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안’을 23일 처리했다. 이 법안이 5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요금제 시행 근거가 마련된다. 같은 날 영호남 8개 지역(광주, 대구, 부산, 울산, 경남, 경북, 전남, 전북) 자치단체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피 시설 지역 주민을 위한 차등요금제 시행’을 정부에 촉구했다. 발전소를 끼고 사는 지역의 신문사들은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수년 전부터 각 지역에서 차등요금제 도입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서울(중앙)은 묵묵부답이거나 어불성설이라며 일축해 왔는데, 그런 차등요금제의 법제화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 국제신문 '뭐라노' 갈무리
▲ 국제신문 '뭐라노' 갈무리

차등요금제가 전국 각 지역의 핵심 이슈로 부상한 것에 비해 전국을 취재 권역으로 삼은 언론들은 이 현안을 소홀히 다루는 느낌이다. 서울 지역 주민들이 알면 좋을 뉴스인데 대부분은 이런 법안이 처리되고 있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것 같다. 실제 이 제도가 시행되면 서울 지역 주민과 기업의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될 텐데도 그렇다. 전력 자급률이 10%에도 못 미치는, 그래서 전국 각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를 빨아들이는 도시가 서울이다. 부산 지역 일간지 국제신문의 뉴스레터 '뭐라노'가 발행한 <분산에너지 시대>(3월 22일)는 구독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발전소는 대부분 서울에서 먼 곳에 있습니다. 혹시 모를 원전의 대형사고 가능성을 안고 사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에 사는 주민 간 전기요금이 같습니다. 화석 연료 발전으로 인한 공기오염 발생지역에 사는 주민과 그렇지 않은 지역에 사는 주민이 같은 전기요금을 쓰는 현실을 지금의 시각으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 대전일보 기사 갈무리
▲ 대전일보 기사 갈무리
▲ 경인일보 기사 갈무리
▲ 경인일보 기사 갈무리

한국에서 전력 자급률이 200%를 넘는 지방자치단체는 부산, 충남, 인천, 경북으로 원자력발전소, 화력발전소를 가동하는 지역이다. 지역 수요보다 많은 전기을 생산해 서울로 보내는 과정에서 송·배전 손실액만 연평균 1조7천억원이다. 육지에서는 송전 시설 설치 갈등으로, 바다에서는 온배수 피해로, 하늘에서는 대기오염 물질 확산으로 지역이 감당하는 사회적 비용 역시 막대하다. 발전소 주민들만 겪는 유무형의 피해를 더는 참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것이 이들 도시 여론이다.

한국은 이미 서울 중심의 ‘도시국가’다. 17개 특별·광역시, 243개 시·군·구로 된 지방분권형 국가로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지역에서는 인구가 줄고, 학교는 텅 비어 가고, 기업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지역이 서울을 떠받치는 하부기지로 전락하면서다. 

이 표현이 과도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최근 사례로 정부의 동해안 벨트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의 과정을 보면 왜 지역이 하부기지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는 2011년 정전 사태 이후 예비 전력 확보를 위해 석탄화력발전소 신설을 추진했다. 발전소를 유치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지역은 국내 어디에도 없다. 주민 반발 등 우여곡절 끝에 강원 영동 지역에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이 결정됐다. 작년 하반기 일부 가동이 시작됐다. 그런데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서울, 경기 지역에 보낼 송전선로가 아직 깔리지 않아 일부러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다. 민간 발전사업자들이 정부와 한전에 손실 보상을 요구하는 촌극이 빚어지고 있다. 송전선이 계획된 삼척, 영월, 정선, 평창, 홍천, 횡성 지역 주민 반발이 극심하다. 이들 주장의 근거는 간명하다. “왜 수도권을 위해 지역이 희생해야 하는가!” 지역을 서울의 하부기지로만 보면서 펼치는 정책은 공정하지 못하고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천에 사는 ‘수도권 기자’로 차등요금제를 글의 소재로 선택하는 게 부담이 됐지만, 수도권의 변방 인천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알리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인천 남서쪽 영흥면에는 석탄화력발전소 영흥화력 1~6호기가 가동 중이다. 여기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인천 전체의 60%에 이른다. 영흥화력을 비롯해 서해 연안의 LNG복합화력에서 생산된 전기 절반 이상은 서울 등지로 보내진다. 강원, 충남, 영남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천은 수도권의 전기 생산기지로 한때 전력 자급률이 357%(2013년)까지 치솟을 정도였다. 여기에 더해 인천은 서울, 경기 지역의 쓰레기까지 받아 처리하는 도시다. <특별·광역시 중 전력 자급률 높은 인천…‘요금 차등 부과해야’>란 제목으로 지난달 게재된 경인일보 기사의 댓글은 인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짚었다.

“서울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인천에 보내고, 서울에서 쓰는 전기는 인천에서 생산해서 보내고...”

그러니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최소한 전기요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수도권에서 인천을 빼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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