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어공주가 끝나자마자 “너무 재미있다!”고 소리치며 의자에서 일어나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나와 함께 사는 어린이 A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재미있다고, 또 보고 싶다고 했다. 나와 내 짝궁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상태였다.

▲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영화를 보기 전에는 걱정이 있었다. 종종 줌 회의로 국제 미팅을 하곤 하는데 A가 나와 회의하는 사람들 중에 흑인들을 보고 ‘얼굴 색이 예쁘지 않은 사람이 있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미 수많은 공주 만화, 드라마, 영화 등에서 흰 피부가 예쁜 것이라고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입 밖으로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사람의 피부색으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할리 베일리가 주인공을 맡은 인어공주를 보고 인어공주가 예쁘지 않다고 하거나 재미있지 않다고 말하면 어쩔까 걱정을 하면서 극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며 그 걱정은 나를 향해야 하는 걱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는 나의 눈과 뇌에 너무나 강력하게 씌워진 백인 중심적이고 획일적인 미적 기준을 직면하게 했다. 그물에 걸린 에리얼(인어공주)은 뱃사람의 도움으로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됐고 성안에서는 에리얼을 왕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목욕을 시켜주고 머리를 빗어주고 헤어 밴드도 해주고 굳이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고 구두까지 신기며 “예쁘게(?)” 꾸며 주었는데 웬걸 내 눈에 “공주”로 보이지 않는거다. 부끄럽지만 실토하자면 “하녀”처럼 보였다. 그동안 학습되고 고착된 공주와 하녀에 대한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 나는 나의 편견을 직면해야 했다. 영화는 이렇게 나를 들여다보게 해주기도 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나는 이 영화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좋은 면을 가지고 있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에겐 남성이 필요하다 또는 왕자가 필요하다’라는 생각과 유성애/이성애 중심적으로 사랑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는 시스헤테로남성과 시스헤테로여성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가둬놓고 있는 어떤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 갈망, 탐험으로 풀어냈다. 에리얼과 에릭(왕자)은 자신이 가두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에게 무언가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존재들이었다. 그것이 인어와 사람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거기에 주인공들의 피부색으로 인해 백인과 흑인이라는 요소가 더해졌다. 영화 속 세상은 인종(피부색)이라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어디에나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너무 달라서 느껴지는 괴리감이 신선했다.

나에게 에리얼과 에릭은 자신을 가두는 억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로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자신의 모습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 자신의 소중한 삶을 자신이 끌림을 느끼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 자신을 속박하고 구속하고 억압하는 곳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 억압이 억압인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억압에 갇혀있는 사람들도 생각났다.

자신이 에리얼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며 억압했던 에리얼의 아빠가 자신의 사랑 표현의 방식이 억압이며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생각났다. 자신의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는 양육자들은 ‘내 자녀가 고통받지 않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 생각으로 자신의 자녀가 성소수자가 아니기를 바란다거나 성소수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랬던 양육자들이 자녀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 존중, 지지하게 되며 ‘세상은 너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널 힘들게 할 수 있는 사회와 싸우겠다’고 말하는 양육자들로 변한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생각났다.

할리 베일리의 인어공주를 피부색과 외모로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아주 적나라하고 천박하게 비난한 사람들은 ‘흑어’라는 말을 만들었고 ‘심해어를 닮았다’고 하는 등 정말 입에 담기 힘든 추잡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흑인이 인어공주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원작을 훼손하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어라는 상상의 존재를 그림이든 인간이든 재현해내는 것에 제한이 있을까? 꼭 백인이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추억을 훼손했다고 말한다. 그 사람에게는 백인의 빨간 긴 생머리 인어공주가 추억이겠지만 이제부터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흑인이자 머리카락을 땋아 늘어뜨리는 록스(locs) 스타일을 한 빨간 머리 인어공주가 추억이 될 것이다. 인어공주를 좋아하지만 이 세상엔 “백인” 인어공주 밖에 없어 자신을 닮은 인어공주가 필요했던 이들에겐 추억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완전히 바꿔버릴 놓을 역사적 사건이다.

▲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차별적인 말을 아주 점잖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흑인 인어공주 없이도 인종차별이 없어질 수 있다는 식의 얘기가 그것인데 그렇지 않다. 흑인 인어공주도 있고 블랙 팬서와 같은 흑인 영웅도 있고 예수와 하나님도 흑인으로 존재할 수 있을 때 인종 차별이 사라질 수 있다.

예수는 백인인가? 중동지역에서 태어난 예수는 지극히 평범한 그 동네 사람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역사 속 예수는 우리가 흔히 만나는 그림 속 예수처럼 금발머리나 갈색머리를 가진 “잘생긴” 백인이 아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어떤가? 하나님이 회백색 머리와 수염을 가진 백인 남성일까? 누가 그렇다고 했는가? 누가 왜 예수와 하나님을 백인 남성으로 묘사했을까?

역사 속 실존인물인 중동 사람 예수가 백인이 된 것이 기분 나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직시해야 한다. 그저 당신은 흑인이 인어공주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이 기분이 나쁜 것이고 당신이 기분이 나쁜 이유는 그동안 당신이 익숙해져 버린 당신의 세상이 도전받기 때문이다. 당신의 세상이 차별적이고 억압적이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나의 편견을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해 준 영화 인어공주 팀에 감사하며 자신과 닮은 인어공주 장난감 가지고 놀며 흑인은 아름답고 자신은 아름답다고 생각할 모든 이들과 영화의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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