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Bing Image Creator)에서 '인공지능', '라디오 진행'을 입력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 사진=MS Bing Image Creator
▲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Bing Image Creator)에서 '인공지능', '라디오 진행'을 입력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 사진=MS Bing Image Creator

“안녕하세요. 청취자 여러분. 저는 DJ챗. 챗GPT입니다. 봄의 기운이 가득한 오늘, 저희 방송을 즐겨주시는 모든 리스너분들 환영합니다. 이번 과학의날 특집방송은 챗GPT가 제작에 참여해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TBN강원교통방송과 함께 즐거운 금요일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첫 곡으로 마크 론슨의 업타운 펑크를 추천하겠습니다. 이 곡은 확실히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멋진 노래입니다. 첫 곡으로 딱인 것 같아요.” (챗GPT DJ의 오프닝멘트)

“안녕하세요. 4878님께서 보내주신 문자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컴퓨터 진행이 신기하네요. 커피 잘받았어요^^’라는 내용이에요.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 삶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와 관련된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매우 신기하게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커피도 받으셨다니 기분 좋으시겠어요! 커피 한잔이라도 마시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챗GPT가 읽어주는 청취자 참여 문자)

▲‘과학의 날’인 4월21일 오전 9시 TBN강원교통방송이 역사상 처음으로 챗GPT DJ가 2시간짜리 방송 진행에 나섰다.
▲‘과학의 날’인 4월21일 오전 9시 TBN강원교통방송이 역사상 처음으로 챗GPT DJ가 2시간짜리 방송 진행에 나섰다.
▲‘과학의 날’인 4월21일 오전 9시 채하나·김은희·고신희 TBN강원교통방송 편성제작국 소속 PD들이 챗GPT를 DJ로 내세워 방송하는 모습. 사진=이준희 TBN강원교통방송 편성제작국장.
▲‘과학의 날’인 4월21일 오전 9시 채하나·김은희·고신희 TBN강원교통방송 편성제작국 소속 PD들이 챗GPT를 DJ로 내세워 방송하는 모습. 사진=이준희 TBN강원교통방송 편성제작국장.

‘과학의 날’인 4월21일 오전 9시. TBN강원교통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챗GPT DJ가 2시간짜리 방송 진행에 나섰다. PD들이 챗GPT에게 ‘‘과학의 날’ 특집으로 진행되는 교통방송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설명한 다음 ‘네가 라디오 DJ라고 생각하고 선곡해달라’고 말하자, 챗GPT가 직접 청취자들이 들을 음악을 선곡하고 PD들의 추가적인 질문에 따라 대본을 써 내려갔다. 더빙은 인공지능(AI) 음성 변환 프로그램 네이버 클로바를 이용했다. 이날 프로그램 구성은 ‘창작동화’(그림자 소년), ‘음악 소개’(챗GPT의 뮤직 스테이션), ‘안전 운전 방법 전달’(챗GPT가 알려주는 안전운전 백서) 등의 코너로 진행했다.

이 특집 프로그램을 기획한 채하나 TBN강원교통방송 편성제작국 PD는 “챗GPT가 자신이 사람인 척을 하더라. ‘첫 DJ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너무 떨리고 설렌 순간이었다’고 대답했다. 소름 돋았다”며 “자기가 진짜 DJ가 된 마냥, 감정 표현을 지어내서 이야기하더라”고 평했다. 이 특집은 채하나·김은희·고신희 PD가 함께 기획했다. 이날 실험적으로 도입한 챗GPT 라디오 방송은 방송사 구성원들에게 어떤 시사점을 남겼을까. 지난 26일 오후 채하나 편성제작국 PD를 전화로 만났다.

- 챗GPT를 DJ로 내세워 방송한 계기는.

