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26일 ‘수원 여중생 마약’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여중생 2명이 평일 저녁 번화가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다가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임의동행, 마약 간이 검사 결과 2명 중 1명이 '양성'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지역신문 경기일보가 첫 보도를 했고, 그 이후 전국의 신문·방송 보도가 뒤따랐다. 조선일보, 세계일보, 국민일보, 매일경제, 동아일보, 중앙일보, 파이낸셜뉴스, 한국일보, 서울경제, 머니투데이, 한국경제 등이 이틀간 1건에서 많게는 3건까지 기사를 내보냈다. ‘여중생’과 ‘마약’을 키워드로 뉴스가 급속도로 확산됐지만 기사 대부분은 별 차이가 없었다. 경찰에 직접 확인하지 않고 베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기사도 보인다.

마약 간이 검사 결과가 부정확할 수 있다는 경찰 요청에 따라 최초 보도한 경기일보는 기사에서 ‘양성’이라는 말을 빼고 ‘내사 착수’로 고쳤지만 후속 보도한 매체 중 끝까지 ‘양성’을 고집한 곳도 적지 않다. ‘간이 검사 양성’이라고 했으니 고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있었을 수 있다. 이 사안을 직접 취재해 쓰지 않았다면 기사를 고쳐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최근 경찰에 통보한 정밀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간 기사들을 보니 보도량은 많았는데 그 내용이 대부분 엇비슷했다. 이른바 사회부 경찰 담당 또는 전국부 지역 주재가 아닌 이른바 '온라인 대응팀'이 기사를 쓴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중학생들이 마약 간이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고 잘못 보도한 매체들
▲ 중학생들이 마약 간이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고 잘못 보도한 매체들

A사의 B기자는 수원 여중생 마약 기사를 쓴 날 모두 13건의 기사를 썼다. 이날 하루 기업, IT, 정치, 사회 분야를 고루 다뤘다. 4월 한 달 중 기사 출고량이 가장 많았던 날이 두 번 있었는데 각각 16건의 기명 기사가 올라와 있다. 점심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을 근무했다고 가정하면 한 시간에 두 건의 기사를 취재하고 쓴 셈이다. 최근 한 달 동안 B기자의 기사가 올라오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다. 주말과 휴일에도 쉼 없이 일하는 것으로 보인다.  C사 D기자는 수원 여중생 기사를 쓰던 날 총 17건의 기사를 올렸다. 인테리어, 건강식품, 프랜차이즈, 외신, 법원, 날씨 관련 기사를 썼다.

이 두 기자는 광범위한 분야의 뉴스를 짧은 시간에 취재하고 기사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또 소속 회사의 매출액이 동종업계 TOP10에 포함돼 있고 포털과 콘텐츠제휴(CP) 계약을 맺고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처럼 대형 매체 가운데 포털을 이용한 유·무형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기사를 무리하게 쏟아내게 하는 조직을 운영하는 곳이 여럿이다. ‘지역성 구현’, ‘서울중심주의 타파’ 등을 강조하며 포털 CP 계약에 성공한 지역신문들도 별 고민 없이 수원 여중생 마약 기사 보도 행렬에 올라탄 것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베끼기 기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된다. 주로 타사 기사 또는 보도자료의 전체 또는 일부를 무단으로 가져다 쓰거나 그대로 옮겨 쓰는 행태를 뜻한다. 더 넓게 보면 ‘받아쓰기 보도’, ‘따옴표 저널리즘’도 베끼기 기사의 범주에 속한다. 이런 기사를 대량으로 찍어 내 포털과 SNS에 유통시키는 매체가 주로 대형 신문사라는 점은 모순적이다. 지면에서는 게이트 키핑을 엄격하게 적용하면서도 포털에 보낼 때는 선별 기준을 대폭 완화하거나 아예 못 본 척하는 이중적 태도 때문이다. ‘이게 같은 매체에서 나온 기사가 맞는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일 때도 있다. 온라인 대응팀 기자 처우를 다른 기자들과 다르게 적용하는 곳도 있다. 임금 등 근로조건의 차이가 있는 이중 고용구조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건 기자를 꿈꾸는 청년이 계약직, 인턴 형식으로 온라인 대응팀에서 경력을 들어갈 때다. 여기저기 있는 것을 가져다 짜깁기 해 만든 기사로 자신의 언론 경력을 시작한 기자들. 어찌 보면 언론사들은 기자를 꿈꾸는 청년이 ‘훈련된 기자’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착취하고, ‘진정한 기자’가 되기를 바라는 욕망을 제거하는 대가로 조회수와 포털 전재료를 거둬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신문의 날은 신문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하는 목적으로 제정됐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도 큰 관심을 얻지 못하는 ‘비운의 기념일’이다. 매년 선정된 신문의 날 표어를 보면 독자(또는 수용자)가 신문에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올해 67회 신문의 날 표어는 ‘나를 움직인 진실, 세상을 움직일 신문’이고, 지난 해에는 ‘신문 읽기 사이에는 생각하는 자리가 있습니다’이었다. 포털이 신문 유통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한 이후 독자가 신문에게 바라는 건 빠른 속보가 아니었다. ‘시대가 빨라질 때, 신문은 깊어진다’(2014년)라고 믿음과 ‘신문이 말하는 진실은 검색창보다 깊(어야 한)다’(2021년)는 제안이었다.

베끼기 기사로는 이런 독자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 ‘취재 없는 기사’만 없애도 언론 불신의 상당 정도는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신문 단독 기사로 시작된 수원 여중생 마약 보도가 확산된 과정을  되짚어 보면서 신문 산업 내부에 ‘베끼기 유발자들’이 적대적 공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됐다. 지면이 아닌 포털과 SNS로 뉴스를 접한 세대는 신문을 어떻게 생각할까. 베끼기 기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보내는 관행을 멈추지 않으면 그 어떤 조치가 이뤄진다 해도 언론 불신 회복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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