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기자들과 사측의 갈등이 또다시 불거져 나왔다. 지난해 김진오 CBS 사장이 윤석열 대통령 관련 기사의 내용 삭제를 요청해 기자들이 단체로 반발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갈등이 계속되는 모습이다. 기자들은 보도국장을 향해서도 “리더십 부재”라며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기자협회 CBS지회는 6일 총회를 거쳐 지난 7일 ‘기자는 기자답게 국장은 국장답게 사장은 사장답게’ 성명을 내고 “얼마나 더 무너져 내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며 “부당한 압력과 간섭이 넘쳐난다”고 비판했다.

▲ 지난 7일 CBS 사내에 붙은 기자협회 CBS지회 성명.
▲ 지난 7일 CBS 사내에 붙은 기자협회 CBS지회 성명.

CBS 보도국 기자들은 지난달 발생한 튀르키예 지진 국면에서 현지 취재를 하지 못했다. 5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세계적 재난에 대부분의 경쟁사가 기자를 보내 현장을 전했지만 CBS는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구성원에 따르면 현장 파견 품의를 제출했지만 예산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CBS지회는 “과거 사례를 일일이 꺼내들 필요는 없다. 주요 경쟁사의 파견 현황을 언급할 가치도 없다”며 “경기 침체에 따른 긴축 경영 기조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구성원들에게 이해를 구하면 될 일이다. 바로 권한과 책임의 문제”라고 했다.

최근의 출입처 인사 조정에 대해서도 사장 개입으로 인해 의아한 인사가 나왔다는 지적이다. 사장은 부인했지만 내부에선 보도국장을 ‘패싱’한 의사 결정으로 인식했다. CBS지회는 “방송편성규약에 따르면 보도 상의 실무권한과 책임은 보도국장에게 있다. 국장은 그 권한을 포기했고, 책임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CBS지회는 “대신 부당한 압력과 간섭이 넘쳐난다. 이른바 ‘빈집 기사’ 사태는 일례에 불과하다”며 “보도국이 국-부-팀 체제로 짜인 이유는 업무 지휘 체계를 간명히 하는 동시에 일선 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 체계에 어긋나는 지시를 하거나 부당하게 압력을 넣고, 또 간섭할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사장 등 경영진은 물론이요, 국장과 부장도 그렇다”고 했다.

김진오 사장은 지난해 11월5일 CBS 기사 <[단독]참사 당일 ‘빈 집’인 尹 관저 지킨 경찰…지원 불가했나>에 대해 기사가 잘못됐다며 직접 내용 삭제를 요청해 구성원 반발을 맞았다. 당시 김 사장은 미디어오늘에 “‘빈집’이라는 팩트가 틀렸다. 그 공간에는 모든 장비, 특히 도·감청을 방지하는 어마어마한 장비가 들어가 있고 대통령, 김건희 여사 등이 빈번하게 방문한다고 들었다”며 “해당 기사를 보면 왜 이태원에 (관저 경호) 인력을 동원하지 않았냐는 뉘앙스의 기사인데 그것은 가정법이다. 가정법에 의한 기사는 기사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CBS노조를 비롯해 기자들이 기수별 성명을 내고 사장이 편집권에 부당 개입했다며 반발했다.

[관련 기사 : 윤석열 대통령 관저 ‘빈집 경호’ 단독 보도 내용 삭제 요청한 CBS사장]

[관련 기사 : CBS 32기 기자들, 사장에게 공개 사과 요구]

[관련 기사 : CBS 사장, 보도개입 논란에 "미안하다" 결국 사과]

김 사장은 이후에도 보도국에 의견 개진을 계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성원들은 ‘지난해 합계출산율 0.78명’이란 숫자가 지난달 발표되자 직접 보도국에 내려와 사장이 불만을 표출했다고 전했다. A기자는 미디어오늘에 “저출산이면 나라가 망하는데 왜 기사를 안 쓰냐며 언론인이 맞냐고 지적했다. 언성이 꽤 높아서 구성원들이 놀랐었다”고 했고, B구성원은 “의견개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편집권 개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외 다른 기사에서도 의견을 직접 표출해 일각에서 부글부글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 CBS 사옥.
▲ CBS 사옥.

‘빈집’ 논란 이후 CBS 노조는 사내 공정방송협의회(공방협)를 열어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사장의 의견 개진 자체를 막을 순 없다며 맞선 바 있다. 당시 공방협에 참석했던 이재상 제작국장은 미디어오늘에 “사장이 국장에게 아무 의견도 제시할 수 없느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표로 뽑힌 국장한테는 사장으로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그걸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국장의 몫”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사장 보도개입 논란 이후 갈등 깊어지는 CBS…노사합의 불발]

CBS지회는 “사장에게 경고한다. 면박과 호통으로는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며 “방송과 경영의 최고책임자로서 부당한 외부간섭을 배제하고 방송의 독립을 지킬 책무를 진 사장이 외려 그 당사자가 되지 말라”고 했다. 이어 이재기 보도국장에게도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고 그 책임을 감당하라”며 “리더십 부재 상황을 더 이상 방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CBS지회는 보도국장에 보도국 소속의 공정보도실천위원회를 요구하며 “보도과정에서의 제작 자율성 침해는 우려스럽게도 이미 일상화됐다”며 “보도위원회를 향후 종합뉴스 개편 등에 일선 기자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성명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김진오 사장과 이재기 보도국장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별 다른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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