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은 나쁜 인수합병을 포기하십시오.” 2016년 3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광고가 전국 29개 신문 1면에 실렸다. 광고를 게재한 기업은 KT와 LG유플러스. 두 기업이 연합 전선을 짜고 IPTV를 운영하는 SK가 케이블SO(케이블 플랫폼)인 CJ헬로비전 인수를 해선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양사는 “SK텔레콤의 나쁜 인수합병으로 대한민국의 통신 인프라는 퇴보할 것이고 엄청난 가계통신비가 SK텔레콤의 이윤으로 돌아가고 대규모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 2016년 3월 LG유플러스와 KT가 공동으로 낸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합병 반대 광고
▲ 2016년 3월 LG유플러스와 KT가 공동으로 낸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합병 반대 광고

2년 앞선 2014년에는 SK와 LG유플러스가 동맹을 구성하고 KT를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당시 유료방송 합산 점유율 30% 제한 규제 도입을 요구하기 위해 두 통신사가 뭉친 것이다. 당시 KT와 자회사 스카이라이프의 합산 점유율은 28%였다. 이들은 “유료방송 시장 1/3 가입자 초과가 임박한 KT그룹의 특혜 및 시장독과점을 방지하고 경쟁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합산규제 도입을 요구했다.

이들 통신3사는 상대 사업자를 저지하기 위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명분’을 동원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유료방송 인수합병이 이뤄지고 합산규제가 일몰 폐지된 현재 이들이 우려하는 행보가 현실이 됐다. 그러나 통신3사 모두가 이익을 보는 상황이 되자 통신3사의 입에서 ‘통신 인프라 퇴보’ ‘시장독과점 형성’ 등 우려는 사라졌다.

규제 사라지며 통신3사 유료방송시장 독식

2015년 하반기 기준 유료방송 시장은 KT계열(KT 및 스카이라이프)이 29.34%로 가장 점유율이 높았다. 2위는 IPTV가 아닌 케이블SO인 CJ헬로비전(13.72%)이었다. 이어 SK브로드밴드(12.05%), 티브로드(11.67%), LG유플러스(9.09%) 딜라이브(7.23%) 순이다. 당시만 해도 통신3사의 유료방송 점유율은 50.48%였다. 통신3사는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 점유율을 합치더라도 ‘절반의 시장’만 갖고 있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개한 2021년 하반기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을 보면 KT계열이 35.58% 점유율을 기록했다. 점유율 33% 규제 족쇄가 사라져 가입자를 제한 없이 늘리는 모양새다. 2위는 CJ헬로비전을 인수한 LG유플러스 계열로 25.33%를 기록했다. 티브로드를 인수한 SK브로드밴드는 25.03% 점유율을 기록했다. 세 통신사의 유료방송 점유율 합이 85%를 기록했다.

유료방송 시장은 통신3사 중심의 재편이 이뤄졌다. 통신3사는 휴대폰 상품과 IPTV, 최근 들어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OTT까지 제공하는 ‘결합상품’으로 중무장하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추이. 디자인=이우림 기자
▲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추이. 디자인=이우림 기자

이 과정에서 정부도 역할을 했다. 통신시장 지배력이 방송으로 전이되는 ‘시장지배력 전이’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실효성 있는 규제를 마련하지 않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16년 유료방송 발전방안 연구반 논의를 통해 사실상 ‘인수합병 허용’ 기조를 열었다. 쟁점이 있는 합산규제 등 사안에는 여러 안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면서 사실상 규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케이블 진영은 반발했다. 발전방안 발표 당시 김정수 케이블TV방송협회 사무총장은 “미래부가 공정위의 M&A 반대조건을 해결하고 통신사의 활로를 개척하려는 건지 케이블TV의 퇴로를 열어준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당시 ‘유료방송 발전방안’ 연구반을 총괄한 손지윤 미래부 뉴미디어정책과장이 LG경제연구원 상무로 이직한 다음 LG유플러스 상무를 역임한 대목은 상징적이다.

‘남은 자’ 협상력 약화에 투자축소 악순환
‘팔린 자’ 가입자 뺏기고 정리해고 현실화

통신3사 주도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팔린 사업자’와 ‘남은 사업자’ 양측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버려진 산업’이 된 케이블SO들은 악순환에 빠졌다. SO와 IPTV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방송사들과 ‘콘텐츠 대가’(채널 제공 대가)의 적절성을 두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SO의 점유율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협상력도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역별로 존재하는 개별SO들의 경쟁력은 취약하다.

한 케이블업계 관계자는 “CJENM이 통신3사의 IPTV가 아닌 케이블SO 딜라이브를 상대로 분쟁을 제기한 사실에서 현실이 드러난다”며 “이미 요금의 60%를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배분하고 있다. 케이블SO의 협상력이 떨어지고 있으니 지상파, 종편, CJENM 등 콘텐츠 사업자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콘텐츠 대가로 지급하는 액수를 감당하기 힘겨운 수준이 돼 가고 있다”고 했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케이블업계에선 통신3사 IPTV의 공세가 전보다 심해졌다고 보고 있다. SO측에 따르면 지역 중소SO가 계약을 맺은 기숙사, 숙박업소 등 집합건물을 대상으로도 과도한 할인을 앞세운 전단지를 배포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이 이뤄지고 있다. 이한오 전국개별SO발전연합회장(금강방송 대표)은 지난 4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초청 간담회 자리에서 “IPTV 3사가 고가 주력 상품 모바일에 저가 유선상품(인터넷·방송)을 결합해 경품, 할인(공짜) 등으로 케이블TV 사업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대책을 호소했다.

