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들의 파업이 50일을 넘겼다. 노조는 핵심 요구인 ‘30% 깎인 임금 원상회복’을 포기하고 사측이 고수한 4.5%안을 받아들였지만 대우조선해양과 하청업체는 파업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일부터 경찰 투입이 이어지면서 22일 오전 현재 거제조선소 농성 현장은 긴장 상태다.

“2022년도에 2016년도 연봉을 달라고 말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강봉재 조합원)
“불법이라고 했는데요 뭐. 거기서 (판단은) 끝났죠.” (이광훈 조합원)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KDB산업은행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하청노동자들은 정부 입장을 전하는 언론보도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애초에 언론 보도가 호의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파업하는 노동자가 받는) 언론의 피해가 컸다는 건 알고 있었다”고 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앞에 차린 단식농성장. 사진=김예리 기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앞에 차린 단식농성장. 사진=김예리 기자

정부와 언론은 파업 옥죄기에 나서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수언론은 초기부터 파업을 ‘불법’이라 규정했다. 정부·여당은 같은 수사구를 반복해 노조에 낙인 찍었다. 다수 언론은 사실을 바로잡지 않고 화답했다. 정부 압박에 장단 맞춰 폭력 진압 가능성을 놓고 급박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합법파업에 조선일보, “불법, 불법, 불법” 이미지 씌우기


보수언론은 일찍부터 이번 파업에 ‘불법’ 프레임을 씌웠다. 특히 조선일보는 파업 자체를 ‘불법’이라고 규정한 기사를 쏟아냈다. 파업이 시작한 2일부터 “공권력 대응도 여전히 미온적”이라고 비판하면서 “하청지회 불법파업”(7일)이라고 규정했다. “대우조선 같은 불법 파업 관행 끊겠다”, ‘대우조선 사무직 독에서 맞불농성 “불법파업 멈춰라”’ ‘윤, 대우조선 사태에 “빨리 불법파업 푸는 게 국민 바람”’ 등이다. 대다수 관련 기사에서 “협력업체 노조의 불법 파업” “이번 불법 파업” 등 표현을 썼다.

▲지난 7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조선일보 보도
▲지난 7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조선일보 보도

채널A는 21일 메인뉴스에서 ‘불법 파업과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의 앵커 브리핑을 했다. ‘대통령 “불법파업, 장관 나서라”’(중앙일보), ‘대우조선 하청지회 불법파업 50일째’(아시아경제)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이 합법이란 사실은 이미 여러 언론이 지적했다. 매일노동뉴스는 20일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지회가 올해 처음으로 22개 협력사와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진행해 지난달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조정 중지 결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지회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정식 쟁의권을 얻었다. 그러나 정부와 주류 언론이 사실관계가 틀린 표현을 쏟아내면서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은 그 자체로 ‘불법’ ‘막무가내’ 이미지를 덧입었다.

▲희망버스
▲희망버스

보수언론은 유최안 부지회장과 지회 조합원 6명의 1도크(선박건조공간) 점거농성에도 비난을 높였다. 유최안 부지회장은 거제조선소 1도크 탱크톱 바닥에 철판을 용접해 0.3평 ‘감옥’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됐다. 조합원들은 10m 높이의 스트링거(난간)에 올라 농성 중이다. 지회는 다른 노동자들과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서 점거 농성이 불법인지는 법적 다툼의 대상이다. 통영지원이 지난 15일 1도크 쟁의행위 등을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지만, 한국이 발효시킨 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에 관한 협약)는 직장점거를 합법 형태로 인정하고 있어 현행법제가 국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논란이 크다.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6월22일부터 거제조선소 1도크 바닥에서 무기한 점거 농성 중이다. 22년차 용접노동자인 그는 용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유조선 바닥 구조물에 가로와 세로, 높이 1m의 철판을 용접해 그 안에 들어갔다. ⓒ금속노조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6월22일부터 거제조선소 1도크 바닥에서 무기한 점거 농성 중이다. 22년차 용접노동자인 그는 용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유조선 바닥 구조물에 가로와 세로, 높이 1m의 철판을 용접해 그 안에 들어갔다. ⓒ금속노조

현장 폭력 행위…대우조선이 하면 합법


하청노동자들은 이들 보도에 “노동자가 해서 불법이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언론 조명이 닿지 않는 현장에선 시시각각 원청 관리자(직반장)들의 폭력과 기물 파손 행위가 벌어진다고 했다.

산업은행 앞 농성장을 지키던 발판공 이광훈씨와 단식 농성 중인 용접공 강봉재씨는 거제조선소 현장에서 원청 관리자가 자재 위에 올라 현장을 찍는 조합원을 위력으로 끌어내린 뒤 그의 핸드폰을 바닥에 힘껏 던지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보여줬다. 그는 “누가 댓글에 그렇게 달았더라고요. 노동자가 하면 불법이고. 경영계가 하면 합법이냐고”라며 씁쓸해했다.