“(올 초) 챗GPT 열풍이 불었고,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됐다. 챗GPT에게 시범적으로 선곡시켜봤다. 팝송 선곡은 꽤 하더라. 그런데 가요 선곡은 정확도가 떨어지더라. 재미로 시작해봤는데, 팝송 선곡을 꽤 잘하길래 프로그램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편성제작국장께 특집편성을 부탁했다. 챗GPT에게 ‘네가 라디오 DJ라고 생각하고 선곡해줘’ 등 가정을 넣어줬다. 그러니까 자기가 진짜 DJ가 된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 가정법을 받아들이더라. ‘네 알겠습니다. 이런 곡은 어떠실까요?’라고 대답했다. ‘커피와 관련된 곡으로 추천해줘’라고 주문을 좀 더 좁혀 들어가면 제가 원하는 정확도에 가까워지더라. 제작에 참여한 PD가 저 말고 두 명 더 있는데, 두 명은 프롬프터 역할이었다. 원고 작성부터 선곡 등은 챗GPT가 했다.”

- 선곡 외에도 라디오 대본을 챗GPT가 썼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오프닝 멘트를 주문할 때는 ‘‘과학의 날’에 방송할 특집 라디오 프로그램이고, 교통방송에서 방송을 할 거다’라고 상황을 넣어주면서 ‘네가 라디오 DJ가 된 것처럼 오프닝을 말해봐’라고 입력했다. 그랬더니 챗GPT가 ‘오늘처럼 화창한 날씨에 여러분 반갑습니다’라고 말했고, 교통방송인 점을 고려했는지 ‘운전자 여러분 안전 운전하세요’ 멘트까지 추가하더라. 저희도 너무 재밌어서 계속해서 더 해보라고 주문했다. 창작동화 코너, 음악 소개 코너, 안전 운전 방법 등 3개 코너가 있다. 코너별로 주문을 구체적으로 넣어 원고를 작성했다.”

- ‘창작동화’ 코너는 어떻게 만든 건가.

“‘어떤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라디오니까 1인칭 시점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1인칭 시점으로 써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승전결 정도만 있는 소설을 쓰더라. 완성된 소설을 보고 ‘소년은 어디에서 온 거야?’라고 물었더니 ‘소년은 미래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미래에서는 사람이 올 수 없어’라고 또 말했더니 ‘그것은 동화적인 설정’이라면서 근거를 제시하더라. 수정할 부분들을 말해서 다시 쓰라고 해도, 이전에 자기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 게 최대의 장점이었다. 수정해서 다시 올려줬다.”

“소설 중 ‘소년이 그림자처럼 살았다는 건 무슨 뜻이야?’라고 물어보면 챗GPT가 ‘그 소년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따라 자신의 주관 없이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답했다. 그 상황을 넣으라고 주문하면 또 반영한다. 장면 장면 질문을 넣어가면서 동화를 발전시켜 갔다. 의미나 대사 같은 건 살짝 각색하긴 했다. 그런 부분만 손대고, 나머지는 챗GPT와 계속 이야기하면서 10분짜리 드라마가 나왔다.”

- 더빙도 사람이 아닌 네이버 클로바 더빙을 썼다. 더빙 품질은 만족하나.

“라디오 프로그램은 DJ 역할이 강하다. (사람이 읽으면) 챗GPT가 쓴 원고가 돋보일 것 같지 않아서, AI가 하는 게 어색하더라도 아예 AI 티를 확실히 내기로 했다. 네이버 클로바가 무료 프로그램인데, 꽤 다양한 목소리를 제공하더라. 입혀봤더니 뉴스나 딱딱한 원고는 정말 그럴듯하게 잘 읽더라. 뉴스는 아나운서들이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동화는 좀 웃겼다. 감정 표현이 어색한 부분들이 있었다. 화가 나거나, 애틋한 감정을 나타내야 하는 부분들은 문장 부호로 구현해서 넣어줘야 한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물음표, 느낌표 등을 넣어줘야 했다. 그래도 무료 프로그램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취자 반응은 초반에는 ‘목소리 좋다’, ‘다정하다’ 등 반응이 있었는데, 끝나갈 때쯤 기계음을 2시간 들으니 피곤하다는 문자도 들어왔다.”

- 챗GPT 등 AI가 예상보다 잘한 역할은 무엇인가.

