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처음 시작해 지난 2020년 5월 ‘잠정 휴식’을 선언, 사실상 폐지된 KBS ‘개그콘서트’가 부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KBS 측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개그콘서트 부활을 환영하는 여론도 있지만, 지상파 프로그램이 사라진 뒤 유튜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개그맨들이 지상파에 다시 돌아와 자유로운 개그를 할 수 있을지 우려도 나온다.

KBS 관계자는 30일 개그콘서트 부활에 “정통 개그 프로그램 부활을 위해 논의 중인 것은 맞지만 언제 어떻게 누가 프로그램을 하겠다는 구체적 기획안이 확정된 바는 없다”고 했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개그콘서트와 같은 프로그램이 오는 6월 김상미 KBS CP에 의해 부활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 CP는 개그콘서트를 연출한 바 있고, 지난해 예능 프로 ‘빼고파’를 기획했다.

김 CP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노코멘트”라고만 했다.

방송 관계자들 말을 종합해보면, KBS 측에서 정통 개그 프로그램 부활을 언급하며 개그맨들과의 미팅 및 자료 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개그콘서트. 사진=KBS 홈페이지
▲ 개그콘서트. 사진=KBS 홈페이지

KBS ‘개콘’ 출연 개그맨 “자율권 보장이 관건”

지상파 개그 프로그램이 부활할 것이라는 보도에 환영의 목소리도 들린다. 

개그콘서트 출신으로 현재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하는, 익명을 요청한 한 개그맨은 30일 통화에서 “유튜브에서 자리 잡았대도 지상파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라고 한다면 대부분 출연하고 싶을 것”이라며 “과거처럼 ‘이거 안 된다, 저거 안 된다’ 같은 제약이 여전히 조금은 남아 있겠지만, 개그맨들이 그동안 유튜브 등을 통해 많은 시청자에게 인정 받은 만큼 이전보다는 더 자율권이 보장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 개그맨은 “아무리 유튜브에서 인기를 끈대도 지상파에서 내 개그를 선보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영향력에서도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해 부모님이나 친척, 친구들에게 오는 피드백이 다르다. TV에서 내 개그 코너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개그맨들은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유튜브에서 잘나가는데 왜 지상파에서 개그를 하지?’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의지는 있는 것 같다”고 동료들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다만 방송사에서 개그맨들과 얼마나 더 적극 합의를 이뤄가느냐가 관건”이라며 “이전에는 분위기가 굉장히 경직돼 있던 것이 사실이고 코너도 어느 날 갑자기 폐지되는 등 불안한 상황이 이어졌다. 다만 이젠 조금 분위기가 바뀌어 방송사도 태도가 바뀌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있다”고 했다.

유튜브 활로 찾은 개그맨, 지상파에서 가능할까

개콘 부활에 환영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유튜브 개그 콘텐츠의 수위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지상파 개그 프로그램에 만족할지 우려도 있다.

2014년 MBC ‘코미디의 길’, 2017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폐지되고 KBS ‘개그콘서트’까지 폐지되며 개그맨들은 고초를 겪었지만 최근 개그 유튜브는 개그맨들의 무대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SBS 웃찾사에서 활동했던 개그맨 김경욱의 ‘다나카’ 캐릭터다. 4년 전 탄생한 다나카 콘텐츠가 지난해 크게 상승세를 타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 정도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2022년부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개그 캐릭터 ‘다나카’. 다나카는 SBS ‘웃찾사’ 개그맨 출신 김경욱씨가 연기하는 일본인 호스트 설정의 캐릭터다. 
▲ 2022년부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개그 캐릭터 ‘다나카’. 다나카는 SBS ‘웃찾사’ 개그맨 출신 김경욱씨가 연기하는 일본인 호스트 설정의 캐릭터다. 

KBS 공채 개그맨 출신들이 만든 유튜브 ‘숏박스’도 지난해 큰 주목을 받았다. 숏박스는 KBS 공채 개그맨 김원훈, 조진세, 엄지윤이 만든 채널로 ‘장기 연애’와 같은 콩트 개그로 인기를 끌었다. 이들 중 일부는 tvN ‘SNL 코리아’ 새 시즌 크루로 합류해 활약하고 있다. 

[관련 기사: 숏박스, ‘연예 기자’ 풍자에 “현실고증” vs “불쾌”]

▲ 숏박스 ‘특종’ 영상 갈무리. 사진 출처=숏박스 유튜브. 
▲ 숏박스 ‘특종’ 영상 갈무리. 사진 출처=숏박스 유튜브. 

