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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문화예술 창작자의 ‘노동자성’을 고민하다
노동절, 문화예술 창작자의 ‘노동자성’을 고민하다
[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예술인 노동자로 보면 질떨어질 것이라는 인식부터 예술인 고용보험, 표준계약서, 예술인 노동조합까지

문화예술 창작자는 ‘노동자’인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변하는 사람은 한국에 많지 않았다. 2005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문화예술 영역에서 노조 깃발을 세운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을 제외하면 문화예술 영역 창작자나 활동가들 상당수는 자신들이 하는 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체감상으로 결코 높지 않았다.

공적인 자리나 사적인 공간에서 ‘문화예술의 노동자성’ 문제를 말하면 오히려 그러한 논의를 반박하거나, 자신들을 노동자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소리 높여 말하는 일이 많았다. 모 만화 전문 출판사 관계자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만화가를 노동자로서 보면, 지금보다 만화의 질이나 흥미는 훨씬 떨어질 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열심히 그리거나 대충 그려도 받는 월급이 같으면, 어디 공들여 그릴 맛이 나겠어요.”

양적 조사 결과로 따져봐도 상황은 비슷했다. 2009년 10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문화‧예술산업 근로실태조사 및 근로자 보호방안’ 보고서에서는 크게 ‘애니메이터’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영역 종사자, 만화가나 어시스턴트를 비롯한 만화 영역 종사자, 편집자 등을 포함한 출판 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노동자성 인식 여부에 대한 조사가 나온다. 각 영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발생하지만, 특정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프리랜서’나 ‘임시, 일용직’일수록 자신을 노동자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자신을 예술인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상당했다.

어떤 의미로 이 문제는 해묵은 문제기도 하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여파는 문화예술 창작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심각한 수준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인기를 얻는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 만화 혹은 소설, 공연이나 연극, 콘서트, 음반, 게임 등의 문화 매체는 계속 존재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당장 급하지 않은 곳이 아니면 지갑을 닫는 상황에서 문화예술은 우선 소비를 줄이기에 좋은 영역이었다. 흘러가는 돈이 줄어들자, 기업들에게 처우를 악화시키기에 충분한 명분이 주어졌다.

주의해야 할 것은 IMF 경제위기 이전이라고 해서 문화예술인의 처우가 나았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IMF가 오기 전 자금은 상대적으로 원활하게 돌았지만 문화예술 창작자의 상황이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지금은 문화예술 전영역에 ‘표준계약서’ 인식이 어느 정도 퍼졌지만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계약서를 쓰는 사람 자체가 드물었다. 설사 작성한다고 해도,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노예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마저도 상당수 문화예술 기업들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가운데, 그래도 계약서는 작성한다며 ‘모범기업’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이 당시 현실이다.

애당초 창작자와 자본가 사이의 명확한 룰도, 서로가 지켜야 할 의무나 각자에게 보장된 권리가 규정되지 않은 판에 갑작스레 IMF 경제위기가 닥쳤다. 제대로 된 질서 없이 기업에게 이미 유리했던 판에 위기가 닥치자, 그 충격은 문화예술 영역의 자본과 기업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더욱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에 기여했다. 영화나 방송, 게임 같이 집단적으로 문화 창작에 관여하며 수직적 구조가 공고한 곳은 아래로 갈수록 노동시간이나 임금 등의 노동 환경이 악화되었다. 만화나 소설, 음악처럼 개인 중심의 창작이 일반적인 곳은 2020년이 되도록 평균 원고료, 작업비 수준을 올리기 어려운 것은 물론 갈수록 계약 조건이 악화되는 것이 보편적 상태로 정착되었다.

시간이 지나 차츰 경제위기의 타격은 가라앉으며 내수 시장은 조금씩 활력을 되찾았고, 2000년대 초중반부터 서서히 달아오른 ‘한류 열풍’은 한국 밖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문화예술 창작물을 해외에 알리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에 기여했다. 그러나 시장이 다시 살아났다고 해서 자연스레 악화된 환경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업들은 쉽게 자신들이 경제위기를 통해 손에 거머쥔 상대적 우위를 놓기 싫어했다. 결과적으로 시장 자체는 조금씩 크기가 커져도, 늘어난 산업 규모 만큼의 성과를 문화예술 창작자가 느끼기에는 쉽지 않았다. 도리어 시간이 지나도 늘긴 커녕 줄어들 것을 걱정할 처지에 놓인 보수, 일상에서 직면하는 권리 부재의 연속을 거치며 자신들의 불안정성을 느끼는 창작자들이 늘어났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문화예술노동연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여성문화예술연합 등 문화예술인단체들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노지민 기자.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문화예술노동연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여성문화예술연합 등 문화예술인단체들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노지민 기자.

