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송사에서 영화 ‘범죄도시2’를 틀면 창작자에게 어떠한 보상도 지급되지 않지만, 프랑스 방송사에서 틀면 방영권과는 별개로 작가와 감독에게 광고 수익의 일정부분을 지급하는 법이 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의 대표인 윤제균 감독(영화 ‘해운대’, ‘국제시장’ 감독)이 ‘공정 보상제도’를 설명하며 한 말이다.

문제는 한국에는 이와 같은 법이 없어, 해외에서 방영된 많은 K콘텐츠 창작자에게 지급될 돈이 쌓여있다는 것이다. 윤제균 감독은 “우리가 이 같은 보상을 받으려면 한국 방송사에서도 해외 영화를 틀었을 때 발생되는 수익을 일정부분 지급해야 ‘호혜평등의 원칙’에 의해 돈을 주고 받을 수 있는데, 한국에는 해당 법이 없어 전세계에 쌓여있는 한국 창작자 감독, 작가들의 저작권 금액을 받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저작권법 개정안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정책 토론회가 열리게됐다. 31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DGK)과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천만영화 감독들 마침내 국회로 정당한 보상을 논하다’라는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31일 국회에서 열린 '천만영화 감독들 마침내 국회로 정당한 보상을 논하다' 토론회. 사진=정민경 기자.
▲31일 국회에서 열린 '천만영화 감독들 마침내 국회로 정당한 보상을 논하다' 토론회. 사진=정민경 기자.

이날 영화계 인사들은 저작권법 개정을 위해 목소리를 모았다. 토론회에 수많은 영화감독들이 자리를 함께한 것은 물론이고, 감독이자 배우인 유지태씨가 2시간 동안 사회를 봤다. 해외에 머무르고 있는 박찬욱 감독도 줌미팅을 통해 현장에 열기를 더했다.

박찬욱 감독은 현장 연결을 통해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영화 저작권이 누구 것인지 묻는 것이 넌센스였다”며 “저작권은 제작자에 양도한다는 특례규정 때문에 영화를 만들면 제작사에 양도해야 해서 제작사가 저작권을 가지는 것이 당연했고 누가 저작자인지 알 필요도 없었다. 우리가 논의하는 저작권법이 통과된다면 감독들도 저작자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며 법 통과를 원한다고 밝혔다.

▲저작권법 개정을 위해 토론회 관련 영상과 줌미팅 등으로 참석한 박찬욱 영화 감독.
▲저작권법 개정을 위해 토론회 관련 영상과 줌미팅 등으로 참석한 박찬욱 영화 감독.

현행 저작권법, 특약 없는 한 창작자 아닌 제작자가 저작권 가져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한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칠레, 콜럼비아, 유럽 등은 이러한 저작권법을 갖고 있어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며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배경을 설명했다.

현행 저작권법 100조는 “영상제작자와 영상저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 자가 그 영상저작물에 대해 저작권을 취득한 경우, 특약이 없는 한 그 영상 저작물의 이용을 위해 필요한 권리는 영상제작자가 이를 양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창작자가 아닌 제작사가 저작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정현 변호사는 “이러한 법은 다수 창작자가 참여하는 영상의 특성상 유통의 편의성을 위한 것이지만, 양도 추정에 대해서만 정하고 있고 양도를 한 후 보상 등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며 “이 같은 환경에서 창작자는 저작재산권을 제작자에게 양도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특별한 계약이 없는 한 저작권법상 권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상 제작시 계약을 할 때 창작 기회가 절실한 감독, 작가와 같은 창작자와 제작자 사이의 협상력 불균형과 향후 판매 계획 등 수익 예측에 관련한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해 양자간 대등한 관계로 계약 협상이 어렵다”며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칠레, 콜럼비아의 경우 법적으로 공정한 보상 제도가 도입돼있고 미국 또한 단체계약을 통해 창작자에게 영상물 이용에 대한 저작권료와는 별개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배우 유지태씨와 천만 영화를 감독한 영화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작권법 개정을 위한 발언을 했다. 사진촬영=정민경 기자.
▲이날 토론회에는 배우 유지태씨와 천만 영화를 감독한 영화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작권법 개정을 위한 발언을 했다. 사진촬영=정민경 기자.