“더빙 AI는 바로바로 입력해서 송출되는 시스템만 갖춰지면 뉴스나 단순 정보 전달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문제는 방송할 때 커뮤니케이션이 돼야 하는데, 이 부분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챗GPT가 자신이 사람인 척을 한다. 방송에서 마지막 한 꼭지는 남겨놨다. 청취자 문자가 들어오면 챗GPT에게 실시간으로 입력해서 답변을 내보냈다. DJ들이 문자 읽어주듯이. ‘너 첫 DJ 소감이 어때?’라고 했더니 ‘너무 떨리고 설레는 순간이었다’고 대답했다. 소름 돋았다. 자기가 진짜 DJ가 된 마냥, 반가웠고 설렜다고 감정 표현을 지어내서 이야기했다. 독거노인분들을 위한 도우미 시스템으로 AI를 쓴다고 한다. 영화 HER에 나오는 인공지능 사만다처럼 될 것 같다. ‘심심이’라는 문자 서비스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챗GPT와 대화하고 놀다 보면 재밌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챗GPT가 청취자들의 문자에 대해 답변하는 모습.
▲챗GPT가 청취자들의 문자에 대해 답변하는 모습.

- 인공지능의 부족한 점은 어떤 게 있었나.

“더빙 AI 같은 경우는 감정 표현이 좀 더 구현됐으면 좋겠다. 챗GPT는 정보 업데이트가 많이 안 돼 있다. (3.5버전 기준) 2021년 정보까지 학습돼있다. 특히 한글 정보는 정확도가 50% 이하로 떨어진다. 틀린 정보를 아는 척하는 때가 있다. 그걸 검증하는 사람이 있어야 방송에 내보낼 수 있지, 챗GPT 이야기를 그대로 썼다가 큰일을 내겠다고 생각했다. ‘이준희 편성제작국장님에 대해 알려줘’라고 했더니, 나오지도 않은 어떤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더라. 방송국 편성제작국장이 하는 일을 그럴듯하게 섞어서 가짜 정보를 주더라.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어디까지나 브레인스토밍 협력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챗GPT에 의지해서 가려면 기술이 더 발전돼야 한다.”

-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라디오 제작 측면에서 나은 점은 무엇일까.

“지금은 없다. 시간이나 품을 들이면 챗GPT가 하는 정도는 다 할 수 있다. 딱 그 정도다. 영어로 방송을 제작하는 사람이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다. 스위스에서 며칠 동안 그걸로 방송했다고 하더라. 영어권에 있는 사람들이면 더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로 방송을 내보내기에는 아직까지 어렵다.”

- 인공지능만으로 라디오를 제작하는 시대가 올까.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이 됐다. 기술이 발전하면 될 것도 같은 생각이 드는데, 라디오는 매체 성격이 다르다. 생방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청취자가 이걸 대중매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DJ와 내가 1:1 대화로 받아들여 소비하는 매체다. 라디오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여러 PD들과 모여서 이야기했다. 조금 더 리얼리티적인 부분을 살려서 정제된 방송보다 사람 느낌 나게 방송을 끌고 가야할 건지, AI를 계속 도입해서 방송하도록 해야 할 것인지. 개인적인 생각은 어쨌든 연출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고, 챗GPT가 어떤 정보를 말해야 할지, 단서를 던지는 역할도 필요하고, 편집인의 역할도 필요하다. 완전히 전적으로 도입되긴 어려울 것 같다.”

- 앞으로 또 방송에 인공지능을 접목할 계획이 있나.

“선곡은 가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팝송의 경우 인터넷 검색하듯 챗GPT를 통해 서치하는 쪽으로 활용할 것 같다. 프로그램 기획시켜봤더니 뻔한 기획을 하더라. 아무래도 자료를 학습해서 결과를 내는 것이라서 뻔했다. 그래도 인사이트를 얻는 정도로 쓸 수 있다. 개요 짜는 걸 시켜서 도움을 받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회사에서 PD들에게 챗GPT 제작기를 발표하라고 했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챗GPT에게 또 물어봤다. ‘방송국 PD들 앞에서 발표할 건데 구성을 해달라’고 했더니, 개요를 짜주더라. 그 개요 순서대로 하니까 이야기가 얼추 정리돼서 발표하고 그랬다. 똑똑한 조력자가 생긴 느낌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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