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유튜버가 소위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했다. 해당 유튜버는 연일 가해자에 대한 영상을 추가로 올리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갑자기 공격한 사건이 주는 공포감, 젠더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공분, CCTV에도 찍히지 않고 피해자도 기억을 잃었던 몇 분간의 사실관계의 공백 등이 겹치면서 사건은 거대한 진실게임이 되어 여론의 큰 관심거리다.

해당 유튜버는 검경의 초기 수사에서 성범죄 혐의를 조사하지 않았다고 질타하는 영상을 올렸다. 실제로 2심 재판중 재판부의 검증요청으로 성범죄 관련 증거가 확인돼 공소장이 변경된 만큼 검경의 초기 부실수사에 대한 비판은 타당하다. 그런데 해당 유튜버는 이 과정에서 가해자가 성범죄자스럽고, ‘변태’스러운데도 검경이 수사를 안 했다는 점에 집중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가해자의 여자친구가 가해자가 평소에 강압적으로 항문 성교를 요구해왔다는 부분이다.

▲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의 피의자 이씨가 피해자의 의식을 잃게 한 후 CCTV 사각지대로 피해자를 옮기는 모습. 사진=JTBC 뉴스 갈무리
▲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의 피의자 이씨가 피해자의 의식을 잃게 한 후 CCTV 사각지대로 피해자를 옮기는 모습. 사진=JTBC 뉴스 갈무리

다수 언론은 이 유튜브를 인용하며 가해자의 ‘변태성’을 보도했다. 기사 제목에서 항문성교를 ‘이상성욕’ ‘이상한 성관계’, ‘이것에 집착’이라고 언급하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해당 유튜브 출연자가 실제 여자친구가 맞는지, 신빙성 있는 발언인지를 따지는 기사는 없었다. 해당 유튜버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했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또 출연자가 가해자의 여자친구가 맞다고 해도 신빙성 문제는 여전하다. 가해자의 여자친구는 사건 직후 가해자의 도주를 도움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형을 받았기 때문에, 가해자의 강압성을 강조하면 본인의 이후 재판에 더 유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검경 초기수사 과정에서 왜 성범죄 혐의가 배제됐는지, 기억을 잃은 피해자가 성범죄 혐의를 수사해달라고 스스로 얼마나 애를 써야 했는지를 주목한 보도는 드물었다. 물론 사건 당시 피해자에게 항문 파열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가해자의 성적 취향이 사건과 전혀 무관하진 않다. 하지만 보도는 이런 연결고리들을 짚지 않고 ‘항문성교’=‘변태’=‘성범죄자’라는 쉬운 편견의 흐름을 따라가기만 했다. 보도 책임성이 없는 유튜브를 인용하면서 언론의 보도 책임성까지 쉽게 무시될 수 있었다. 폭로의 대상이 공분을 사는 범죄자여서 혹시나 모를 당사자 반론의 부담도 없었다.

이런 유튜브 영상과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는 ‘항문성교’가 그만큼 클릭수를 높이는 키워드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항문성교는 죄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거부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합의하에 이뤄지는 다양한 성적행동을 평가하는 건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항문성교라는 성행위 방식이 가해자를 비판하는 근거로 등장하는 건 성소수자, 특히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가 넓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호모포비아들은 동성애자를 ‘항문성교’와 등치시키며 더럽고 불길하다는 인상을 심어왔다. ‘비역’, ‘계간’, 그리고 신조어인 ‘똥꼬충’ 등 많은 혐오 표현들이 항문성교에 어원을 둔다. 이를 통해 ‘동성애자’들과 ‘항문성교라는 성행위 방식’은 거울상처럼 서로를 혐오해도 마땅할 근거로 작동해왔다.

소수자 혐오를 하지 않는 보도는 꽤 복잡하고 성찰이 필요한 문제다. 지탄 받아야 할 비장애인을 ‘병신’이라고 보도할 수 없듯이, ‘항문성교 하는 자’를 비난하는 것은 ‘동성애 혐오’와 쉽게 이어질 수 있다. 남성 가해자와 여성 피해자의 사건에서도 동성애 혐오는 작동할 수 있다. 끔찍한 범죄자를 설명하기 위해 인종, 민족, 성별, 장애 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끌고 들어오는 건 쉽고 흔한 일이다. 이런 늪에 빠지지 않고도 범죄자를 비판할 수 있는 보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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