‘통신사에 팔린 사업자’ 측에선 노동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에 인수된 티브로드 노동자들은 ‘가입자 빼내기’와 ‘정리해고’ 문제를 지적한다. 

SK브로드밴드가 티브로드를 인수하면서 티브로드 가입자에게 혜택을 제시하며 ‘SK브로드밴드 상품’을 권유하는 방식으로 티브로드 가입자를 손쉽게 SK브로드밴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권석천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케이블비정규직지부 조직부장은 “같은 요금에 IPTV로 넘어올 수 있게 전환해주고, 위약금을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티브로드 가입자를 SK브로드밴드 가입자로 전환하고 있다”며 “고장접수를 하게 되면 수리를 해줘야 하는데, 수리 대신 IPTV 가입을 권하며 우리 상품(티브로드 상품)의 단점을 얘기한다”고 했다. 인수 당시 가입자 강제 빼내기 방지 조항을 넣었지만 유명무실하다. 권석천 조직부장은 “결국 가입자 개인의 동의를 받아내기에 강제 전환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 감소분에 가입자 빼내기 등으로 케이블 이용자가 줄어들면, 노동자도 덩달아 줄게 된다. 노동자가 줄면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이탈 가입자’는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다. 권석천 조직부장은 “인수 이후 신규채용은 없었고 노동자들이 200명 가까이 줄었다. 그러다 올해는 9명 정리해고에, 6명을 출퇴근이 불가능한 거리에 배정하는 인사이동을 단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지역 권역별로 독점 사업을 할 수 있는 케이블SO는 지역 전문채널을 편성하며 ‘지역성 구현’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는 통신사 주도 인수 과정에서 지역성 책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사업 위축이 되면 지역 콘텐츠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 대항’ 앞세운 규제완화 공세
외면받는 ‘유료방송 공공성’

‘유료방송 공공성’ 논의는 미디어 정책 논의의 사각지대가 됐다. 통신3사가 유료방송시장을 흡수한 시기 넷플릭스 등 OTT가 부상하면서 ‘넷플릭스 대항론’을 부추겼다. 윤석열 정부는 미디어 소유겸영 규제 완화 등 ‘미디어 산업 활성화’를 위한 과제를 중점적으로 제시했다.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기업 규모를 키우는 한편 ‘무규제 상태’인 OTT와 동일하게 규제완화를 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했다. 윤석열 정부 정책과제에 유료방송 공공성 부문의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희망연대노조는 윤석열 정부에 △케이블방송 지역 채널 공익성 강화 △통신사 사회적 책임 확대 △방송·통신·콜센터 노동자 직접고용 전환 △방송·통신·콜센터 산업 현장 안전 강화 등을 요구했다. 

앞서 미디어 시민단체들은 2019년 관련 정책과제를 발표했는데 △유료방송 인수합병 심사시 지역성, 시청자 선택권 보장을 주요항목에 포함 △인허가, 재허가, 인수합병 심사시 종사자 의견수렴 절차를 제도화 △정기적인 노동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심사에 반영, 노동권 및 고용보장에 관한 심사배점 상향 △ 유료방송에 지상파, 종합편성채널과 마찬가지로 시청자위원회 의무화 등 책무 강화를 요구했다. 케이블업계를 중심으로 ‘결합상품 제한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 유료방송·인터넷 설치 노동자가 사다리와 UTP선 등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들고 가입자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기사와 무관) 사진=금준경 기자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 유료방송·인터넷 설치 노동자가 사다리와 UTP선 등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들고 가입자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기사와 무관) 사진=금준경 기자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전반적 규제 완화 흐름 속에서도 남겨야 하는 필수 규제, 최소 규제 영역을 선별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이슈”라며 “특히 케이블을 통해 구현해온 지역성을 어떻게 계속 담보해나갈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고 했다. 김동찬 정책위원장은 “사업자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강조하며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를 한다고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차별적 공적책무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고 했다.

언론노조가 대선 국면을 계기로 주장한 정책 과제인 ‘미디어와 산업 분리’(미산분리)는 방송사 뿐 아니라 유료방송에도 적용되는 개념이다. 미산분리가 현실화되면 SK그룹의 경우 통신, 네트워크 부문을 제외한 PP, SO, IPTV 등 미디어 부문을 별개의 독립 자본으로 구성하게 된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유료방송이 가입자를 모으는 이유는 방송 시청자를 모으는 게 아니라 인터넷 가입자를 모으기 위한 것”이라며 “망 사업자들이 미디어 플랫폼 사업에도 지배력을 행사하는 걸 방지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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