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를 기존의 세대와 구분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주로 개념없는 개성있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것도 차별이라고 할 수 있나요? 차별이라면 누가 누구를 어떤 정체성으로 차별하는 것일까요?”

다양성훈련을 하는 중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한 답은 누가 누구를 뭐라고 부르는지, 특정한 꼬리표가 붙은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이라고 규정되는지,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지를 살펴보면 찾을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단 하나의 정체성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어떤 정체성에 의해서는 억압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또 다른 정체성에 의해서는 누군가를 억압할 수 있는 위치성을 가지기도 한다. 남성이면서 비서울지역에 사는 비정규직 노동자일 수도 있다. 여성이면서 비장애인, 비성소수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겪는 사회문제도 단 한 가지의 원인만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 개 이상 사회적 정체성들 그리고 그 문제를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드는 제도와 문화가 함께 얽혀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제에 예외를 두는 방식으로 ‘월 100만 원 이주가사노동자 법안’과 같은 것이 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이주민과 여성에 대한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공고한 가운데, 이로 인한 착취가 당연하게(또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여겨지는 자본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주민이면서 여성으로서 교차성에 따라 경험하게 되는 차별과 억압은 단순히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커진다.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비용으로 여기는 사회가 유지/강화되며 착취를 기반으로 한 구조가 자연스럽게 여겨질 때, 착취를 당하는 것과 착취를 가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기 어려워진다. 차별은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누군가의 피착취는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사회는 철저하게 사회적 소수자와 자신을 분리시켜 생각하도록 만든다. 노동력을 언제든 ‘저렴한 노동력’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는 노동에 대한 존중감을 갖지 않으며 노동자 처우의 문제와 연결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공짜노동’으로 착취된 돌봄노동이 평가절하되는 사회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돌봄을 착취로만 제공이 가능한 영역으로 만든다. 월 100만원에 이주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정책을 ‘맞벌이 가정의 가사부담이 줄고 여성의 경력단절문제의 해결방법’으로 여기는 것은, 철저하게 소수자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분리시켜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MZ세대라는 레이블링(Labeling)은 어떨까? MZ세대를 특이하다고 생각하거나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작동하는 것은 단순히 “나이”라는 정체성 딱 하나만이 아니다. MZ세대에게 ‘개념없다, 개성있다, 이기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MZ세대보다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나 지위 혹은 사회적 위치가 높거나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유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거나) 노동자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보다 자본가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다. 다시 말해, 나이 정체성에 따른 ‘나이차별’과 동시에 ‘경험주의’에 따른 차별,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중심주의’에 따른 사회경제적 차별이 함께 작동한다. MZ세대를 레이블링하며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여기는 것은, 세대를 관통하는 근본 문제를 외면하게 만든다. 

▲ MZ세대. 사진=gettyimagesbank
▲ MZ세대. 사진=gettyimagesbank

예를 들어 MZ세대에게는 좋은데 다른 세대에게는 나쁜 게 있을까? 정시퇴근을 예로 들어보자. 부장님도 퇴근하지 않았는데 정시에 칼퇴근을 하는 신입사원이 버릇없어 보이거나 이상하게 보인다면, 이는 누구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한 걸까? 사실은 신입사원이든 부장이든 누구나 정시퇴근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고 마땅한 것인데,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눈치보지 않고 퇴근을 하는 사람이 생긴 것뿐이다. 신입사원이 다 하지 못하고 간 일을 과장, 부장이 하고 있는 상황이 생긴다며 하소연 하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는 신입사원의 잘못일까 아니면 애초에 할 수 있는 일의 양보다 너무 많은 일을 하게끔 사용자로 하여금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긴 노동시간을 미덕으로 여기는 기존의 노동문화는 노동자로 하여금 서로 착취하게 만든다. 만약 과장, 부장도 그냥 퇴근하면 어떻게 될까? 철저한 자본가 마인드가 아닌 노동자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요구하며 노동시간을 줄이고 채용을 늘리도록 함께 노력할 수는 없을까? 한국은 왜 OECD국가들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편인 채로 머물고 있는가?

