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영방송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기 위해 국회 입법 절차를 건너뛰고 대통령령(시행령)을 개정하는 이른바 ‘시행령 통치’에 나섰다. 징수 방식을 바꾸는 데 속도를 내더라도, 수신료 징수 근거인 방송법이 유지되는 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여러 혼란이 불가피하다.

공영방송 TV수신료는 1994년부터 한국전력이 TV수상기 소지자의 전기요금에 월 2500원씩 통합해 징수해왔다. KBS는 수신료 징수업무를 위탁할 수 있다는 방송법에 따라 한전에 관련 업무를 맡겼다. 위탁 기관으로 지정받은 한전이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결합해 걷을 수 있는 근거가 방송법 시행령 제43조 2항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5일 대통령실이 ‘분리징수를 위한 관계법령 개정’을 마련하라고 권고하자, 일주일 만인 12일 시행령 개정안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14일 시행령 개정안을 보고 안건으로 상정한다고 밝혔다. ‘위탁 기관으로 지정받은 자가 수신료를 징수할 때 고유업무와 관련한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이를 행할 수 있다’는 시행령 문구를 일부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서울 영등포구 KBS. 사진=KBS
▲서울 영등포구 KBS. 사진=KBS

한전과 KBS가 3년 단위로 체결해온 ‘한전 위수탁 계약’ 기간이 내년 연말까지 남아 있지만 시행령 개정 시 분리징수가 이른 시일 내에 추진되는 경우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계약 기간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자동 연장하되 계약 기간 중 위수탁 업무와 관련한 법령 개정 등 특별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 그 사유를 상대방에게 통보하고 계약 내용에 대해서 상호 협의 결정’하도록 돼 있기에, 시행령 개정을 근거로 한전 측이 계약 관련 협의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행령 개정 과정에 KBS 의사가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제처에 따르면 대통령령 개정은 법령안을 입안하고, 관계기관 협의 및 사전 영향평가를 진행한 뒤 입법예고,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재가·권고로 이뤄진다. 원칙대로라면 법령안 입안 이전에 전문연구기관의 조사나 연구 등으로 심도 깊은 논의를 하고, 법령안에 대한 이견을 조정하기 위한 관계 기관과의 협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8일 김의철 KBS 사장이 방통위·산업통상자원부·KBS 협의체를 만들자는 제안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여론 수렴과 협의 절차를 마련한 취지를 무시하고 ‘속도’에만 치중한다면 여권이 전망한 대로 올해 안에 수신료 분리징수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시행령을 고쳐서 분리징수가 이뤄지더라도 방송법상 TV수상기 소지자에 대한 수신료 납부 의무는 유지된다. 방송법은 수신료 납부 대상이 수신료를 기간 내에 내지 않으면 가산금을 징수하며, 가산금 징수 시 체납자는 방통위 승인에 따라 국세체납처분에 의해 이를 징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분리징수가 가능하다고 인지해 이를 내지 않으면 체납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령 개정 절차. 사진=법제처 홈페이지
▲대통령령 개정 절차. 사진=법제처 홈페이지

방송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분리징수를 졸속 추진해선 안 된다는 우려는 불가피하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수신료의 부과·징수에 관한 본질적인 요소들은 방송법에 모두 규정되어 있다고 할 것”이라며 “공영방송의 직·간접적 수혜자인 수상기 소지자에게 수신료를 부과하는 것은 공영방송사업의 재원마련이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이고 적절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분리징수 문제의 당사자인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는 대통령실을 비롯해 방통위, 산자부 등 행정부 소관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13일 KBS 공영미디어연구소는 “윤석열 정부는 수신료 분리징수의 근거로 방송법 시행령에 수신료 징수 관련 조항이 있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행정부(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법 시행령으로 수신료 징수 절차를 개정하는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과 방송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1999년 “수신료는 국민의 재산권보장의 측면에서나 공사에게 보장된 방송자유의 측면에서나 국민의 기본권 실현에 관련된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수신료 금액의 결정은 납부의무자의 범위, 징수절차 등과 함께 수신료에 관한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사항이므로, 수신료 금액의 결정은 입법자인 국회가 스스로 행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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