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영 사진작가가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여권법 위헌법률 심판 제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장진영 사진작가가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여권법 위헌법률 심판 제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사람들은 한국의 여권 지수가 1위이니 2위이니 하면서 비자 없이도 방문할 수 있는 나라가 엄청 많다고 하는데, 포토 저널리스트에겐 갈 수 없는 곳이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장진영 사진작가가 동료로부터 들은 말이다.

장진영 사진작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현지에서 취재했다는 이유로 벌금 500만 원의 형사처벌을 받은 가운데 언론시민단체들이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여권법 위헌법률 심판 제청과 정식 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이 심판 제청을 받아들이면 전쟁지역 취재를 제한한 여권법 조항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심판을 받게 된다. 이날 기자회견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독립PD협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25개 언론·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다.

현지 취재 금지 ‘형사처벌’
전쟁 보도에 ‘한국 관점’ 사라지는 문제도

장진영 작가는 “저 하나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파급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해 개선을 고민하게 돼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장진영 작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지난해 3월5일 현지 취재를 시작했다. 수도인 키이우 등에서 현장을 취재하고 귀국한 그는 시사IN, 워커스 등 언론을 통해 현지 참상을 보도했다. 이후 장진영 작가는 여행금지 국가를 방문했다는 이유로 여권법 위반으로 입건돼 지난 3월28일 벌금 500만 원의 약식 명령을 받았다.

여권법 17조는 전쟁 등이 발생한 국가의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취재·보도’를 예외로 두고 있지만 “외교부 장관이 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외교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취재의 허가 대상을 외교부 출입 기자에 한정하고 방문 기간과 방문지역, 인원 등을 제한해 논란이 됐다. 프리랜서인 장진영 작가는 이 예외조항의 적용조차 받지 못했다.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 이후 언론의 취재·보도 목적의 입국에 제한이 강해졌다.

▲ 장진영 사진작가가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여권법 위헌법률 심판 제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장진영 사진작가가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여권법 위헌법률 심판 제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장진영 작가는 “여권법으로 취재 역량이 다 사라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영미 분쟁전문 PD는 “다음 사건이 벌어지면 또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며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 취재진이 노력해서 한국인의 시각으로 전하는 게 무엇이 나쁜가.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시각이 친러적으로 일부 바뀐 데엔 한국 취재진이 현지에 안 들어간 영향도 있다는 게 외국 저널리스트들의 생각”이라고 했다.

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장은 “국제적 조롱도 당하고 국제보도를 접하는 많은 시민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에서 한국 취재진은 무거운 방탄조끼를 입었는데 다른 나라의 기자들은 더 가볍고 좋은 소재의 방탄조끼를 입었다고 한다. 나준영 협회장은 “이라크 전쟁 때 보도 수준에 멈춰섰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헌법이 금지한 ‘사전허가제’ 
프리랜서 언론인 차별도 문제

장진영 작가의 법률대리인인 김보라미 변호사는 “여권법에 따르면 취재보도 목적의 경우 외교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허가한다고 돼 있는데 다른 나라에는 이런 종류의 법 조항이 없다”며 한국의 여권법이 과도하다고 했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외교부의 허가 제도가 헌법이 금지한 ‘사전 허가제’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허가를 받을 때 취재 계획을 제출해야 하는데, 그러면 허가 검열과 다르지 않다. 외교부가 데스킹을 보는 것”이라며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는 사전 허가제가 금지돼 있어 사전 허가제 금지 위반 소지가 있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해 과잉금지 원칙 위반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 지난해 2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재한 러시아인 주최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든 우크라이나 국기 뒤로 푸틴의 전쟁 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피켓이 있다. ⓒ연합뉴스
▲ 지난해 2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재한 러시아인 주최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든 우크라이나 국기 뒤로 푸틴의 전쟁 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피켓이 있다. ⓒ연합뉴스

김보라미 변호사는 장 작가의 ‘언론인으로서 지위’도 언급했다. 여권법상 프리랜서 언론인들은 취재가 가능한 예외 조항에도 적용을 받지 못한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장 작가는 전부터 현지에서 현장을 찍어서 시사IN, 한겨레21 등에 저널리즘적 방법으로 보도했다”며 “거대 미디어의 소속이 아닌 프리랜서 언론인은 갈 방법 자체가 없다는 점에서 기회가 봉쇄돼 있다. 따라서 입법 목적의 효과에 비해 과도하게 기본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어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되기 어렵다”고 했다.

분쟁지역 취재 경험이 있는 기자이기도 한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여권법으로 언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라며 “얼마나 많은 법률들이 헌법을 침해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 수준이 민주주의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했을 때 심각한 반민주적 사태라고 규정한다”고 했다.

윤창현 위원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여권법 적용도 차별적으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힘 있고 거대한 언론사는 못 건드리고 프리랜서 기자들을 타겟팅해서 취재 위축의 효과를 주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부분은 별도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언론계 ‘자성’과 기자협회 역할 촉구

나준영 협회장은 “주요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는 저희나 기존의 방송과 언론사들이 이를 깨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지금의 상황을 만든 건 우리 언론인과 언론사, 방송사들의 용기 없는 침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프리랜서 언론인들이 ‘언론인’의 자격을 얻기 위한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현업단체의 노력을 촉구했다. 그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준회원제 같은 걸 운영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자협회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법적 지위나 보호 조치에 본질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제 언론단체들도 한국 여권법에 반발

장진영 작가 형사처벌 소식이 알려지자 국제 언론단체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제기자연맹(IFJ)은 입장을 내고 “한국 헌법에 위배되는 여권법으로 인해 국내 기자들이 분쟁지역에 가서 취재할 수 있는 권리가 제한되고 있으며 한국 시민들은 전쟁과 분쟁에 대한 정보를 외국의 취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며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근거 없는 형사처벌에 대한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장진영 작가의 문제제기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국제언론인협회(IPI)도 ‘한국은 분쟁 지역에서 보도하는 언론인에 대한 제한을 철회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미디어디펜스는 소송 비용 지원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미디어디펜스는 언론인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국제 비영리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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