그러나 그 불안정성에 대한 인식이 곧바로 ‘노동자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엥뗴르미땅’(Intermittent du spectacle, 프랑스 특유의 예술인 및 기술지원 인력 대상의 특별 실업보험 제도) 같은 고용보험 적용, ‘예술’과 ‘예술인’의 정의와 권리에 대한 법적 명문화 등이 200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논의되었지만 이러한 논의는 주로 공연이나 연극, 뮤지컬 같은 분야에 한정되었으며 다른 문화 영역으로 확산된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설사 ‘예술인 고용보험’을 말한다 하더라도 표준근로계약서, 표준보수기준, 정기적인 단체 협상, 노동자로서 보장되어야 할 권리 등에 대해서까지 이야기가 된 상황 역시 아니었다.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정부의 유관기관 역시 문화예술 영역의 지원금을 늘리는 이상으로 문화예술 창작인들의 ‘노동자성’ 문제를 깊이 있게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예술인 고용보험’에 대한 논의가 왜 ‘노동자’에 대한 자기 인식으로는 쉽게 이어지지 못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겠지만 결국 가장 큰 요소는 ‘문화예술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화예술은 개인이나 집단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뒷받침되는 ‘자율’적 영역이지만, 다른 이의 지시로 이를 수행하거나 문화예술 창작의 대가로 금전을 지급받을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연재되는) 만화, 영화, 방송, 연극 등 일정한 주기로 창작이 이뤄져야 하거나 특정 기간 동안 연속하여 관리가 이뤄지는 영역의 경우 아무리 문화예술이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회사의 노동자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 밖에는 없다.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의 경우 빠르게는 1800년대 말, 늦어도 1920-30년대 초에는 사회 전역을 휩쓸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물결에 힘입어 조직적 단결과 파업 투쟁을 통해서 노조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정기적인 단체 협약을 비롯한 권리 보장의 성과를 이끌어 낸 바 있다.

비록 이러한 움직임은 영화, 방송, 연극 영역의 기술자나 작가, 배우 같이 집단 창작자 이뤄지는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이후인 68 혁명 등을 거치며 전세계적으로 변혁을 원하는 물결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설사 직접적 노동조합을 당장 만들지 못할지라도 ‘길드’(guild)의 형식을 통하여 종사자의 권익 향상을 위한 움직임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2007년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로 만화가 노동조합(Syndicat des auteurs de Bande Dessinée)이 프랑스 전국 작가작곡가 노동조합으로 세워진 것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서구보다는 문화예술 영역에서 노조가 세워지는 대신 반관반민의 성격으로 ‘협회’가 설립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과 각 문화예술 영역의 협회가 정기적으로 권리나 의무를 협상하여 규율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전통으로 이어져왔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물결에 쉽게 조응하기 어려웠다. 한국의 1950-1980년대는 온갖 독재와 억압으로 점철된 시기였고, 노동권에 대한 요구는 곧바로 ‘용공’(容共, 공산주의를 위한 행위)로 여겨지며 온갖 탄압을 받았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요구도 짓밟는 마당에 문화예술 노동에 대한 인식이 싹을 트기에도 어려웠다. 1987년 6월 항쟁을 이후로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다시 도입되고 뒤이어 노동자 대투쟁이 이어졌지만, 대공장을 넘어 사회 전 영역의 무수한 노동에 대한 변혁을 말하는 흐름으로 가기에는 해외 각국처럼 노동에 대한 인식이 성숙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제대로 가질 틈도 없이 한국에는 IMF 경제 위기가 덮쳐 왔고, 경제 회복을 이유로 온갖 노동권 탄압이나 훼손이 정당화되었다. 문화예술 창작자들 본인이 자신들이 ‘노동자’라 인식하고 말할 사회적 분위기고, 계기도 쉽게 마련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왜곡된 문화예술 노동과 권리의 문제가 당사자 본인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2005년 탄생해 온갖 탄압 속에서도 몇 차례의 이행협약을 이끌어내며 영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알린 전국영화산업노조의 움직임, 2011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사망, 이와 함께 그림책 작가 백희나가 제기한 자신의 인기 그림책 ‘구름빵’이 그림책, 동화계의 관행으로 매절 계약을 맺어 무척이나 높았던 판매 수익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2차 창작 수익도 지급받지 못했던 문제, 2015년 수면 위로 떠오른 TV 드라마 전문 음악 제작 회사 ‘로이엔터테인먼트’(구, 쿵엔터테인먼트)가 소속 작곡가를 착취하고 저작권마저 착복했던 사건, 2016년 연속해서 직원들의 자살과 사망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열악한 노동조건이 세상에 밝혀진 게임 회사 넷마블, 2016년 CJ ENM의 신입 PD로 입사해 곧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투입되었지만 절망적인 수준의 방송 노동 환경에 항의하다 회사에서 배제당하고 끝내 죽음으로 항거했던 이한빛 PD의 사망 사건. 문화예술계의 기업이 창작자를 계속 벼랑으로 몰아넣고, 정부가 이를 방조하는 사이 창작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고발한 온갖 사건들은 점차 쉽게 바뀌기 어려웠던 판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 온갖 사건들의 흐름은 오랜 시간 ‘노동자성’ 인식이 없던 한국의 문화예술계에 조금씩 변화의 물결을 만드는 것에 기여했다. 2013년에는 인디/언더그라운드 영역의 음악인들을 중심으로 음원과 공연의 정당한 수입 분배를 요구하며 ‘뮤지션유니온’이 창립했으며, 2015년에는 다양한 영역의 예술인들이 함꼐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로 세워진 ‘예술인소셜유니온’이 탄생했다. 이후 2017년에는 언론노조 산하로 방송작가지부가 (별칭 ‘방송작가유니온’), 2018년에는 희망연대노조 산하로 방송스태프지부가 창립했다. 2018년에는 네이버, 카카오 등의 IT 기업은 물론 넥슨, 스마일게이트 등의 게임 회사에 화섬노조(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지부 노동조합이 연속으로 생겨났다. 2019년에는 웹툰과 웹소설, 일러스트 창작자들의 노동조합인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가 탄생했다.

