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고용보험’이 오는 12월부터 시행된다. 전일제이자 사무직 노동자를 바탕으로 해 예술노동자를 제외하는 고용보험법 구멍을 메워 고용안정과 생계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계약 없이 소액·단속으로 이뤄지는 문화예술노동 현장의 특징을 반영하지 않아 대다수 문화예술인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재개정과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양이원영·유정주 의원과 문화예술노동연대는 2일 예술인 고용보험의 실효적 시행을 위한 국회 온라인토론회를 열었다.

20대 국회는 임기 말미 고용보험법 특례 규정으로 예술인을 편입시키는 법개정안을 통과했다. 당초 정부는 국정과제로 고용보험의 적용범위를 특수고용, 예술인을 포함한 모든 노무제공자에게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고용보험위원회에서 이를 골자로 개정안을 의결했지만, 국회 입법을 거치며 전일제 노동 중심의 고용보험법의 체계는 그대로 두고 예술인만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법개정이 이뤄졌다. 

개정 고용보험법과 최근 정해진 시행령을 보면, 예술인들 가운데서도 예술인 고용보험을 적용 받는 대상은 극소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을 명시적으로 체결한 경우만 고용보험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8 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예술 활동과 관련해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있는 예술인은 구두계약을 포함해도 42.1%에 겨우 미치는 정도다. 나머지 60%가량은 문턱에서 걸러진단 얘기다.

▲문화체육관광부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예술활동 관련 계약 체결 경험 설문조사 결과
▲문화체육관광부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예술활동 관련 계약 체결 경험 설문조사 결과

개정법이 고용보험 적용대상 예술인을 “다른 사람을 사용하지 아니하는” 이로 제한한 것도 형식상 팀제로 돌아가는 문화예술 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규정이다. 공연과 연극, 무용 등 분야에선 발주자가 팀원 중 한 명과만 용역계약을 맺고, 이 팀원이 나머지와 형식상 사용자로 계약을 맺는 일이 맞은데, 이 경우 ‘무늬만 팀장’은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서 빠진다. 이런 업무 양태는 비사무직 분야에 널리 퍼져, 문화예술뿐 아니라 건설, 조선, 제화, 일부 영화‧방송제작업계에도 통용되고 있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실효성 있는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위해서는 ‘계약 체결’ ‘사용자 제외’ 등 예술노동 현장에 맞지 않는 제한 규정을 삭제하고 노무 제공의 핵심을 담은 포괄적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보험법 시행령에 최근 정해진 소득제한도 턱없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1개월 이상 예술활동용역 계약에 대해 건별 월평균 50만원에 못 미치는 경우 피보험 자격이 박탈된다. 노동시간이 1개월 중 다 합쳐 11일이 안 돼도 자격이 박탈된다. 예컨대 석달 연습해 1건 공연한 보수가 150만원이면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월 30만원짜리 공연을 여러 건 동시에 수행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예술활동으로 인한 수입이 연 1200만원 미만인 예술인이 72.7%에 달한다.

피보험자격 기간을 정할 때 한달 중 11일을 근로한 경우에 한달을 채운 것으로 치기로 한 점도 마찬가지다. 2018년 대중문화예술 분야 용역계약 범위 설정 방안 연구에 따르면 대중음악인 월 활동 일수는 8.6일에 그친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예술인 없는 예술인 고용보험 시행령 논의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예술인 없는 예술인 고용보험 시행령 논의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박성혜 무용평론가(무용인희망연대 오롯)는 예술인 고용보험법과 적용 기준이 현장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마련돼 모순을 낳는다고 했다. 그는 “무용의 경우 국제콩쿨에서 상 타고 이름 석 자만 대도 알 만한 무용가도 3개월 연습하고 공연한 보수가 200만원이 안 된다. 소액 프로젝트를 동시다발로 진행해 생계를 해결하는 예술인이 대부분인데, 이들도 모두 빠진다”고 지적했다.

박 평론가는 “계약서엔 노동시간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는다. 연습하고 장소 이동해 3분 동안 노래 한곡을 하면 연습과 이동 시간을 뺀 공연시간만 명시되는 식”이라며 “노동시간을 제대로 명시하도록 의무화하지 않으면 세계적 아티스트도 제외될 것”이라고 했다.

최성희 문체부 예술정책과장은 “하위법령 개정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예술인들이 고용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장예술인의 의견을 지속하여 청취하고, 이를 관계기관에 전달하고 제도운영방안을 협의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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