KBS·SBS 공채 출신 코미디언들(정재형, 김민수, 이용주)이 결성한 유튜브 ‘피식대학’ 역시 내놓는 콘텐츠마다 시선을 끌고 있다. 2019년 만들어진 이 채널은 ‘05학번 이즈백’, ‘한사랑 산악회’ 등과 같은 상황극 개그로 인기를 끌었고, 2021년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했다. 최근에는 ‘The Psick Show’(피식쇼)를 공개했는데 넷플릭스의 해외 토크쇼와 영미권 팝, 힙합씬 토크쇼를 패러디하는 형태를 갖췄다. 내놓는 시리즈마다 연속 히트를 치면서 2023년 1월 기준 185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개그 콘텐츠들에 호의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슬아슬한 선을 적절하게 타면서 대중의 인기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선’이 지상파, 특히 공영방송으로 간다면 대부분의 개그를 선보이지 못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당장 다나카 캐릭터만 봐도 ‘일본인 호스트’라는 설정이다. 만약 공영방송에 접객원인 호스트 직업을 가진 개그 캐릭터가 나온다면 방송 심의 민원 등이 제기될 수 있다. 또 다나카식 개그가 일본인 발음을 희화화한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다나카 개그 가운데 ‘꽃’을 ‘꼬ㅊ’라고 발음하는 개그가 대표적인데 이 같은 언어유희도 공영방송에선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어려울 수 있다. 

다나카뿐 아니다. 숏박스 콘텐츠인 ‘장기 연애’ 코너 속 상황극, 이를 테면 오래된 연인이 모텔에서 나누는 ‘무미건조한 대화’가 선사하는 유머는 전파를 타지 못할 것이다. 피식대학에서 미국 힙합 문화를 패러디하며 내뱉는 욕설도 지상파엔 나올 수 없는 아이템이다. 

▲ ‘The Psick Show’는 피식대학의 글로벌 진출 프로젝트를 표방하며 해외팬 전용 콘텐츠라고 홍보하고 있다. 미국 토크쇼를 패러디하는 형식의 개그다. 사진출처=피식대학 유튜브. 
▲ ‘The Psick Show’는 피식대학의 글로벌 진출 프로젝트를 표방하며 해외팬 전용 콘텐츠라고 홍보하고 있다. 미국 토크쇼를 패러디하는 형식의 개그다. 사진출처=피식대학 유튜브. 

“전과 비슷한 개그일 것 같아 기대되지 않아” 의견도

지상파 프로그램 제약이 많다 보니, 일각에선 신선한 아이템을 과감하게 시도할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30일 통화에서 “개그콘서트를 다시 한다고 했을 때 기대가 돼야 하는데 우려가 되고 있다”며 “유튜브에서 성공한 것을 비슷하게 가져다가 수정하여 선보이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유튜브와 지상파, 특히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유튜브와는 시청자와의 관계가 다르다. 시청자 층이 다르기 때문에 개그 내용도 매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 말했다.

황 평론가는 “유튜브서 개그가 성공했으니 지상파에서도 성공하리라는 것은 몽상”이라며 “개그맨들이 TV에 모여 다시 개그를 구상한다면, 신선한 개그맨이 아닌, 과거의 영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들이 후배들을 데리고 개그를 선보이는 자리를 포기할 수 있을까? 재개해도 이전에 비판을 받았던 비슷한 개그가 나올 것 같다”고 전망했다.

현재 유튜브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개그 콘텐츠들은 선정성 자극성, 풍자의 대상 등에서 지상파나 공영방송 보다는 느슨한 기준을 적용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준이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풍자나 혐오 발언, 깊이 없이 외모 평가 등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형태의 개그에는 따끔한 지적이 따라 나온다. 오히려 유튜브 콘텐츠는 이러한 피드백을 훨씬 빨리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고, 이러한 피드백을 어떻게 콘텐츠에 반영하느냐에 따라 콘텐츠의 성패가 달리기도 했다. 때문에 이전의 개그 코드를 활용한 개그맨 집단이 내부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부활한 개그콘서트의 인기는 장담키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황진미 평론가는 “과거와 비슷한 내부 문화에서, 소수자를 별 생각 없이 공격하는 올드한 형태의, 풍자와 혐오를 구별하지 못하는 개그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유튜브에 상당히 주목 받을 만한 신인이 나오는데, 이들이 과거 개그맨들과 함께 코너를 짜면서 그런 관성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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