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 김포골드라인 긴급 대책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70번 버스 노선에 전세버스 30대를 투입한다. 스마트폰 앱으로 아파트 단지 근처까지 불러 이용하는 수요응답형 버스(DRT)를 운행할 예정이다. 출퇴근 시간 꽉 막히는 서울 방면 도로를 2차로에서 3차로로 넓히고, 버스전용차로를 개화역~김포공항역까지 연장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소방구급요원과 응급구조사를 역사에 배치해 응급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방침을 세웠다. 긴급 대책은 설령 실효가 떨어져 보인다고 해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은 건 분명하다. 

김포~서울 도시철도의 혼잡도가 서울지하철 9호선보다 1.5~2배 정도 심한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여야 주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인데 왜 갑자기 야단들인지 의아했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이 김포골드라인 대책으로 수상버스를 도입하겠다고 나선 건 뜬금없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김포 시민의 편의를 도모하는 목적이라기보다 ‘한강 르네상스’ 공약을 실행하려고 내세운 구실로 보였다. 

▲ 김포골드라인 열차. 사진=김포시청
▲ 김포골드라인 열차. 사진=김포시청

이 모든 호들갑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 지시에서 시작됐지만, 그는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출근 시간에 김포골드라인을 직접 타본 경험이 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김포는 젊은 세대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데 출퇴근이 굉장히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김포골병라인'으로 불리는 이 도시철도가 미어터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윤 대통령은 이미 1년 전에 짐작하고 있었다.

실제 김포시는 최근 10년간 인구가 급증한 도시로 30~40대 비율이 높다. 김포한강신도시 개발 이후 젊은 인구가 대거 유입됐다. 2011년 26만 명이던 인구수는 2023년 4월 현재 48만 명으로 최근 10여 년 간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김포한강신도시는 김포시 내에서 다른 지역보다 ‘젊은 도시’다. 장기동(38.6세·2.55명), 운양동(38.0세·2.65명), 구래동(36.4세·2.19명), 마산동(38.2세·2.36명)은 김포시의 평균 연령(41.0세)보다 3~5세가량 낮다. 가구당 인구수는 2.19~2.65명으로 김포 전 지역의 평균 가구당 인구(2.39명)를 상회하거나 조금 못 미친다. 

17만 명의 주민 상당수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으로 김포골드라인의 주요 고객이다. 교통 체증이 심해 출퇴근 자가용 이용은 엄두도 못 낸다. 인천 강화군, 검단신도시에서 서울을 향하는 차량이 올림픽대로 진입 구간에서 꽉 막혀 옴짝달싹하기 일쑤다. 광역버스 역시 마찬가지다. 버스전용차로가 중간에 끊겨 있고, 운행 노선이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정시 출근을 보장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김포골드라인뿐이지만 짧은 시간 몰려드는 인파를 2량짜리 꼬마열차가 수용하기엔 역부족이다. 눈앞의 열차 3대를 보내고 나면 4번째 겨우 탑승할 수 있다고 해 이름 붙여진 ‘3전4기 열차’. 이 악몽과도 같은 출퇴근 길을 김포 시민들이 지난 3년 동안 겪어왔고, 이 지역 여야 정치인과 시민단체가 수도 없이 중앙 정부와 정치권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지옥철 체험’만 요란스럽게 한 뒤 꼬리를 빼고 묵묵부답이었다. 윤 대통령뿐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대권에 도전한 여야 유력 정치인 이낙연, 유승민 전 의원도 그랬다.

늦어도 너무 늦게 나온 김포골드라인 대책들을 보면서 수도권 신도시의 운명을 떠올렸다. 김포한강신도시는 2003년 ‘2기 신도시’로 지정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서울 집값을 안정화 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판교·동탄·위례는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값 안정을 목적으로, 김포한강·운정·검단은 서울 강서·강북 지역 주택 수요 분산을 위해 밑그림이 그려졌다. 서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곧 터질 것 같을 때마다 정부는 ‘신도시 카드’를 내밀었는데 대부분 ‘베드타운’이 됐다. 자족 기능을 갖춘 거점 도시 개발이라는 목표는 그저 명분에 불과했다. 서울에 집을 얻을 재정 여력이 부족한 이들이 신도시로 향했다. 서울 전셋값 급등 시기 더는 버티지 못해 짐을 싼 ‘전세 난민’ 다수가 향한 곳이 김포한강과 인천검단이었다. 

김포한강은 서울 도심에서 25~30㎞ 떨어져 있는 거리에 불과한데 서울을 오가는 철도망 구축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정부는 사업 타당성이 떨어진다며 예산 지원을 거절했다. 신도시 입주민이 낸 교통분담금에 김포시 자체 예산을 더해 철도를 착공했다. 이 돈을 마련하느라 김포시는 수년 간 긴축예산을 편성해야만 했다. ‘서민 예산 털어 도시철도 만든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서울 집값 안정화를 위해 지정된 도시였지만, 김포골드라인은 전국 최초로 국비 없이 건설된 ‘수익자 원천 부담 도시철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정부의 철저한 무관심과 소외 속에서 2량짜리 꼬마열차가 탄생한 것이다.

경기·인천을 기반으로 한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면 이 지역 시민들의 주요 관심사가 ‘부동산’과 함께 ‘교통’에 쏠려 있음을 체감한다. 서울의 직장, 학교 등을 매일 오가야 하는 시민의 불편이 민원 현장 기사로 지역신문에서 자주 다뤄진다. 최근에는 광역버스 입석 금지로 출근 시간마다 마음을 졸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 이야기가 많았다. 인천에서는 청라~강서 BRT와 계양역(환승역)의 혼잡도를 개선하는 일이 주요 관심사다. 서울 출퇴근 시민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 이 지역에서는 중요 민생 현안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와 서울시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서울시는 이기적이다. 현재로선 김포골드라인 혼잡도를 줄일 효과적인 해법은 서울 5호선 연장 사업인데, 서울시는 이 사업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방화동 건설 폐기물 처리장의 김포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처리장은 건설 폐기물 수집·운반 업체 9곳이 하루 2천500t을 처리하는 곳이다. 비산 먼지 발생, 소음 유발 등으로 민원 유발이 큰 지역이다. 서울시와 강서구는 방화차량기지와 건폐장의 일괄 이전을 5호선 연장의 대가로 얻어 내려는 심산이다. 서울시의 야박하기 짝이 없는 행정은 김포와 인천의 갈등을 유발했다. 김포에서는 서울의 건폐장을 받아 5호선을 연장한다면 인천 검단지역을 최소 정차하는 노선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집값 안정을 목적으로 조성된, 수도권 변방 신도시의 처지가 이렇게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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