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간의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린 정부

지난 18일 국회에서는 ‘문화예술인 산재보험 적용 확대를 위한 토론회’가 있었다. 현장의 예술인(문화예술인, 문화예술노동자를 통칭)과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한 자리였다. 예술인 산재보험 적용을 위한 논의의 진전이 있기를 바랐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정부는 기어이 예술인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답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회토론회 전 불안했던 바를 결국 확인했을 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2020년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위해 오랜 시간 싸워왔던 문화예술노동연대는 고용보험법 개정 시행 이후, 곧바로 예술인 산재보험 적용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예술인 사회안전망 마련을 위한 활동을 멈출 수 없기에, 멈춰서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각 방송, 영화, 공연, 출판, 웹툰, 웹소설, 게임, 음악, 타투 등 문화예술 현장에서 산재 실태를 드러내면서 산재보험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제기했고, 여러 포럼과 토론회를 통해 예술인이 바라는, 예술인에게 필요한 산재보험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리하고 밝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임종성, 류호정, 이수진(비례) 국회의원과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문화예술인 산재보험 적용 확대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임종성, 류호정, 이수진(비례) 국회의원과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문화예술인 산재보험 적용 확대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마침내 2022년 문화예술노동연대는 노동부, 문체부, 근로복지공단, 예술인복지재단, 연구자, 사업주 등과 함께 2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동안 7차례에 걸쳐 ‘예술인 산재보험 포럼’에 참여했다. 물론 포럼 내내 정부 및 연구자들과의 회의는 매끄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고용보험 때와는 달리 정부와 직접 논의 자리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는 한 발 나아갔다고 평했다. 이제 여러 차례 회의에서 확인된 쟁점들을 짚으며 구체적인 제도 설계를 해나가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춰선 거다. 마지막 회의에서 정부의 다음 스텝을 알고자 했으나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러다 해가 바뀌었고 이러저러한 자리에서 노동부와 문체부가 별도의 TF를 꾸리고 제도 논의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장을 배제한 채 진행되는 제도 설계는 당연히 우려될 수밖에 없었기에 국회토론회를 통해서라도 정부안을 확인하고자 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현장과 함께 논의할 것을 요구하고자 했다. 그런데 마지못해 토론회에 나온 정부가 내놓은 답이라는 게 ‘임의가입 확대’라는 건 너무도 실망스럽고 분노스럽기까지 하다.

정부 입장은 ‘중소기업사업주 특례’를 유지하는 것

7월에 계획했던 국회토론회를 8월로 연기했다. 우리는 정부의 안을 확인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도대체 어떤 안을 짜고 있는 건지 현장에 내보이길 거부했고, 토론회 일정을 늦췄음에도 산재보상정책과장은 끝내 자리하지 않았다. 국회토론회에 나오지 않겠다는 정부 관계자들을 발제자와 토론자로 어찌어찌 앉혔으나 진전을 위한 논의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아니, 절대 예술인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입장을 확인했으니 성과라면 성과라고 해야 할까?

문체부 예술인지원팀장은 ‘예술인 산재보험 활성화 계획’을 내놓았다. 여기서 정부가 일컫는 ‘예술인 산재보험’이라고 하는 것은 산재보험법 제124조(중·소기업 사업주등에 대한 특례)로 예술인 본인이 선택하여 임의로 가입하는 방식이며, 보험료는 100%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다만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활동증명을 한 예술인에게는 보험가입 및 보험료를 지원할 수 있다). 정리하면 산재보험법상 예술인을 특정할 근거도 없는데, 정부는 계속 예술인 산재보험이 있다고 하는 것이며, 이를 유지하는 게 현재 정부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pexels by Joseph Redfield
▲Ⓒpexels by Joseph Redfield

문체부 ‘2021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업무상 상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예술인의 83.1%가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 근로복지연구원 2022년 ‘예술인 산재보험 적용방안 연구’에서는 업무상 사고가 있었을 때 본인 비용으로 처리한 경우가 48.9%, 개인상해보험 보상으로 처리한 경우가 25.4%였다. 예술인 본인이 아닌 계약 상대방이 보상하는 경우는 민간상해보험 보상 8.6%, 산재보험 보상 4.4%에 불과했다. 이렇듯 예술인은 산재에 대한 예방도 보상도 오로지 자기 부담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작 현장에서는 ‘예술인 산재보험(= 중소기업사업주 특례)’에 가입하려고 했으나 거부당하기도 하고, 개인 가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산재 발생 시 보상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한 방송작가는 예술인 산재보험에 가입하려고 했으나 예술인복지법상 예술인으로 증명받지 못해 가입을 거부당했다. 한 공연스태프는 공연 도중 무대장치 사고로 부상을 당했으나 예술인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도 볼 수 없다고 하여 요양급여 신청을 기각당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문제 많은 제도를 활성화하겠다고? 이게 현장의 절실한 요구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라고? 용인하기 어렵다.

‘예술인 산재보험 당연가입 전면적용’을 위해 계속해 싸우겠다

지금까지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예술인 고용보험처럼 산재보험도 당연가입해야 하며, 예술인 모두에게 차별없이 배제없이 전면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 당연한 요구가 정당하다는 것은 정부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장 예술인 당사자들과 함께 제도를 설계해나가면 된다. 이래서 어렵고 저래서 어렵다고 해도, 결국은 정부 의지가 관건이다.

예술인 고용보험이 그랬다. 잇따른 예술인들의 죽음에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요구했으나 특수고용노동자와의 형평성, 근로자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정부의 우려 앞에 번번이 좌절해야만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맞닥뜨리면서 정부는 예술인과 특수고용노동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의지를 발휘했다. 그러니 이제는 예술인 산재보험이다.

세계가 열광하는 K-콘텐츠라고 했던가? 윤석열 대통령은 K-콘텐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K-콘텐츠 생산자, 곧 예술인이 죽고 다치고 아파서 예술활동을 그만두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스태프들이 사고로 다치고 폭염에 목숨을 잃었다. 웹툰작가들이 과로로 죽고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공연 중 무대 위에서 관객이 보는 앞에서 다치는 뮤지컬 배우들이 있고, 공연무대 설치와 해체 작업을 하다 떨어져 숨지고 다친 이들도 부지기수다. 야간작업과 마감에 시달리는 방송작가들과 책 만드는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다. 정부가 그간의 논의를 뒤엎고 임의가입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하겠다. 예술인들의 산재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예술인에게 산재보험이 왜 필요한지를 계속해 말하겠다. 예술인 산재보험은 마땅히 당연가입이어야 하고, 전면 적용이어야 하며, 산재의 책임이 있는 실질 사용자가 보험료를 전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관철하겠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예술인 산재보험을 위해 정부는 현장과 직접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소리 높이겠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지켜보겠다. 윤석열 정부의 의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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