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님, 카메라 감독, 오디오맨, 저, 리포터, 운전기사가 회사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크게 났어요. 그런데 6명 중 저와 리포터 딱 2명만 산재보험 처리가 안 돼서 추가 비용을 제 돈으로 냈어요. 일하러 가다가 난 사고라 억울한데 말할 수 없는. 목숨에도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등급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비참했어요.” (A 방송사의 ㄱ 방송작가)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해 ‘윤석열 정부 1호 노동법안’으로 회자된 가운데, 모든 예술인에 산재보험을 당연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의 경우 산재 위험도가 직종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편견이 퍼졌지만, 실상 전 직종에 경중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어서다.

서울노동권익센터와 문화예술노동연대는 7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술청 아고라에서 ‘예술인은 어떤 산재보험을 원하는가’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안명희 문화예술노동연대 집행위원은 이 자리에서 “예술인 산재는 개인의 습관이나 잘못이 아닌 노동환경에 따른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며 “예술인 고용보험처럼 산재보험도 ‘당연가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와 문화예술노동연대가 7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술청 아고라에서 ‘예술인은 어떤 산재보험을 원하는가’를 주제로 커뮤니티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서울노동권익센터와 문화예술노동연대가 7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술청 아고라에서 ‘예술인은 어떤 산재보험을 원하는가’를 주제로 커뮤니티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앞서 산재보험 가입에 ‘전속성 요건’을 삭제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해 특수고용노동자의 가입 길이 열렸다. 그러나 실상 특수고용노동자 가운데서도 15개 직종에만 적용되고, 예술노동자는 이마저 비껴가는 처지다.

현행 예술인복지법과 산재보험법에 따라 프리랜서인 예술인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는 있다. 예술인이 자발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보험료는 100% 노동자 부담이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경우 사업주가 100% 부담하고, 특수고용 노동자는 50% 부담하는 것에 비해도 열악한 조건이다. 이탓에 실효성도 낮다. 문화체육관광부 ‘2021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업무상 상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예술인의 83.1%가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안 집행위원은 “문화예술노동자들은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무대 설치와 사고성 재해, 촬영 등 출장 중 사고, 과로사, 감정노동, 야간노동, 마감노동, 근골격계질환 등으로 예외 없이 불안정한 노동환경 속에서 죽거나 다치면서 일하고 있다”며 “그러나 문화예술계는 산재사망사고에 대해 적극 말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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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서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사무국장이 7일 서울노동권익센터와 문화예술노동연대 주최로 열린 ‘예술인은 어떤 산재보험을 원하는가’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구은서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사무국장이 7일 서울노동권익센터와 문화예술노동연대 주최로 열린 ‘예술인은 어떤 산재보험을 원하는가’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염정열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은 발제문을 통해 “원고 쓰고 섭외하는 일을 하는데 무슨 위험이니 싶겠지만 촬영 현장에는 심심치 않게 산업재해 관련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이 나타난다”며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이 법적으로 충분히 증명됐지만, 프리랜서란 이유로 ‘좋은 방송사’를 만나면 병원비와 위로금을 받는 데 그친다” 했다.

염 지부장은 “방송작가들은 잦은 밤샘과 섭외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우울감, 두통, 초조함, 긴장 등을 흔히 겪는다. 장시간 앉아서 모니터 화면을 일하는 직업이기에 거북목 증후군, 허리디스크, 손목터널증후군, 안구건조증 등을 자주 앓는 사람들이 많다”고도 했다. 이같은 질환은 웹툰작가와 출판외주 직종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난다.

구은서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사무국장은 “대학로 중심으로 수많은 소극장과 동인제 극단이 운영되는 연극계는 아직도 헝그리 정신, 가족적 동료의식이 짙다”며 “무수한 극단이 사고가 나도 그저 안타까운 ‘불상사’라고 본다”고 했다. 윤원필 뮤지션유니온 비대위원회 운영위원장도 “무대에서 사고가 나도 단순 사고이거나 공연자 책임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조직화되지 않은 프리랜서 예술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원필 뮤니션유니온 비대위원장이 7일 서울노동권익센터와 문화예술노동연대 주최로 열린 ‘예술인은 어떤 산재보험을 원하는가’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유원필 뮤니션유니온 비대위원장이 7일 서울노동권익센터와 문화예술노동연대 주최로 열린 ‘예술인은 어떤 산재보험을 원하는가’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안 집행위원은 예술인 산재보험료를 사업주가 100%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사업주가 예술노동자의 마감 시간, 노동 시간과 환경을 정한다는 이유다. 일례로 웹툰과 웹소설, 일러스트 작가들이 가입한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는 “업체가 요구하는 분량과 연재 주기가 가혹해 하루라도 일을 제대로 못하면 마감에 문제가 생기는 정도”라며 “철야 작업과 마감 불안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예술인 고용보험의 경우처럼 직종이나 활동 유형 별로 차등을 두거나 단계적으로 산재보험을 적용하면 더 큰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안 집행위원은 “방송작가가 방송스태프보다 덜 위험해보일 수 있지만, 스태프에는 적용하고 작가는 적용하지 않으면 한 차량으로 이동하다 사고를 당할 때 작가는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했다.

안 집행위원은 이어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 방송보도작가와 출판외주노동자가 빠져있었지만 노조 문제제기를 통해 지난해 초 적용 대상에 포함된 점을 들며 “뒤집어 말하면 (차등 적용할 경우) 미조직된 예술인들이 제도 적용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서면계약이나 개별계약을 하지 않고, 예술인 산재보험 적용을 탓하며 근로계약을 회피하는 문제, 편법에 정부의 적극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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