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우리 정부가 하겠다고 제안한 배상안을 옹호하던 여권 인사들이 이번엔 김영환 충북지사가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주장하는 등 망언이 속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가 “배상하라 악쓰는 나라 한국 밖에 없다”고 주장한 데 이어 이번엔 친일파 커밍아웃까지 하고 나섰다. 충청일보는 “140만 충북 시민을 대표하는 자가 할 소리냐”, “왜 굴욕을 자처하느냐”고 비판했고,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게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냐”고 반문했다. 진중권 교수는 이 같은 정부 결정을 자화자찬 하는 인사들을 두고 “역겹다”면서 “윤 대통령이 나르시즘에 빠져 위험하다. 이젠 독도도 내줄” 기세라고 우려했다.

국민의힘 소속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내 무덤에도 침을 뱉어라!’라는 글과 동영상을 통해 “나는 오늘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라며 “나는 오늘 병자호란 남한산성 앞에서 삼전도의 굴욕의 잔을 기꺼이 마시겠다”고 썼다. 그는 “1637년 삼전도의 굴욕이 아니라 백골이 진토되는 한이 있어도 조국을 위한 길을 나 또한 가련다”며 “삼전도에서 청나라에게 머리를 조아린 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임진왜란을 겪고도 겨울이 오면 압록강을 건너 세계 최강의 청나라군대가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하지 않은 조선의 무기력과 무능력에 있었다”고 해석했다.

김 지사는 “나는 윤석열대통령과 박진장관의 애국심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며 “‘통큰 결단’은 불타는 애국심에서 온다”고 극찬했다. 김 지사는 “‘"박정희의 한일협정’,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딛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며 “학교라고는 문 앞에도 못간 중국집 주방장이셨던 내 아버지도 징용되어 철공소에서 일했다. 그가 늘 밥상머리에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고 썼다. 그는 “오늘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은 ‘지고도 이기는 길’을 가고 있다”며 “진정 이기는 길은 굴욕을 삼키면서 길을 걸을 때 열린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일본의 사과와 참회를 요구하고 구걸하지 마라”라며 “그것은 그들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그들의 선택”이라고 썼다.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에서 자신이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김영환 페이스북 영상 갈무리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에서 자신이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김영환 페이스북 영상 갈무리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석동현 민주평동 사무처장도 전날(7일) ‘식민지배 받은 나라 중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는 한국 뿐’이라는 글을 썼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해명하고 나섰다. 석 처장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악쓰는’이라는 표현을 두고 “피해 당사자들의 소송제기를 ‘악쓰는’ 것에 비유한 것이 아니라 죽창세력을 가리킨 것”이라며 “만약 ‘악 쓰는 나라’라는 구어적 표현에 오해의 여지가 있다면 ‘요구하는 세력이 득세하는 나라’로 수정하겠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한 페이스북에서, 일본에게 반성이나 사죄 요구도 이제 좀 그만하자고 한 것은, 결코 우리 국민의 감정을 함부로 폄훼하려는 뜻이 아니다”라고도 썼다.

이 같은 주장들이 하루 아침에 잇달아 나오자 곳곳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김 지사 지역의 신문인 충청일보는 8일자 기사에서 “160만 충북도민의 수장이 할 발언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며 “정치권을 물론 시만사회단체 등에서 식민사관을 옹호하는 발언이며 일본과 협의가 진행 중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와 같은 민감한 현안은 거론하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충청일보는 같은 날짜 사설에서도 “칼로 위협하고 재물을 털어간 강도의 잘못은 애써 덮어두고, 그 강도들에게 재물을 빼앗겼으니 그것에 대항 못한 우리들의 무능이 잘못이라고 해야 하는가”라며 “왜 굴욕을 자처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충청일보는 “사회 지도층이 가지고 있는 엇나간 인식이 알게 모르게 시민들의 의식 세계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통큰 결단과 불타는 애국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을 두고도 “망발에 가깝다”며 “굴종외교가 왜 애국심으로 환치돼야 하나. 오히려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던 우리의 지난 과거를 통절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및 무소속 국회의원 13인은 8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에게 석동현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즉각적인 파면을 촉구했다. 이들은 석 처장이 강제동원 피해자를 돈 받기 위해 악 쓰는 사람들로 모욕하고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명예도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사법기관 결정도 부정했다고 지적했다. 야당 외통위원들은 “대통령 역시 석동현의 역사인식에 전적으로 동의하느냐”며 “(그렇지 않다면) 즉각, 반드시 파면하라”고 밝혔다.

▲충청일보 2023년 3월8일자 2면
▲충청일보 2023년 3월8일자 2면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석동현 사무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의 망언에 동의하느냐”며 “윤 대통령 주변에는 아첨꾼밖에 없는 것이냐. 아니면 윤 대통령의 생각을 알아서 대변해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오 원내대변인은 “역설적으로 두 사람의 망언은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배상안이 얼마나 친일적이고 굴종적인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며 “하지만 용서받을 수 없는 이들의 망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망언이 과연 한두 사람에 국한된 생각이냐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이 이 배상안을 ‘미래지향적 결단’이라 강변하고, ‘반일감정 이용해 정치적 반사이익 얻으려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 점을 들었다. 오 원내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은 친일 정권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변 사람들과 여권의 연이은 망언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도 지난 7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윤 대통령이 셔틀외교라고 주장하는 것을 두고 “정확하게 빵셔틀이고, 일본이 일진”이라며 “이 사람들이 되게 나이브하다. 우리가 양보했으니까 도덕적 우위에 선다, 일본의 호응을 기대한다. 호응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진 교수는 “사죄, 사과? ‘옛날에 있는 반성문 있잖아, 나 옛날에 반성문 썼잖아, 그걸로 갈음할게’, 이거거든”이라며 “일본 기업의 참여? 안 한다. 완패입니다. 완벽한 패배”라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앉아서 무슨 위대한 업적이나 되는 척 자화자찬하는 거 그게 너무 역겹다”고 털어놨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가 지난 7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강제징용 배상안으로 셔틀외교를 기대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빵셔틀이고 일본이 일진이라며 이를 자화자찬하는 인사들이 역겹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진=CBS 한판승부 영상 갈무리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가 지난 7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강제징용 배상안으로 셔틀외교를 기대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빵셔틀이고 일본이 일진이라며 이를 자화자찬하는 인사들이 역겹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진=CBS 한판승부 영상 갈무리

진 교수는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본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극우파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통령의 정신세계가 대한민국 우익 극우 판타지에 지금 사로잡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굉장히 위험하다”며 “이런 사적인 것을 갖고 있는 건 좋은데 그걸 정책, 외교 이런 걸로 실현을 시키고 있다. 참모들이 다 반대했는데 자기가 역사적 결단 이런 식의 실존적 결단(을 했다?). 일종의 나르시즘에 빠져 있다. … 독도도 내줄 것 같다, 이제는”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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