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업무와 메일 등을 통한 인신공격으로 마음을 다쳐 우울증을 앓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많아지자, 노조가 회사 차원에서 기자들의 정신 건강을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김인원)은 일하며 마음을 다쳐 힘들어하는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어 지난달 30일 노보를 발행했다. ‘조선노보’에 따르면 단독과 마감 압박 등 업무적으로 힘들어 우울증 치료약을 먹거나 우울한 기분을 호소하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적지 않다. 또 기사를 쓴 뒤 쏟아지는 갖가지 적대적·위협적 인신공격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는 기자들도 있다.

노보는 한 조선일보 기자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운을 뗐다. 우울증 치료약을 먹고 있는 10년차 이상의 조선일보 A기자는 “의욕이 안 생기고, 막상 쉬려고 하면 잠이 안 오고, 그러다 갑자기 낮에 정신이 꺼진 것처럼 잠이 쏟아져 고민하다 병원을 찾았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은 지 몇 달 됐다. 일하면서도 나 자신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 뒤로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때는 부서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낸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노조는 노보에서 “특별한 ‘사건’이 생긴 게 아니더라도 우울한 마음은 늘 조합원들 뒤를 쫓고 있다. 기자만큼 단독과 마감 압박, 번아웃 증후군 등 정신 건강 위험에 노출된 직업은 흔치 않다”고 했다.

조선일보의 B기자는 “매일 온라인 기사 처리 압박, 신문 기사 마감에 시달리면서 또 단독 없다고 한 소리라도 들은 날은 밤에 누워도 잠이 안 온다. 급히 쓰다 보면 늘 실수를 한 건 아닐까 불안하고 신경 쇠약에 걸릴 지경이다. 옆에서 하는 것만 보면 선배들은 내가 ‘느리고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등바등 나름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아주면 좋겠다”라고 호소했다.

조선일보의 C기자는 “너무 예민해지고 자존감이 무너져 심장이 쿵쾅거렸다. 정신과 가기는 부담스러워 한의원에 가서 화병에 좋다는 약을 지어왔다”고 말했다. 5년차 미만의 조선일보 D기자는 “친한 선후배끼리 만나서 술을 먹다가 한 사람이 힘들다고 울음을 터뜨리니까 너도나도 다 울더라”고 토로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기사를 쓴 뒤 쏟아지는 갖가지 적대적·위협적 인신공격에도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 병원을 찾기도 한다. 실제로 이 같은 상황에 놓인 조선일보의 E기자가 회사에 이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자 돌아온 말은 “‘기자는 정신력으로 하는 일이다. 너무 그러면 며칠 쉬다 와도 된다’였다. 공감과 위로의 마음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차가운 한 마디 한 마디가 악플만큼이나 힘들었다”고 말했다.

차장급의 F기자는 노조에 “기사를 쓰면서도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후배들이 많다. 외부 세력은 이제 조직적으로 기자 개인을 비난하고 공격하는데 회사가 과연 나를 도와줄지 지켜줄지 알 수 없고 회사에 배치된 법률 상담 인력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조선일보 사옥. ⓒ미디어오늘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조선일보 사옥. ⓒ미디어오늘

노보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기자들이 노조를 찾아 “조합원들의 우울증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조합원들이 우울증 등 정신 건강 문제를 ‘개인 영역’이 아닌 ‘회사 차원의 영역’에서 살펴주길 바랐다고 노조는 설명했다.

조선일보의 G기자는 “우울증으로 퇴사하고 휴직한 사례만 해도 수두룩하지 않느냐. 더 이상 사적인 영역이라고 쉬쉬하고 덮고 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고 했다. 조선일보의 H기자도 “이 회사 구성원 대부분이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그들이 단지 개인적 이유 때문에 그런 어려움에 처했다고 치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정 병원을 지정해 비용을 지원하는 한국일보 심리 지원 프로그램을 예로 들며 조선일보도 적극적으로 기자들의 정신 건강에 신경을 써달라고 노조는 요청했다.

노조는 “실제로 타사에서는 특정 병원을 지정해 심리 지원에 나선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일보의 경우 악성 댓글이나 이메일, 재난 현장이나 강력 범죄 취재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 구성원을 위한 심리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특정 병원을 지정해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 회사가 가입한 단체보험(실손보험)을 통해 정신과 진료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긴 하지만, 실제 지원 사례는 극소수다”고 꼬집었다.

조선일보의 I기자는 “조합원 정신 건강을 살피고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명확한 회사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회사 구성원을 상대로 최소 1년에 1번 이상은 우울증 검사도 받게 하는 식으로 적극적인 대책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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