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디지털 중심을 외치지만 현실은 A부터 Z까지 지면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내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다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거대한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조선일보사 노동조합(위원장 박국희)이 펴내는 ‘조선노보’ 1499호를 통해 나온 조선일보 내부 목소리다. 기자들이 조선일보는 여전히 지면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언론사라며 ‘디지털 퍼스트’ 전략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지적한 것이다. 

중앙일보의 경우는 이미 2018년 조직개편 이후 현장 기자는 이슈에 관한 온라인 기사만 처리하고, 사내 에디터들이 이를 지면용으로 취합해 다음 날 신문을 구성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관련 기사: 중앙일보 조직개편, 콘텐츠 혁신으로 이어질까]

▲조선일보 지면.
▲조선일보 지면.

조선일보 노조의 한 조합원은 “부장들도 ‘내 임기만 아니면 된다’는 기조 아래 디지털은 다다음 부장쯤이 하고 지금은 지면 중심으로 평가 받겠다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조선노조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조선일보가 지면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온라인에서 이미 소비된 뉴스를 다음날 지면에 싣기 위해 모두가 꺼려하는 ‘야근’을 반복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참들이 지면 제작에 몰두하는 사이 디지털 이슈 대응은 소홀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노보에 따르면 올해 조선일보 지면 제작에 참여하는 인원은 206명이다. 조선노보는 “2020년 아크(Arc) 도입 이후 조합원들의 디지털 기사 부담은 해마다 가중되고 있지만 제작 압력은 그대로”라며 “신문 제작 인원은 늘어나지 않지만 조합원들의 업무는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합원들의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조선일보 기자의 일과는 오전 보고가 끝난 뒤 디지털 기사를 쓰고, 점심을 먹고 오후 보고를 하고 지면 기사 취재를 하고, 마감을 하는 식이다.

한 조합원은 “일은 많은데 사람이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오보나 오타 같은 사고가 나면 평소 기사많이 쓰는 기자만 ‘희생양’이 되니 아무도 적극적인 발제나 취재에 나서지 않는다”며 “창의적 아이디어로 과감하게 모험을 하려는 기자보다는 시키는 기사나 그럴 듯하게 쓰는 기자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렇게 지면 제작 인원이 한꺼번에 줄어든 이유는 최근 ‘퇴사 러시’ 때문이라고 한다. 재작년부터 올해까지 조선일보에서 20여명의 퇴사자가 나왔고 차장급 이상의 고참부터 10년차 안팎의 베테랑 기자들이 상당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노조는 “편집국은 야근 인력 탄력화나 뉴스 모니터링 외부 열람 같은 간단한 행정, 기술적인 요소조차 수년째 해결하고 있지 않다”며 “편집국 상황이 겉잡을 수 없이 악화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전했다.

여전히 수익은 지면에서 나오기에 변화 어려운 현실

그렇다면 왜 조선일보는 여전히 지면 중심으로 돌아갈까. 조선노보가 “올초 노조 인터뷰에서 편집국장 역시 회사 수익 90%가 아직 지면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디지털과의 균형도 차차 맞춰가야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밝힌 부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어 조선노보는 “‘대기업 협찬’ 중심의 신문사 수익 모델 구조도 지속 가능성의 한계는 뚜렷하다”며 “부동산부터 골프장 사업 등 언론사마다 자구책을 찾는 데 여념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짚었다.

노보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디지털 전략과 닷컴 기사 실상 등에 대한 심층적인 현실 인식 설문 조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노보는 이에 대해 “조합원들도 위기를 스스로 체감해야겠지만, 회사의 명확한 비전 제시도 필요하다”며 “조합원들이 길을 잃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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