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간 조선일보에 입사한 기자의 40% 가량이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에서도 ‘인력 유출’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박국희)은 지난 12일 노보를 통해 62기(2020년 입사)부터 52기까지 최근 10년 간 조선일보에 입사한 조합원(기자) 106명 가운데 40명이 퇴사했다고 밝혔다. 62기는 2020년 입사한 기자들을 말한다.

조선노보에 따르면, 조선일보 저연차 기자들 사이엔 사양 산업 종사자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과거와의 비교, 기회의 박탈, 하향 평준하에 대한 회의감이 상당하다. 이날 노보는 저연차 기자들의 목소리를 익명으로 담았다.

▲ 조선일보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조선일보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최근 입사자 106명 가운데 40명 퇴사”

한 기자는 “조선일보 기자 위상이 과거엔 판·검사 못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로스쿨·스타트업 등을 향한 ‘징검다리 스펙’, ‘이직 사관학교’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또 다른 기자는 “로스쿨에서 지원자들의 ‘사회 활동 경력’을 중점적으로 보는데 ‘조선일보 기자’라는 스펙은 합격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했다. 기자직이 각광받던 과거 시대와 달리, 이제 ‘조선일보 기자’는 좋은 이직을 위한 스펙 하나에 불과하다는 냉소다. 

조선일보 조직 문화에 비판 목소리도 크다. 노보에 따르면, A 기자는 “어차피 기자가 돈 벌려는 직업은 아니니 감수한다 쳐도 아직도 고성과 욕설이 낯설지 않은 조직 문화를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자조했다.

B 기자는 “연휴·휴일은 물론이고 휴가조차도 눈치를 봐가며 써야 하는 시대와 동떨어진 현실이 우리 주소 아니냐”고 했다.

C 기자는 “아직도 타 언론사에 비하면 훌륭한 선배들이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내에선 롤모델로서 ‘닮고 싶은 기자’보다는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하는 ‘직장인’만 출세하는 곳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부조리 강요 말라”

노보에 익명으로 장문의 글을 기고한 기자는 “급여 인상도 좋지만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조직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고자는 “불과 몇해 전으로만 시계를 돌려봐도 부원에게 물리력을 가한 데스크도 있었고, 편집국에서 부원이 부장 모니터를 던진 일도 있었다”며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런 일들이 표면적으로 튀어나올 정도의 전후 사정이 있던 것이라면, 최소한 구성원들이 조직에 기대하는 일말의 조치라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밝힌 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져도 역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적당한 사과 표명 선에서 사태가 마무리 된다고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기고자는 “이런 사건이 생기고 그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는 일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저연차 구성원들은 점점 우리 회사를 ‘답 없는 조직’으로 확신하고 체념하게 된다.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이직을 하려고 준비한다”며 “3억 사내 대출과 콘도 이용권 같은 업계 최고로 일컬어지는 복지 혜택은 물론 감사하다. 하지만 과연 그게 다일까”라고 반문했다.

기고자는 “비록 사내 대출 제도가 없고 급여가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조직 문화가 건전한 곳은 옆에서 봐도 구성원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직장 생활을 한다”며 “과거 선배들이 기자로서 누렸던 각종 혜택과 영광을 지금 후배들이 기대하지 않듯, 과거 선배들이 겪고도 그러려니 넘어갔던 부조리를 지금 후배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22년 5월12일자 조선노보.
▲ 2022년 5월12일자 조선노보.

“월급, 대기업은 고사하고 중견기업과 비교”

월급에 대한 성토도 나왔다. 노보에 따르면, 한 기자는 “월급 명세서를 받아보면 대기업은 고사하고 이제는 중견 기업이나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던 타 언론사 등과 비교해야 할 상황”이라며 “이젠 그냥 딱 받은 만큼만 일하자는 생각이 맘 편하다”고 했다. 

또 다른 기자는 “대기업 홍보팀 등과 안면을 틀 수 있는 출입처가 인기”라며 “그런 곳에 못갈 바엔 차라리 업무 강도가 낮은 부서에서 워라밸을 챙기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월급도 적고 사회적 위상도 낮아진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업무 강도를 소화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노조는 노보를 통해 “실제 노조가 만나본 상당수 저연차 조합원들은 과거 선배들에 비해 낮은 월급에 대한 불평 불만을 그에 맞는 업무 강도와 워라밸 등으로 자체 벌충하겠다고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반면, 한 고참급 기자는 “조선일보 지면의 탁월성이 데스크의 리더십, 과거 인맥, 편집 역량에 의존해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라며 “조금씩 지면의 밀도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런 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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