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기자 10명 중 8명이 업무 중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는 현직 기자들의 트라우마 실태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기자협회보 기사로 공개했다.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와 미국 컬럼비아대 부설 저널리즘 트라우마 관련 비영리기관 ‘다트센터’ 아시아 태평양지부가 이 조사를 후원했다. 한국기자협회 소속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트라우마 관련 첫 공식 조사다.

[관련 기사 : 기자 10명 중 8명 "일 하면서 심리적 트라우마 겪었다"]

설문에 참여한 현직 기자 544명 가운데 78.7%(428명)는 ‘기자로 근무하는 동안 심리적 트라우마를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가끔 있음’ 51.5%(280명), ‘자주 있음’ 19.3%(105명), ‘매우 빈번함’ 7.9%(43명)로 나타났다. ‘전혀 또는 거의 없다’는 응답은 21.3%(116명)였다. 

심리적으로 트라우마를 느낀 적 있다고 답한 응답자(428명)에게 ‘트라우마를 겪게 하는 사건이 얼마나 자주 있느냐’고 물은 결과 59.3%(254명)가 ‘1년에 2~3회’ 정도라고 답했다. 이어 ‘월 2~3회’ 느낀다는 답변은 26.9%(115명), ‘주 2~3회’ 답변은 9.6%(41명)로 나타났다.

▲  Gettyimages
▲ Gettyimages

기자들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할 때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세월호 사건 또는 아동학대·성폭력 등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다룰 때 심리적 트라우마가 얼마나 지속됐는지 묻자 ‘한 달 이상’이라는 응답이 43.9%(188명)로 가장 많았다. 기자협회보는 “통상 트라우마 지속 기간이 한 달을 넘을 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받는 점을 고려하면 의학적으로도 경고등이 켜진 사례가 적잖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트라우마 경험이 있다고 밝힌 428명에게 어떤 상황에서 트라우마를 느꼈는지 질문(복수 응답)한 결과 ‘취재 과정’이라는 응답이 61.0%(261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58.4%(250명)가 ‘보도 이후 독자들의 반응’을 꼽았다. ‘독자 반응’은 이메일이나 댓글, 전화 등을 통한 항의와 공격 등을 포함했다. 다음으로 기사 작성·보도 과정에서 ‘내근 데스크나 조직 내부에서 겪는 갈등’ 47.9%(205명), ‘취재나 보도 전후 취재원과의 관계’ 43.7%(187명), ‘기사 작성 및 보도 과정’ 36.4%(156명), ‘보도 이후 소송 등 법률 문제’ 35.5%(152명) 순으로 나타났다.

부서로 구분해보면 트라우마를 겪을 당시 부서는 ‘사건·법조 등 사회부’(48.4%·206명)가 절반 가량으로 나타났다. 이어 ‘지방자치단체 등 지역’ 10.3%(44명), ‘경제·산업·금융 등 경제부’ 9.3%(40명), ‘청와대·정당·외교·안보 등 정치부’ 6.1%(26명), ‘탐사보도·기획취재’ 5.8%(25명)순이다. 

기자들에게 15개 유형의 현장을 제시하고 트라우마 정도를 0~4점(전혀 없음~매우 많이 있음)으로 매기게 한 결과 ‘희생자 가족 및 관련 단체 취재’가 2.80점으로 트라우마 정도가 가장 높았다. ‘아동학대’(2.63점), ‘자살사건’(2.52점), ‘대형화재 및 폭발·침몰 사고’(2.43점), ‘성범죄’(2.38점), ‘코로나 등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질병’(2.25점), ‘온라인 커뮤니티’(2.22점), ‘전투나 테러’(2.20점), ‘교통사고’(2.13점), ‘폭력 사건’(2.04점)이 평균값인 2점을 넘겼다.

▲ 각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2015년 12월14일 서울 중구 YWCA에서 열린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를 취재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각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2015년 12월14일 서울 중구 YWCA에서 열린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를 취재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여성 기자가 성범죄 취재에서 트라우마를 더 많이 겪는 경향도 나타났다. 성범죄 관련 취재 중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응답한 344명 중 ‘자주 또는 매우 많이 겪었다’는 비율은 43.3%(149명)였다. 이를 성별로 나눠보면 여성 63.0%, 남성 30.1%다.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경우가 20.6%(88명)로 나타나기도 했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이유를 묻자 상당수가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 등의 응답을 했고, 일부는 “당시 모든 기자가 겪는 문제라서”, “원래 그런 직업이라 생각해서”, “감당해야 하는 줄 알았다” 등이라고 답했다. 

‘기자라는 이유로, 특히 특정 기사로 인해 공격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544명 중 77.9%(424명)에 달했다.

‘지난 1년간 어떠한 식으로 온라인 공격을 당한 적이 있는지’ 묻자 75.2%(409명)가 ‘기사 댓글로 조롱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기사 댓글로 모욕을 당했다’ 74.3%(404명), ‘댓글에서 협박당한 적 있다’ 45.0%(245명), ‘공격적이고 불쾌한 내용을 올려 화를 부추기는 ‘트롤링’을 당했다’ 35.1%(191명), ‘신상 털기’ 30.7%(167명), ‘성적 수치심 유발’ 18.4%(100명)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특정인으로부터 지속적인 공격 등 위협을 당한 비율이 18.5%(101명)로 나타났다. 이 중 57.4%(58명)는 회사에 공격을 당했다고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한 적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회사로부터 어떤 후속 조치가 있었냐고 묻자 “없었다”는 답이 37.9%(22명)로 나타났다. ‘무시하라’ ‘전화받지 마라’ ‘안전에 특별히 주의하라’는 정도의 지시만 내렸고 실질적인 도움은 받지 못했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실시한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 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해 11월8일~18일 모바일로 진행했다. 설문에는 한국기자협회 회원 544명이 참여했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기자협회는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취재 중 트라우마 사례 및 대응 방안 등을 정리해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