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3주기였다. 많은 언론이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유가족과 지기들의 추모사들을 보도했다. 곧 고인을 옹호하는 다큐멘터리도 개봉할 예정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때맞춰 박원순 전 시장의 범죄혐의는 왜 숨기냐며 공격에 나섰다. 박 장관의 비판은 민주유공자법을 거쳐 민주화운동 전반에 대한 모욕으로 뻗어나간 후 결국 문재인 정권과 현 민주당 비난까지 도달한다.

여전히 속 터짐과 부끄러움은 또 우리의 몫이다. 많은 비판을 받고, 선거에서 지고, 또 졌던 3년의 시간 뒤에도 우리는 또 왜 이 사건에 붙잡혀 있나. 인권위와 법원에서 이미 고인의 혐의를 인정하긴 했는데도 말이다. 민주당 내에서 혹자는 박원순, 안희정, 오거돈의 이름을 꺼내는 걸 내부총질이라 비판한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정쟁에서 권력형 성범죄라는 공격지점을 전혀 방어하지 않은 채 열어젖혀 놓은 건 누구이다.

고인의 유가족과 지인들의 황망과 억울함은 이해할 법하다. 문제는 이걸 대하는 민주당의 입장이다.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 대해서, 민주당은 피해자의 증언, 법원의 최종적 판단, 가해자의 변명, 그리고 2차 가해성 가짜뉴스들을 모두 각자의 ‘진실들’로 방치했다. 물론 선거를 앞두고 수차례 형식적인 사과를 했지만, 유권자들은 진심이라고 믿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오거돈, 안희정, 박원순’이라는 최악의 파고가 지나간 후의 ‘박완주, 최강욱’ 등의 사건에서도 당내 제도나 태도면에서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방치한 복수의 진실‘들’이 대등하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가짜 사실관계를 재구성해낸다. 사건의 여파가 자신에게까지 미치지 않길 바라는 가해자의 측근들은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목소리를 틀어막았다. 존경하고 사랑했던 정치인들의 죄를 인정하는 건 지지자들에게도 끔찍이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민주당을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란 믿음의 강했던 사람일수록 이 고통을 회피할 수 있다는 유혹에 취약하다. 돈이든 권력이든 팬덤을 타고 한몫을 누리려는 자들은 지지자들이 고통을 회피할 수 있도록 떡밥을 계속 뿌린다.

▲ 7월9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추모제에서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왼쪽) 등 추모객들이 헌화에 앞서 묵념하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묘소는 지난 4월 고향인 경남 창녕군에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됐다. ⓒ 연합뉴스
▲ 7월9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추모제에서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왼쪽) 등 추모객들이 헌화에 앞서 묵념하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묘소는 지난 4월 고향인 경남 창녕군에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됐다. ⓒ 연합뉴스

또다시 선거가 다가온다. 민주당이 정책적, 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하지만 가능할까? 권력형 성범죄의 수렁에 빠진 채로는 전진은 불가능하다. 가령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모든 걸 ‘박원순 표’라고 몰아세운다. 여기서 ‘박원순’은 폐기해야 할 모든 것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민주당은 ‘박원순 표’를 옹호도 비판도 하지 못한다. 도시재생, 인권조례, 생태 뭘 얘기하려 해도 박원순의 이름이 입 속의 왕가시가 된다.

인적 혁신은 어떤가.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의 이름은 민주당 내 청년들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다음 총선을 준비하는 청년 정치인들 중 몇몇은 가해자를 옹호하면서 정치적 기회를 잡기도 했다. 또 반대로 피해자와 연대했다가 다시는 정치권을 돌아오지 못한 청년 정당인들은 이제는 출마를 해서라도 싸움을 끝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민주당의 다음 세대마저도 구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아사리판만을 유권자에게 보일 것이다.

잇달았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엉거주춤한 태도는 민주당의 역사와 조직 한 가운데에 거대한 블랙홀로 남아 있다. 이 블랙홀을 피하느라 정책적 연속성도 인력 충원도 엉망진창인데, 다들 이 블랙홀이 없는 척 한다. 본격적인 총선 시기가 오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한다. 그 시작은 권력형 성범죄를 부정하는 2차 가해에 대해 민주당은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이에 동조하는 당내 인사는 철저히 징계하고 공천 배제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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