일보는 그를 “제도권의 학위를 따기 위해 8년 공부한, 자연을 연구하는 미래예측학 박사”라고 소개했다. 백씨의 칼럼이 저널리즘에 부합하냐는 문제 제기는 있었지만 결국 ‘사고’가 터지면서 연재가 중단됐다.

미디어오늘은 2019년 성폭력 가해자인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를 “순박한 인상을 지녔다”고 표현하고, 피해자인 심석희 선수에 대해선 “상처가 얼굴에 투영되기 때문에 관상을 보면 잡아낼 수 있다”고 쓴 백씨의 칼럼을 문제삼았다. 비판 여론이 일자 중앙은 칼럼을 삭제했고 연재 횟수 100회를 앞두고 전격 폐지했다. 중앙일보 역시 백씨의 칼럼 내용이 언론 윤리에 크게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 2019년 1월12일 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 2019년 1월12일 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한국일보도 2019년 9월 조국 사태를 예언한 한국미래예측연구원장이라고 소개하면서 “대통령 결단이 필요할 때”라고 주장한 백씨의 인터뷰를 실었는데 논란이 일자 내부 논의를 거쳐 기사를 삭제했다. 모두 비판 여론을 의식해 기사 삭제 조치를 취하는 강수를 뒀지만 백씨를 어떤 의미로든 대중에 알리고 공적 인물 평가에 관상학을 기준점으로 제시한 책임은 피하기 어렵다.

이렇듯 언론이 판을 깔아주지 않았다면 백씨가 과연 대통령 관저 선정에 개입할 자격을 얻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관저 후보지 선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미래예측전문가가 있다라고 시그널을 준 장본인이 바로 언론이라고 지목해도 할 말이 없다. 비과학적 영역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권위를 획득하면서 국정운영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로까지 번진 과정에 언론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관저 후보지 선정 결과를 보면 백씨의 영향이 없었다느니, 역술과 풍수지리는 다르고 백씨는 전문가라느니 하는 얘기를 언론이 들어줄 자격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이번 의혹은 입을 닫은 대통령실 입장이 모든 걸 말해준다. 대통령의 입을 열도록 하는 게 그나마 언론이 과거를 참회하는 길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