▲방송작가유니온 홈페이지 메인 사진.
▲방송작가유니온 홈페이지 메인 사진.

2000년대 전국영화산업노조 딱 한 곳 정도에 불과했던 문화예술 창작자들의 노동조합은 20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그만큼 최근으로 갈수록 자신들의 열악한 환경과 부재한 권리의 문제가 단지 ‘노력’을 한다고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적극적인 요구와 단결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정부와 기업은 이들의 등장에 자신들 역시 변화하기 보다는 이전의 사고 방식을 계속 고수하려 한다. 정부는 문화예술 영역에서 점점 노동조합이 등장하는 상황에서도 문화예술인을 계속 ‘프리랜서’로 보는 시선을 바꾸지 않고 있다. 2011년 최고은 작가의 죽음으로 빠르게 신설되었지만, 노동자성에 대한 인식은 물론 하향식 복지 개념에 머무르고 있는 ‘예술인복지법’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전면적인 개편을 계속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요구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복지부동이다. 기업은 노조를 무시하거나 심하게는 탄압하면서 자신들의 의사가 마음대로 결정될 수 있었던 과거의 상황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자세를 강하게 드러낸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으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침체는 가뜩이나 취약한 한국 문화예술계의 문제를 더욱 가시화시켜 드러내고 있다. TV의 다큐 프로그램이나 공연 예술 같이 외부의 활동이 쉽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문화예술 창작자에게는 일방적 무급을 강요하고, 드라마나 만화, 웹소설 등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문화노동 활동이나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문화예술 창작자에게는 코로나19가 밀려오는 와중에서도 제대로 된 방역 대책을 세우지 않은채 방치하고 있다. 정부 기관 역시 기존의 경쟁식, 서류평가식 지원 형태를 크게 바꾸지 않은채 ‘긴급지원금’이라는 명칭을 강조하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은 서서히 자신들을 노동자로 인식하며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기관과 기업만이 계속 과거에 머물러 있다. 말로는 창작자들에게 창의성과 상상력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이들은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창의성도, 새로운 시대를 그리는 상상력도 모두 결여되어있다. 창의성과 상상력이 없는 이들이 정작 창의성과 상상력으로 담대한 길을 가려는 문화예술 창작 ‘노동자’들의 앞을 가로막고 이전의 방식을 계속 강요한다. 그 몰염치함과 뻔뻔함에 이제는 종언을 고할 시대이다. 모두가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으며 기존의 부당함과 불합리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2020년, 더 이상 과거의 구습에 계속 매달릴 수는 없다. 훨씬 과감하며,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변화의 필요성은 이미 눈 앞에 던져져 있다. 단지 저들은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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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5-02 21:15:38
"정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릴 때,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먼저 고통을 받는다. - 파커 J. 파머" <<< 민주주의는 공것이 없고, 피로 이루어져 있다. 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싸워야 하면 무엇보다 정책과 개선방향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무작정 정부가 다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 의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