▲지난 14일부터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앞에서 단식 중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소속 강봉재 조합원. 사진=김예리 기자
▲지난 14일부터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앞에서 단식 중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소속 강봉재 조합원. 사진=김예리 기자

단식 농성 중인 계수정씨(도장)는 “직반장이 칼로 농성 천막 텐트를 찢는다”며 “대우조선은 14일 파업 중단 촉구 ‘인간띠 두르기’ 행사를 하면서는 하청업체마다 10명씩 나오도록 하고, ‘1시간 나와주면 시간을 달아주겠다(잔업수당)’는 공지가 하청노동자들이 포함된 익명 카톡방에 올라오기도 했다”고 했다. 문화일보, 조선일보, 연합뉴스TV, 한국경제 등 다수 언론이 ‘띠두르기’를 대우조선 임직원과 거제 시민들이 참여한 행사라고 전했다.

▲금속노조가 공개한 거제조선소 농성현장 내 구사내 폭력 장면
▲금속노조가 공개한 거제조선소 농성현장 내 구사내 폭력 장면

물리 진압 가능성 시사에 보수언론 기세등등


대통령·정부·여당은 지난 18일 동시에 나서 하청노조 파업을 비난한 뒤 연일 “불법 종식” “엄정 대응”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등 강도 높은 표현으로 공권력 투입을 예고했다. 이후 경찰은 농성 현장에 경력을 대거 배치했다. 

일부 언론은 파업의 본질과 거리를 두면서 급박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제목을 쓰며 선정적인 보도를 했다. ‘금속노조 5000명 - 대우조선 4000명 대치…20m 거리 일촉즉발’(동아일보), ‘윤대통령, 긴급 장관회의 지시, 경찰청장은 헬기 타고 거제로’(조선일보) 등이다. 

▲29일 조선일보 1면
▲19일 조선일보 1면
▲동아일보
▲동아일보 21일 보도 갈무리

이런 보도 행태에 언론계에서도 비판과 자성이 나왔다.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1일 성명에서 “공권력 투입을 촉구하고 노조의 분열을 선동하는 이들에게 도대체 취재라는 행동이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사태를 풀어야 할 당사자인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에게는 왜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못하는가”라고 물었다. 언론노조는 “무려 11년 전 충남 아산 유성기업 공장에 투입된 공권력의 만행을 기억한다. 언론노조 1만 5천 조합원은 노동정책의 퇴행이자 국가권력의 횡포에 온 몸으로 맞설 것”이라고 했다.

노조 강경몰이 속 ‘연대기금 성공’마저 비난


정부와 언론이 파업을 궁지로 모는 분위기 속에서 막무가내식 노조 때리기 보도도 나왔다. 한경닷컴은 17일 ‘대우조선, 임금 30% 깎는데... 파업 노조는 180만원씩 받았다’ 기사를 냈다. 지회가 임금을 포기하고 파업하는 조합원에 대한 시민 연대기금을 모은 결과 15일 총 2억 7900만원 모금했다고 밝혔다. 한경닷컴은 이를 놓고 ‘원청 대우조선 노동자 570명은 파업으로 인해 (부분 휴업으로) 임금 70%만을 받는다’며 노노 갈등으로 그렸다.

▲금속노조 거제통용고성조선하청지회는 파업연대기금을 모아 조합원 생계비로 지급했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금속노조 거제통용고성조선하청지회는 파업연대기금을 모아 조합원 생계비로 지급했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17일 한경닷컴 보도 갈무리
▲17일 한경닷컴 보도 갈무리

일부 언론은 지회가 협상 과정에서 내놓은 민형사상 책임 면제 요구를 ‘욕심’ 내지는 ‘억지’로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20일 ‘파업 매출손실 5700억인데… 노조 “민형사 소송 취하하라”에서 대우조선해양이 주장하는 피해액을 보도하면서 “이번 사태로 그동안 대우조선해양이 매출 손실 5700억원 포함 71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봤지만 하청지회는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일보와 세계일보도 19~20일 보도와 사설에서 같은 주장을 했다.

▲20일 조선일보 3면
▲20일 조선일보 3면
▲20일 문화일보 3면
▲20일 문화일보 3면

한겨레는 이에 대해 21일 “사쪽이 (노조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이는 금전 보상보다는 노조 활동 위축을 위한 도구로 쓰이는 현실을 전했다. 2002년 두산중공업의 손배 가압류로 노조 간부 배달호씨가 조합비와 임금, 살던 집까지 가압류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2011년 한진중공업 최강서 노조 조직차장도 사쪽의 손배소에 목숨을 끊었다. 한겨레는 유럽에서는 합법파업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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