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장애인을 위한 OTT 콘텐츠 편성 의무가 논의되고 있지만 정작 TV 장애인 방송 편성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면적으로 보면 의무편성비율을 지키고 있지만 주시청시간대가 아닌 심야와 낮 시간대에 방송이 몰렸고 장르 편중도 컸다.

주시청시간대 화면해설방송 편성 4.6%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실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제출 받은 장애인 방송 편성 현황 자료를 미디어오늘이 분석한 결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방송(화면 속 상황을 음성으로 해설해주는 방송)의 95.6%가 주시청시간대가 아닌 심야와 낮 시간대에 편성됐다. 주시청시간대는 평일 오후 7시부터 11시, 주말 및 공휴일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로 ‘황금 시간대’라 불린다. 인기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시간대에 시각장애인들의 제대로 된 청취가 어려운 상황이다.

▲ 2022년 지상파3사, 종편4사 화면해설방송 편성 시간대별 분류. 다른 장애인방송과 비교해 봤을 때 화면해설방송의 주시청시간대 편성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 2022년 지상파3사, 종편4사 화면해설방송 편성 시간대별 분류. 다른 장애인방송과 비교해 봤을 때 화면해설방송의 주시청시간대 편성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 2022년 지상파3사, 종편4사 폐쇄자막방송 편성 시간대별 분류
▲ 2022년 지상파3사, 종편4사 폐쇄자막방송 편성 시간대별 분류

지난해 기준 지상파3사와 종합편성채널4사의 화면해설방송 편성비율은 15.1%로 나타났다. 7개 방송사 모두 편성 기준(10%)은 충족했지만 방송사에 따라 편성 비율에 차이가 컸다. 편성 비율이 가장 낮은 방송사는 JTBC(10.6%)였다. 이어 SBS(12.25%), KBS(13.24%), TV조선(13.30%), MBC(17.13%), MBN(17.79%), 채널A(23.39%) 순이다. 방송사마다 편성 비율이 최대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특히 화면해설방송의 주시청시간대 편성 비율이 미미했다. 화면해설방송 전체 편성을 100%로 상정할 경우 7개 방송사의 주시청시간대 평균 편성 비율은 4.6%에 그쳤다. 95.4%는 기타 시간대에 편성됐다. 

주시청시간대가 기타 시간대보다 시간 비중이 작다는 점을 감안해도 화면해설방송 편성 비율은 다른 유형의 장애인 방송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7개 방송사 주시청시간대의 폐쇄자막(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자막방송) 편성 비율은 18.9%, 수어방송 평균 편성 비율은 18.3%였다. 

▲   2022년 지상파3사, 종편4사화면해설방송 편성 현황. 보도 프로그램 편성은 없었다. 
▲   2022년 지상파3사, 종편4사화면해설방송 편성 현황. 보도 프로그램 편성은 없었다. 

주시청시간대 화면해설방송 편성을 가장 적게 한 방송사는 SBS(0.57%)였다. SBS는 지난해 한 해 동안 화면해설방송 5만2929분을 기타시간대에 편성한 반면 주시청시간대엔 305분만 편성했다. 1년 동안 주시청시간대에 방송한 화면해설방송이 5시간 분량에 그친 것이다. 이어 KBS(0.65%), TV조선(1.63%), JTBC(3.12%), MBC(5.31%), 채널A(9.36%), MBN(11.64%) 순으로 나타났다. 

방송사에 따라 주시청시간대 화면해설방송 편성 비율 격차는 최대 20배까지 벌어졌다. 지상파방송인 KBS와 SBS의 주시청시간대 편성이 종편에 비해 크게 부족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장르 편중도 컸다. 방송 장르별로 나눠보면 지난 4년간 7개 방송사 모두 ‘보도’ 부문의 화면해설방송 편성 자체가 없었다. 반면 지난해 기준 시사·교양 분야의 화면해설방송 편성 비율은 7.29%, 예능의 경우 7.81%로 나타났다. 보도 장르 특성상 준비 시간이 촉박해 화면해설방송 제작에 어려움이 있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2018년 MBC는 보도 부문에서 화면해설방송을 3.1% 편성한 바 있다. 시각장애인이 화면해설 없이 뉴스를 청취할 경우 특정 발언이 누가 하는 발언인지, 어떤 상황을 묘사하는지 알기 어렵다. 

수어방송은 방송사 간 격차가 가장 큰 장애인방송 유형이었다. 7개 방송사의 주시청시간대 편성 비율을 보면 MBC(49.29%)와 SBS(42.92%)의 주시청시간대 편성 비율이 높았다. 반면 종편4사 모두 수어방송 주시청시간대 편성 비율은 2% 미만으로 격차가 20배 이상 벌어졌다.

