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물의 길’을 보고 나온 뒤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3D로 관람한다면 돈이 아깝지는 않을 거라고 주변에 면피용 권유를 할 수는 있겠다. 두 번째, 다만 이번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바타3’을 만든다면 그걸 보러 극장에 가라고는 더이상 권할 수 없을 것 같다.

▲ 영화 ‘아바타: 물의 길’ 포스터.
▲ 영화 ‘아바타: 물의 길’ 포스터.

기대했던 새로운 영화적 경험은 없었다. 고래를 닮은 거대 생명체 툴쿤이 맹활약하는 등 수준급 3D 해양 액션 시퀀스가 종종 감탄을 불렀지만, 2009년 세계를 강타했던 ‘아바타’로 충분히 본 ‘아는 맛’이었다. 13년 전과 동일한 구조로 전개되는 예측 가능한 서사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 작품이 ‘영화계의 금수저’라는 걸 떠올리면 새로운 감흥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더 크게 다가온다. ‘아바타: 물의 길’의 제작비는 적어도 3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영화 역사상 가장 큰 규모다. 게다가 연출을 맡은 건 직접 잠수정을 타고 탐험하는 해양 다큐멘터리 ‘딥씨 챌린지’(2014)를 찍었을 만큼 바다에 대한 독보적 경험을 지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고, 그는 ‘타이타닉’, ‘아바타’로 영화 역사에 남을 기록을 쓴 속칭 ‘짬바’가 두둑한 사람이다.

▲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촬영 현장. 왼쪽 인물이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감독이다.
▲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촬영 현장. 왼쪽 인물이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감독이다.

이럴 줄 몰랐던 건 아니다. 관객에게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영상 콘텐츠들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VR기기를 장착한 엄마가 가상현실 영상으로 먼저 떠나보낸 어린 딸을 다시 느껴본다는 내용의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2020)는 공개 후 곧장 윤리 논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미방송국 NBC에서 중계된 콜드플레이 ‘My Universe’(2021) 공연에 BTS 멤버들이 홀로그램 영상으로 나타나 함께 공연하면서 전 세계 팬들의 놀라움을 자아낸 일도 있다.

첨단기술에 기반한 대중의 영상 경험의 확장은 ‘아바타’ 시리즈의 미래를 한층 어렵게 한다. 오래 전 ‘아바타’는 ‘서사가 중요치 않을 만큼 압도적인 영상 경험을 제공한다’는 항변이 통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제 고도화된 3D 기술만으로는 그 정도의 만족을 제공하기 어렵기에, 관객에게 과연 어떤 종류의 의미를 새롭게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런 면에서 단선적인 서사는 개선될 필요가 있는 약점이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는 인간과의 결사항전 등 ‘아바타’와 다름없는 이야기 구조를 더 반복하면 진부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킨다’, ‘가족은 함께 있어야 힘이 커진다’처럼 이미 다변화된 가족상을 입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메시지 역시 ‘낡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면 보다 세련된 전달법을 고민해야 한다.

비슷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퍼포먼스 안에서 시대를 고민하는 감독의 세계관까지 녹여내는 데 성공한 작품들은 있었다. 2015년 당시 70세의 노장이었던 조지 밀러 감독이 내놓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사막을 질주하는 외팔 전사의 마이너리티를 통해 탐욕으로 멸망한 시대의 새희망을 찾았다. SF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8년작 ‘레디플레이어 원’은 극단적인 빈부 격차의 세상에서 돈도, 힘도 없는 청년이 디지털 기술의 힘과 대중예술 본연의 가치를 활용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작품을 두고 ‘아바타’ 시리즈보다 영상적 볼거리가 떨어진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레디 플레이어 원’ 포스터
▲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레디 플레이어 원’ 포스터

‘아바타: 물의 길’의 전 세계 매출은 13년 전 개봉한 ‘아바타’의 29억 달러(약 3조 6300억 원)의 2/3에 못 미치는 17억 달러(약 2조 1000억 원, 8일 기준)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언급한 손익분기점인 20억 달러에도 아직 가닿지 못했다. 이건 이미 ‘아바타3’을 제작 중인 이들에게 관객이 보내는 명백한 신호다. 변화한 시대에 어울리는 작품의 의미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아바타3’의 성과는 ‘아바타: 물의 길’보다 더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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