“같은 영화, 음악감독은 저작권료 받고 영화 감독은 못받아” 

현장에 참석한 영화감독들도 법 개정을 위해 힘써달라고 밝혔다.

영화 ‘명량’과 ‘한산’의 김한민 감독은 “과거 배고팠던 시절에 케이블TV에서 내 영화가 방영되는데 조금이라도 그 보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며 “수많은 감독과 작가들이 영화를 만들면서 버티는 기간이 있는데 그러한 보상은 버티는 시간의 기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해운대’, ‘국제시장’의 감독인 윤제균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는 “감독조합 회원이 500여명을 조사했는데 평균 연봉이 2000만원이 안됐다”며 “물론 잘나가는 감독들도 많지만 힘들고 어려운 후배들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 때 최소한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각광받고 있는 K콘텐츠의 질이 유지가 되려면 능력있고 우수한 분들이 창작자로 오셔야 가능하다”며 “이 법안이 여기까지 오기위해 3년을 넘게 노력했다. 잘 해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도 “보통 영화감독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10년 넘게 한 작품을 위해 작업을 하는데 막상 작품에 들어갈 때면 제작사에 저작권을 넘긴다는 싸인을 하게된다”며 “내가 쏟은 열정과 시간과 노력들이 단 한순간에 계약금만 남기고 제작사에 넘겨진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도대체 이런 식의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창작물이 무엇이 있을까 싶고, 영화를 한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며 “이렇게 상식에 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다만 오늘 국회에 와서 여야 국회의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들어보니 굉장히 잘풀린 것으로 본다”고 발언했다.

▲영화감독들이 저작권료 개정의 필요성을 담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영화감독들이 저작권료 개정의 필요성을 담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영화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은 “1년 전인가 프랑스에서 내 영화가 방영이 됐다고 하면서 저작권료를 받을 게 있다고 연락이 온 적이 있다. 지금까지 영화를 하면서 그런 돈이 언급된 것은 처음이었다”며 “한국에서는 작품이 판매된 이후 모든 권리는 투자자나 제작사로 돌아가니 감독에게 돌아오는 건 없다. 그런데 10년 전 영화가 유럽에서 방영돼서 저작권료가 있다고 하니 유럽 창작인들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당시 언급된 저작권료가 큰돈은 아니었지만, 창작인들이 프라이드를 얻고 존중 받는 환경이라는 것이 느껴졌다”며 “현재 한국 영화가 코로나19를 지나고, 투자 상황도 안좋아지면서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저작권 부분이 개선이 되어야 창작인들이 부끄럽지 않게, 자존감을 가지고 작업에 임할 수 있다”고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영화 ‘신과함께’의 김용화 감독은 “내 영화 ‘미녀는 괴로워’와 ‘국가대표’를 찍으며 영화도 사랑받았지만 영화 속 음악인 OST가 큰 사랑을 받았다. 그때 음악감독에게 들어보니 ‘음저협’이라고 음악 저작권을 관리하는 곳에서 음악감독에게 꾸준히 저작권료를 주고 있었다”며 “내 영화는 TV에서 방영될 때 영화감독은 저작권료를 받지 못하지만 음악감독은 저작권료를 받고 있어서 ‘음저협’의 존재가 부러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러한 부분은 영진위 등이 반성을 해야하는 부분”이라며 “문화 산업의 힘은 정말 막강하고, 최근처럼 한국 콘텐츠가 사랑을 받고 있을 때 이러한 부분을 진흥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았으면 한다”고 발언했다.

이날 수많은 영화감독들과 함께 여야의 국회의원들도 참석해 법 개정에 대해 긍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홍익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법은 여야의 이견이 없다”고 말했고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 역시 “여러 법안이 발의돼있는데 함께 결합해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 등이 모두 “여야 이견이 없는 법”이라 입을 모았고 사회자인 유지태 배우도 “의원님들이 모두 약속을 하셨고 많은 기록이 남겨졌다. 의원님들은 꼭 약속을 지켜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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