이처럼 장애인방송이 제대로 편성되지 않는 이유는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가 전체 편성 기준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와 종편에 폐쇄자막방송 100%, 화면해설방송 10%, 한국수어방송 5%에 해당하는 편성 의무만 규정하고 주시청시간대나 방송 장르별 규정은 없다. 

외주로 운영하는 장애인 해설·자막방송

방통위가 김예지 의원실에 제출한 7개 방송사의 장애인방송 관련 계약현황 자료에 따르면 주요 방송사들의 장애인 화면해설방송과 폐쇄자막방송 업무는 외주 업체가 전담하고 있었다. 이는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장애인방송의 질적 측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폐쇄자막과 화면해설방송은 분야별로 각각 2개 업체가 지상파3사와 종편3사(TV조선·채널A·MBN)의 계약을 전담하고 있었다. JTBC는 대외비라는 이유로 장애인 방송 계약업체명을 밝히지 않았다.

▲ 화면해설방송 녹음 현장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 화면해설방송 녹음 현장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화면해설방송은 방송사가 영상을 외부업체에 넘기면 화면해설작가가 영상을 보고 화면해설 콘텐츠를 제작한 다음 방송사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특히 방송사들이 공개되지 않은 미방영분의 외부 업체 제공을 꺼려하는 탓에 대부분 ‘재방송’으로 제작되고 있다. 이는 화면해설방송이 다른 장애인방송에 비해 주시청시간대 편성 비율과 보도 부문 편성 비율이 크게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홍미정 화면해설작가는 “그나마 화면해설방송이 이뤄지는 편성도 대부분 재방으로 한다. 그래서 평일에 출근하면 동료들이 특정 방송프로그램 이야기를 할 때 혼자 이해를 못한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본방 일정 자체가 워낙 급박한 경우가 많아 제작 시간 때문에 재방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화면해설까지 제작과정이라고 생각해 제작 단계 때부터 함께 작업하면 본방송으로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폐쇄자막을 제작하는 속기업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속기업체에서 자막 작업을 해 방송사에 보내면 이후 방송사에서 자막을 방송에 붙여 송출하는 방식이다. 폐쇄자막 속기는 현재 방송되는 내용을 속기업체가 즉각 작성해 송출하는 ‘생방송’으로 이뤄지는 작업이 많은데 외부에서 작업을 하기에 문제가 생겨도 직접적인 관리 감독이 어렵다. 폐쇄자막은 다른 장애인방송과 달리 지상파와 종편이 100% 편성을 해야 한다.

▲ 지상파 방송 뉴스에서 폐쇄자막(하단) 및 수어통역(우측 하단)을 하는 장면. 사진=MBC 갈무리
▲ 지상파 방송 뉴스에서 폐쇄자막(하단) 및 수어통역(우측 하단)을 하는 장면. 사진=MBC 갈무리

2018년 11월 서울 KT아현지사 화재 때 사고 지역에 위치한 KBS 담당 속기업체가 KT망을 쓰고 있어 KBS 폐쇄자막 방송이 5시간 동안 중단되는 사고가 벌어졌다. 시청자미디어재단에 따르면 2019년 5월부터 2020년 9월까지 폐쇄자막 송출 중단 방송사고가 21건에 달했다. 일부 심야시간대 방송의 경우 제대로 조치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숙련도 부족으로 문장 일부를 제대로 치지 못하거나 오타를 내는 일은 흔하다. 

방송사들이 저가 입찰 방식을 선호하면서 폐쇄자막 노동자의 숙련도 부족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복수의 전현직 속기사들에 따르면 속기사들은 법원이나 국회 등 국가기관을 선호하는 반면 폐쇄자막 업체는 ‘관문’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방송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폐쇄자막 속기 작업은 한글속기 국가기술자격 1~2급을 보유한 경우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일부 업체는 자격증을 보유하지 않은 인력도 작업에 투입해 방통위 산하 시청자미디어재단이 개선을 요구한 적도 있다.

과거 자막방송 속기업체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처음 듣는 말을 쓰기 때문에 사투리나 전문 용어가 나오면 바로 알아듣고 치기 힘들다”며 “고숙련자들도 있긴 하지만 속기업체에서 방송자막에 신규 인력을 중심으로 투입한다. 처우가 좋지 않아 중간에 그만두거나 어느 정도 경력이 차면 관공서로 이직을 한다”고 했다.
 
그동안 장애인방송에 관한 별도의 품질 평가도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다. 이와 관련 방통위는 “올해 장애인방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장애인의 관점을 반영할 수 있는 ‘장애인방송 품질 평가제도 도입방안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방송을 향유할 수 없는 이유는 방송사와 장애인 화면해설 및 폐쇄자막 방송 업체와의 원활한 자료 공유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여전히 방송계에서는 장애인에게 선심쓰듯이 배리어프리 지원을 하는 풍토가 있다. 배리어프리 방송의 양과 질이 좋아질 수 있도록 방송계 사람들의 인식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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