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인공지능이 만든 것과 사람이 만든 결과물에 차이가 있지만 비슷해지는 시점이 올 그거다. 방송사는 이런 때가 올 거라고 생각 못했다.”

고찬수 KBS PD의 말이다. 그는 방송사에서 일하면서 매체환경 변화와 기술혁신에 관심을 갖고 있다. KBS 예능 PD인 고찬수 PD는 KBS의 MCN사업팀장을 역임했다. <스마트TV혁명>, <인공지능 콘텐츠 혁명>, <버추얼콘텐츠 메타버스 퓨처>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제작을 해온 방송사들은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카메라맨 없이도 촬영을 할 수 있고, 앞으론 작가와 PD의 역할도 인공지능이 일정 부분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 고찬수 PD는 “사람은 인공지능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인공지능에게 ‘내 스타일’을 팔 수 있을 만큼의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 각광을 받을 것이다. ‘김태호 스타일’, ‘나영석 스타일’을 인공지능에 학습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 고찬수 KBS PD. 사진=금준경 기자
▲ 고찬수 KBS PD. 사진=금준경 기자

그는 “그동안 방송사들이 월급을 많이 주고 하니 인재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앞으론 돈도 전보다 못 벌고 영향력도 줄어들게 된다”며 “인공지능은 이런 상황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방송사들은 능력 있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방송사를 선택하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일 고찬수 PD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만났다.

- 챗GPT 3.5버전이 주목을 받았다. 고찬수 PD는 그 전부터 인공지능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챗GPT의 역량에 비해 사람들의 반응이 과한 면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반갑다. 챗GPT 덕에 사람들이 인공지능 창작에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기존의 지식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점에서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의미가 있다. 지금 인공지능을 하지 않으면 완전히 뒤처지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거짓을 사실처럼 꾸며내는 ‘환각’ 문제에 관한 지적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낸다는 창작의 관점에선 환각도 의미가 있다. 오히려 그렇기에 콘텐츠 분야에선 미래 가치가 있는 것이다.”

-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은 방송과 영상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성형 인공지능 등 인공지능 기술이 영상 산업 전반에 굉장한 영향을 미칠 거다. 다수의 스태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여겨진 방송 분야에서 1인 크리에이터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서 기획하고 대본 쓰고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다. 조금 더 발전하면 스마트폰만 다룰 수 있으면 인공지능으로 혼자서도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됐다.” 

- 방송사들은 어떤 인공지능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나.
“방송사들이 전반적으로 보수적인데 가장 큰 관심을 가진 분야는 ‘아카이빙’이다. 영상 자료를 나중에 찾아보려면 제대로 아카이빙이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방송 내용에 대해서는 일일이 입력이 어려우니 찾기도 어렵다. 이제는 영상 속에 있는 오디오와 이미지를 인식해 아카이빙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단순히 클립영상을 잘라 올리는 게 아니라 ‘김혜수 출연 모음’ 같은 걸 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묵혀둔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

- 촬영 부문에선 어떤 변화가 있을까.
“촬영에 많은 카메라맨이 필요했는데, 앞으로는 변화할 거다. 이미 카메라가 사람을 자동으로 따라가는 기술이 전부터 있었다. 인공지능 카메라는 스포츠 경기에서 누구 한사람을 지정해놓고 (앵글이) 이 선수만 따라다니는 게 가능하다. 아이돌 가수 공연 때 5명의 가수가 있으면 카메라마다 특정 가수만 따라다니게 할 수도 있다. PD들 입장에선 ‘커팅’이 중요하다. 촬영 중 언제 투샷을 잡고 언제 원샷을 잡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이제는 인공지능이 알아서 커팅을 할 수 있게 됐다. BBC에서는 에든버러 축제를 취재하면서 인공지능이 촬영과 커팅을 하는 걸 실험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중계차가 현장에 갔지만 사람이 없이 촬영한 것이다.”

- 편집 분야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제가 유튜브를 할 때 브루(VREW)라는 편집툴을 쓴다. 영상 속 음성을 인식해 편집을 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영상을 올리면 텍스트가 쭉 나오고, 특정 텍스트를 지우면 그 부분 영상이 함께 지워지는 방식의 편집이다. 현재는 생성형 인공지능에 글을 써달라거나, ‘강아지가 공원을 걸어다니면서 꼬리를 흔드는 그림을 만들어줘’라고 하면 그림을 그려준다. 앞으로는 학습이 잘 된 편집기라면 찍어온 영상을 갖고 ‘어떤 스타일로’, ‘누구의 스타일로’, ‘누구를 주인공으로 해서’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있다.”

