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탈북자를 통해 북을 바라봤다. 책을 쓸 때도 중국에 살고자 하는 사람과 한국에 오고자 하는 사람, 북한에 가고자 하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뗏목꾼을 바라볼 땐, 그저 재미있었다. 북한 사람이라도 탈북하고서 만날 때와 느낌이 다르더라. 강과 자연을 통해 살아가는 인간, 직업의 세계를 보았다. 때묻지 않은 속살이었다. 그게(살아가는 모습이) 이념보다 더 중요하다 생각했다.”

북한과 중국이 맞닿는 곳을 수백 차례 찾아 경계 너머 압록강 유역 어린이들의 일상과 탈북민 실상을 알렸던 조천현 작가가 <뗏목: 압록강 뗏목 이야기>(보리출판사) 사진에세이로 독자를 다시 찾았다.

압록강은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다. 백두산에서 발원해 북한과 중국을 가로질러 서해안으로 흘러든다. 조천현 작가는 취재차 압록강 북쪽 연안을 수백 번 찾았지만, 뗏목을 처음 본 지 5년 만인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셔터에 담았다. 그곳에서 일하고, 먹고, 뗏목을 만들고 띄우며 사는 이들을 담은 풍경 102폭을 골랐다. 뗏목을 주제로 한 유일한 책이자 사료다. 그가 ‘사라져가는 것의 가치’를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펴낸 이유이기도 하다.

▲ ‘뗏목: 압록강 뗏목 이야기’. 조천현 저, 보리출판사 펴냄.
▲ ‘뗏목: 압록강 뗏목 이야기’. 조천현 저, 보리출판사 펴냄.

책은 사계절로 나눈 4개 장으로 구분돼 있다. 겨우내 통나무를 베고, 봄에 뗏목을 엮어 띄운다. 시간이 지나고 강폭이 커질수록 뗏목도 부채꼴로 점점 커진다. 터마다 뗏목 본체에 새 목재를 덧붙이는 까닭이다. 조 작가는 강 상류인 김형직군 고읍노동자구 도흥물동에서 뗏목을 만들어 자강도 자성군 운동노동자구 운봉호까지 운반하는 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종착지까지 다섯 군데의 떼매기터(뗏목을 매어두는 곳)을 거친다.

뗏목꾼이 노를 저으며 조 작가를 향해 웃어보이는 모습, 이들이 뗏목을 만들고 밥을 지어먹는 모습 등 어디서 어떻게 포착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면이 펼쳐진다. 압록강 풍경과 사람이 시구와 담긴 장을 넘기면 압록강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정작 조 작가는 취재 과정에선 중국 공안에 붙잡혀 촬영 장비를 빼앗기고 입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뗏목꾼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세간에 알려진 내용과 다른 것이 많다. 뗏목은 관광상품이 많다 보니 사람을 운반하는 교통수단으로 더 크게 알려졌지만, 실은 목재 운반 수단이다. 북한에서도 ‘밑바닥’ 일로 알려졌지만, 강가로 다니기에 작업이 위험하지 않고 임금과 휴양 기간 등 처우도 비교적 좋다. 조 작가는 “한국 사람들은 북한 하면 ‘민둥산’만 얘기하는데 어떻게 목재가 이렇게 많이 나오나’ 싶기도 할 것”이라고 했다.

▲ ‘뗏목: 압록강 뗏목 이야기’를 펼친 모습.
▲ ‘뗏목: 압록강 뗏목 이야기’를 펼친 모습.

조 작가는 뗏목에 주목한 이유로 “이념보다 먼저 사람이 보였다”고 했다. “오랫동안 천천히 지켜볼 수 있는 주제가 뭘까 찾고 있었다. 북한 사람들이 직업인으로서 일하는 모습, 삶을 담을 수 있는 소재가 뗏목뿐이었다. 그것도 멀리서 관찰하는 게 아니라 가까이서. 그저 뗏목의 움직임,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뗏목꾼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도 그랬다. “뗏목이 그렇더라. 뗏목을 왜 하는지, 장점이 뭔지 묻고, 그러다 보면 그들이 먼저 가정사 얘기를 한다. 고민을 이야기한다. (작가가) 노래를 불러보라 해 듣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반성한다. 그들이 더 진실하니까.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는 자기 얘길 안 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내 경우 공안으로부터 숨어 일해야 해 거짓말을 해야 했다. 이들은 사적인 걸 먼저 얘기하고 물어오더라.”

조 작가는 “(뗏목꾼이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면서도 내 입에서 ‘한국사람’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연길’(을 거쳐)서 왔다고만 한다. 재밌게 대화를 해도 주제는 그 언저리를 넘어가지 않는다”고 취재 과정을 돌이켰다. 뗏목꾼이 한 말은 그가 책에 적은 문장의 일부로도 기록됐다. 아래는 <뗏목>에 적힌 글의 일부다.

장백현 12도구에서 만난 / 뗏목꾼이 강을 따라 떠났습니다 / 오늘도 나는 강가에 서서 / 뗏목이 올 때를 기다립니다 / 내가 만났던 뗏목꾼은 / 어디쯤 오고 있을까 / 강물이 흘러 다시 만나듯 /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국경선은 필요 없다는 듯 / 눈 쌓인 언 강에 / 발자국을 남깁니다 / 날이 밝아 오면 /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 국경 마을의 아침은 고요합니다

시인 곽재구는 추천사에서 조 작가의 글과 사진을 두고 “북녁 마을 풍경을 카메라로 담아온 그가 압록강 뗏목을 주시한 건 유장하게 흐르는 뗏목의 흐름 속에 복원해야 할 민족의 역사가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뗏목의 흐름에 이데올로기는 없다. 함께 법 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겨레의 숨결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그의 <뗏목>은 언젠가 우리가 만나야 할 시정 가득한 압록강 여행을 꿈꾸게 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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