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정신. 확고히 지켜가겠단다. 윤석열 정부의 다짐이다. 5·18 민중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이 “국민통합의 주춧돌”이라고 주장했다. 

윤 정부 초기인 지금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오월정신을 통합의 주춧돌로 삼으려면 또렷한 ‘선행 인식’이 필요하다. 톺아보면 5·18 민중항쟁에 통합 거론은 학살 바로 다음날부터 나왔다. 계엄군의 전남도청 학살 직후에 조선일보 사설은 “악몽을 씻고 일어서자”고 주장했다.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단다.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고 거듭 썼다. 이튿날은 내놓고 통합을 주창했다. 하도 많은 왜곡을 저질러 회자되지 못했지만 “민족정서를 살리자” 제목의 사설(5월29일)은 “화해, 화합이 우리 민족정서의 대종”이고 “한국인은 인정에 강하다”며 “광주사태가 빚은 후유증일랑 먼저 이 화합과 인정이라는 민족정서의 고약으로 그 아픔을 덜고, 이 민족정서를 에너지로 하여 모나지 않는 부드러운, 그러면서 발전적인 분위기를 우리 주변에 깔아 나가기로 하자”고 언구럭을 부렸다. 학살에 탱크와 헬리콥터를 동원한 군부엔 노골적인 추파를, 학살당한 민중엔 ‘부드러운 화합’을 들이댔다. 

▲ 윤석열 대통령이 5월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사진=제20대 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이 5월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사진=제20대 대통령실 홈페이지

윤석열 정부가 부르대는 국민통합이 ‘조선일보식 화합’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다만 그 믿음이 이어지려면 두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다. 

첫째, 자유민주주의 위선자들이다. 윤 정부와 자유민주주의를 합창하고 있는 언론들은 군부독재가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을 때 그것을 적극 비호했던 집단이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에 최소한의 장치인 ‘대통령 직선제’를 독재자가 폭력적으로 폐기하며 헌정을 유린할 때도 앞을 다퉈 찬양했다. 군부와 밀착해 광화문 한복판에 고층 호텔을 챙기기도 했다.

위선자들은 언론계에만 있지 않다. 이 나라의 민중과 지식인들이 자유민주주의를 피와 눈물로 지켜갈 때 입 한번 벙긋하지 않은 교수들이 있다. 많은 민주인사들과 그 가족들이 해직과 감옥의 고통에 신음할 때 모르쇠를 놓으며 처자식과 호의호식하던 먹물들,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에 내내 침묵한 자칭 ‘지성인’들이 뜬금없이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임하며 케케묵은 냉전논리를 펼치는 이 기막힌 물구나무 현상에 솔직히 인간적 쓸쓸함마저 느낀다. ‘자유민주주의’를 내걸고 자신이 포함된 기득권 수호에 나선 그들에게 성찰을 권하는 것은 부질없는 기대일까. 그럼에도 윤 정부의 성공을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쓴다. 자유민주주의 위선자들의 민낯을 생생히 보여주는 거울이 다름 아닌 오월정신이다. 

둘째, 학살 공범들이다. 전두환·노태우는 어설프나마 ‘심판’을 받았다. 하지만 학살을 자행한 이른바 ‘신군부’의 장군들과 영관급 장교들은 저마다 두둑이 한 몫 챙겼다. 학살 현장에서 일선에 있던 사병들은 전혀 아니다. 항쟁 당시 성폭행을 저지른 특전사 중사의 참회를 주제로 『호랑이눈썹』을 쓰면서 취재한 일선 계엄군들의 삶은 장군·고급장교들과 사뭇 달랐다. 그들이 정권욕에 사로잡힌 정치군부의 명령 아래 학살에 나섰던 순간들을 지금이라도 곰비임비 증언하기를 바란다. 진실을 밝혀야 화해할 수 있다. 학살 공범에는 언론도 있다. 살인자가 또 다른 살해를 계획할 때 그것을 말릴 섟에 정당하다고 부추긴다면 ‘공범’ 또는 ‘살인교사범’이 분명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민중들을 쿠데타군이 학살할 때 우리 언론이 그러했다.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우리 ‘민족 정서’인 화합이 가능하다.

▲ 사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 연합뉴스
▲ 사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 연합뉴스

자유민주주의 위선자들과 학살 공범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할 때 ‘오월정신’은 살아날 수 있다. 위선자와 공범들이 언론권력을 매개로 이어져있고, 윤 정부가 그 언론에 기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의 편향적 보도가 당장은 든든할지 모르겠지만 큰 착각이다. 오월정신을 지켜가겠다면 더욱 그렇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