SNL이라는 프로그램에 MZ오피스라는 코너를 보면, MZ세대가 ‘무개념 사회초년생’으로 묘사된다. 그 중에 직장에서 일할 때 에어팟을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 개념없는 행동으로 그려지는 것이 흥미롭다. 누군가가 부르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하는 환경이 모두에게 좋은 환경일까?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를 포함할 수 있는 환경일까? 그렇지 않다. 철저한 감시 사회인 동시에 권력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고, 처벌로 응징하는 문화는 근대국가시스템을 닮아있다. 권력에 대해 비판없이 순응하는 것과, 권력자를 위해 서로를 끊임없이 감시하도록 만드는 것은 노동자를 위한 구조가 아니라 통제를 바라는 권력자를 위한 구조다. 그렇다면 통제에 유리한 구조가 과연 최대의 효율과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가져다줄까? 그렇지 않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나눌 수 있을 때, 기업 내에서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가 실현될 때 기업의 효율이 높아진다는 점은 기업과 다양성 분야에서 이미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고 증명되었다. 

▲1월1일 SNL코리아 시즌3, 김슬기 편 '욕 딜리버리 서비스'는 사무실에서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신입사원에게 욕을 해주는 장면이 나왔다. 사진출처=SNL코리아 시즌3 유튜브 갈무리
▲1월1일 SNL코리아 시즌3, 김슬기 편 '욕 딜리버리 서비스'는 사무실에서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신입사원에게 욕을 해주는 장면이 나왔다. 사진출처=SNL코리아 시즌3 유튜브 갈무리

MZ세대는 개념없고 이기적이라는 낙인과 편견 때문에 ‘나도 개념없어 보이는건 아닐까?’라는 걱정을 하며 ‘난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며 조직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그대로 따라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저들과 다른 어떤 행동을 하면 MZ세대라서 그렇다고 생각할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편견으로 인해 자신의 소수자 정체성이 밝혀질까봐 두려워하는 모습과도 닮았다. 동시에,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하나의 정체성 때문이라고 여길까 두려워하는 것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의 현실과 닮았다. 

동시에 MZ세대가 현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사회성이 떨어지고 조직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이 사회가 군소리없이 정해진대로 따르는 것을 사회성이 좋고 조직생활을 잘한다고 평가한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중2병”이라는 표현이 모든 청소년이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고분고분한 공부만 열심히 하는 청소년이 되길 바라는 억압적인 마음으로 레이블링한 것이라면, “MZ세대”라는 표현은 모든 청년들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 순응하며 고분고분하게 일만 열심히 하는 청년이 되길 바라는 억압이다. 기존의 체제, 제도, 문화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 현재의 체재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사회부적응자라고 비하하거나 공격하는 방식이다. ‘MZ세대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조직생활을 못한다’는 일반화된 평가와 낙인은 노동운동, 여성운동, 성소수자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종북 빨갱이”라고 불리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반체제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다.

억압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위 경제력 나이 성별 등을 가지고 현재 사회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그런 모습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성찰이 필요한 일이다. 손쉬운 타자화와 배제, 억압이 아니라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 스스로 성찰을 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나와 다른 사람으로 규정하고 구분지으며 차별하고 억압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결코 노동자뿐만 아니라 기업과 사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스꽝스럽게도 이 정부는 스스로 MZ세대를 적극적으로 호명하며, 자의적으로 MZ세대를 해석한다. ‘MZ세대는 기성노조를 싫어한다, MZ세대는 집중해서 한 번에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고 싶어 한다’는 등 정부의 필요에 의해 자의적인 해석으로 동원된 MZ세대 호명은 결코 MZ세대를 위한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애초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노동자를 등지고 MZ만을 위한 정책을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MZ의 노동권은 모든 국민의 노동권과 연결되어 있고, 사회 전반에서 노동에 대한 존중이 높아져야 한다. 철저하게 ‘노-노 갈라치기’를 하는 정권에서 제대로 된 정책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한국은 오랫동안 OECD국가 중 가장 긴 수준의 노동시간으로 악명이 높다. 이런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갈라치기와 MZ세대의 자의적 호명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의 노동권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나오게 된 숫자인지 알 수 없는 69시간이 아니라, 왜 하루 8시간씩 5일로 정해진 40시간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지 고민해야한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고용증진, 출생율, 삶의 만족도(행복지수)증가가 가능하다. 후보자 시절 주 120시간까지 말했던 적도 있는 윤석열 정권은 애초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 ⓒ 연합뉴스
▲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 ⓒ 연합뉴스

이분법적인 사고방식과 구분짓기, 배제, 차별과 억압의 문제는 오래된 양당정치 구도 가운데서 지속되어왔다. 이는 양당정치 구도에서 정권교체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시스템의 전환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포함의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 구조, 모든 억압은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는 시민역량의 성숙, 이를 바탕으로 구분짓기를 끝내고 함께 억압을 해체할 때 만들어 질 수 있다. 익숙한 차별과 억압에 불편해지는 것에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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