- 스위스에서 라디오 방송을 챗GPT를 통해 제작한 사례가 있다. 국내도 TBN 강원교통방송에서 챗GPT DJ를 이용해 직접 원고를 쓰게 하고 방송을 시켰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방송을 더 빨리 만들고 돈을 적게 들여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은 검증됐다. 하지만 사람 PD, 아나운서, 작가들이 만든 콘텐츠보다 훨씬 퀄리티가 좋아서 사람들이 좋아할 정도인가를 보면 아직 비슷하거나 못한 수준이다.” 

▲ 고찬수 KBS PD. 사진=금준경 기자
▲ 고찬수 KBS PD. 사진=금준경 기자

- 인공지능 기자나 앵커가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까.
”기존 방송사나 언론사들은 인공지능을 전면적으로 활용해서 제작하기는 어렵다. 조직에 있는 구성원들을 고려해야 한다. 아직까진 검증되지 않은 인공지능을 전면적으로 활용하거나, 이로 인해 사람을 줄이는 게 맞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적인 책임 문제이기도 하다. 신규 미디어는 인공지능을 보다 적극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프로페셔널한 기자, PD보다 퀄리티가 떨어지더라도 굉장히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년 지나면 프로페셔널한 방송사들이 만든 결과물과 신생 방송사나 미디어가 만든 결과물이 비슷해질 수도 있다. ”

- 인공지능 방송 시대에 사람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사람은 인공지능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영화 예고편을 인공지능이 만든 사례도 있다. 잘 만든 SF 영화 예고편들을 보여다 학습시킨 거다.  그런 식으로 유명PD, 작가, 카메라감독의 스타일을 학습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인공지능에게 ‘내 스타일’을 팔 수 있을 만큼의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 각광을 받을 것이다. ‘김태호 스타일’, ‘나영석 스타일’을 인공지능에 학습시킬 수 있다. 김주하 AI앵커와 같은 시도를 PD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항상 열광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한다.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건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느릴 수 있다. 그렇기에 최신 스타일을 만들어 판매할 수도 있다.”

- 양극화가 벌어질 수도 있겠다.
“인공지능 시대에 돈 버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이 벌게 될 거다.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 사람도 나타날 거다. 음성 인공지능의 경우 실제 ‘누구’의 목소리를 구현하지 않은 음성은 싸게 쓸 수 있다. 반면 이정재나 정우성의 목소리는 비싼 돈을 주고 사게 될 수 있다. 저가의 시장과 고급 시장으로 갈라지게 될 거다. 그렇기에 고급 시장에 속하지 못한 대부분의 목소리를 가진 분들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래서 유럽에선 ‘보편소득’ 이야기가 나온다. 인공지능으로 돈을 버는 사람과 회사가 세금을 내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거다.” 

- 앞으로 방송사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생성형 인공지능은 명령을 어떻게 하느냐가 결과를 다르게 한다. 프롬프터 엔지니어링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방송사 처음 들어오면 카메라 다루는 법과 편집하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생성형 인공지능을 어떻게 다루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지를 공부해야 한다.”

- 방송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방송사가 현재 재원 등 여러 측면에서 위기다. 앞으로 방송사에서 하는 모든 걸 개인이 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는 건 지금까지의 위기보다 더 큰 위기로 느껴질 거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만든 것과 사람이 만든 결과물에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 소비자가 선택할 때 비슷해지는 시점이 올 거다. 그러면 기존의 방송사는 도태될 수 있다. 방송사들은 이런 때가 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 방송사들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열광할 만한 뭔가 ‘다른 걸’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창의적인 소스를 확보하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미래의 승자를 결정한다고 본다. 그동안 방송사들은 월급을 많이 줬다. 인재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앞으론 돈도 전보다 못 벌고 영향력도 줄어들게 된다. 지금도 ‘차라리 유튜브 채널을 만들까’ 생각하게 되고, 인력이 그쪽으로 쏠린다. 인공지능은 이런 상황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방송사들은 어떻게 하면 능력 있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방송사를 선택하게 만들지 고민이 필요하다.”
“결국 개인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세상에 방송사는 보수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 나갈 건지가 중요하다. 개별 구성원에게 저작권을 인정하는 등 PD와 작가 등의 창의성이나 창작성을 지금보다 더 보장해주는 쪽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카이빙도 중요하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방송사가 어떻게 시스템을 만드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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