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기자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조직 차원의 대응을 체계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기자에 대한 반감과 여성 혐오가 중첩된 괴롭힘이 여성 기자 개인의 역량 뿐 아니라 언론계에도 위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논의와 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17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처음으로 여성기자의 온라인 괴롭힘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가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엔 언론계 학자, 종사자,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머리를 맞댔다. 김창욱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와 신우열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 자리에서 ‘여성기자 온라인 괴롭힘에 관한 저널리즘 사회학적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신우열 교수는 “한국의 ‘기레기’ 담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여성 기자에 대한 혐오에 일정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앞선 연구에서 확인했다”며 “여성 기자에 대한 괴롭힘, 폭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연구 결과만을 참고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 언론계 문화상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고 연구 취지를 설명했다.

▲3월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주최로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3월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주최로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연구진은 여성 기자 20명, 남성 기자 1명(젠더팀 소속)을 심층 인터뷰했다. 경향신문, 뉴스타파, 미디어오늘, 서울신문, 연합뉴스, 오마이뉴스, 한겨레, 한국일보, CBS, MBC, SBS, TBS, TV조선, YTN 등 총 14개사 소속 기자들이 연구에 참여했다. 근무기간은 5년차 이하가 12명, 5년 이상 10년 이하가 3명, 10년 이상이 6명이다. 인터뷰는 지난해 7월13일~15일, 8월 9일~12일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일상화’된 괴롭힘, 여성혐오·성폭력 더해져

여성기자 대상 온라인 괴롭힘은 연차, 부서, 정치적 지향 등 관계 없이 ‘일상화’된 동시에 성폭력 요소가 확인되는 특징을 보인다. 여성의 성기 등을 언급하는 욕설, 외모비하와 성희롱, 강간·살해·가족 협박 메시지에서 나아가 오프라인 공격으로 이어진 사례가 확인됐다. 협박의 경우도 ‘성폭행’ ‘강간’ ‘집단강간’ 등 성폭력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유형이 대표적이다. 한 언론사의 여성 기자들이 남성 성기 등 이미지가 첨부된 이메일을 지속적으로 받은 경우도 있다.

댓글창에서의 성희롱은 한 번 시작되면 집단적이고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자신의 외모·신체에 대해 성희롱 댓글 피해를 겪은 B 기자는 “‘이 기사의 댓글은 이런 분위기구나’라는 게 조성이 되면 한 명이 그런 성희롱을 시작하니까 계속 성희롱이 달렸다”고 전했다.

여성 기자 중에서도 특히 △정치·법조 △소수자 △젠더 이슈를 주로 다루는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강도의 괴롭힘을 겪는다. 난민 관련 기사를 작성한 C기자는 “(난민에게) 강간당하고 생각해 봐라” “네가 성폭행을 당해도 찬성할 것이냐” 등 이메일을 받았다고 밝혔다. 변종 성범죄 기사를 작성한 D기자는 “방법을 알려줘서 고맙다”는 댓글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상황이 누적되면 두려워지는 지점이 없지 않다”고 했다.

비슷한 기사를 작성해도 여성기자와 남성기자가 경험하는 괴롭힘의 유형·빈도·정도는 달랐다. 한 언론사 젠더팀의 남성기자는 “제가 받는 악플이나 메일의 빈도와 나머지 (여성기자) 분들이 받는 빈도 차이가 크다”며 “저는 두세 통 오는 정도로 끝나는데 여성기자들은 그 이상으로, 열 통 이상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공격이 예상되는 기사에서 여성 기자의 이름을 빼고 남성 기자의 이름만 넣거나, 여성기자가 취재직을 그만둔 사례도 있었다.

▲3월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주최로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신우열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왼쪽)와 김창욱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3월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주최로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신우열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왼쪽)와 김창욱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연구에 참여한 기자들은 기자의 신상 노출이 잦은 뉴스 유통·소비 시스템이 괴롭힘에 취약한 환경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회사는 더 높은 (기사) 클릭 수, 페이지뷰를 유도하기 위해 기자들이 스스로를 브랜드화하기를 유도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자들의 신상이 더 자주, 많이 공개된다”며 “신문사 기자들도 방송에 출연하거나 온라인 콘텐츠 제작 등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이럴 때 외모품평 등과 같은 성희롱성 괴롭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신상공개 요구받는 기자들…‘적극적 보호’는 없어

‘브랜딩’을 요구받는 환경에선 괴롭힘을 겪은 여성기자들이 역량을 쌓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놓이기도 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기자들은 외모 관련 이야기를 듣는 것이 꺼려져서 어떠한 방송 관련 출연도 거부한다거나, ‘기자수첩’ 코너처럼 기자 사진이 공개되는 기사 작성을 꺼린 경험을 밝혔다. E기자는 “신상 노출이 싫으면 ‘홈페이지에서 나를 없애달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딜레마를 호소했다.

괴롭힘을 겪은 여성 기자들의 대처 매커니즘은 ‘완벽주의 추구’나 ‘회피형’으로 분류된다. 기사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소진되고 ‘번 아웃’을 겪거나, 특정 주제·부서를 회피하면서 결국 여성 기자의 커리어 개발에 악영향을 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언론계 측면에선 괴롭힘을 야기할 만한 이슈를 꺼리는 냉각효과(칠링이펙트) 또한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에선 기자들의 온라인 괴롭힘에 대해 적극적인 보호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 최대 뉴스 발행사인 Reach PLC는 독자들 뿐 아니라 저널리스트를 위한 ‘온라인 안전 에디터’가 있다. 온라인 안전 부서는 괴롭힘 사례를 데이터화하고 분석해 예방책을 강구하며, 회사 내 정책·절차가 최신 상태인지를 확인한다. 기자들을 가해자들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독자들의 온라인 뉴스 이용 경험을 돕는 것이라는 관점에서다.

▲3월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주최로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류란 언론노조 SBS본부 성평등위원장(위)과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3월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주최로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류란 언론노조 SBS본부 성평등위원장(위)과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반면 한국에선 이런 ‘적극적 보호형’ 대응을 찾아볼 수 없다고 연구진은 판단했다. 그나마 경향신문·한겨레 등은 기자 대상 공격이 예상되는 기사에 법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첨부하고, 경향신문·조선일보 등이 기자들에 대한 공격이 담긴 이메일을 수집하고 있다. 일부 언론사에서 법적 대응이나 상담을 지원한 사례도 있지만 여전히 ‘소극적 보호’에 머물고 있다.

김창욱 교수는 “조직의 특성에 따라 기자들은 자신이 당하는 괴롭힘을 이야기해야 할지 말지 내면화된 ‘선’이 있다”며 “대부분의 한국 조직이 ‘무시형’이나 ‘방임형’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완벽주의’나 ‘회피’를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언론학에서 ‘언론의 상태를 알고 싶다면 기자가 어떤 상태인지 보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만난 기자들, 젊은 세대들은 굉장히 심각한 공동화 상태를 깊게 경험하고 있다”면서 “기자란 직업이 이런 상태에 놓인 게 기자 개인의 문제인가, 제 답은 ‘아니다’이다. 이 문제를 방치한 언론사 조직의 문제가 크고, 나아가 언론을 대하는 사회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신우열 교수는 “교과서에서 언론은 사회기관으로서 시민들을 섬겨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과연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괴롭히는 시민도 섬겨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며 “현장에서 유리되는 독자와 기자간 거리 속에서 저널리즘이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것의 시작은 온라인 괴롭힘을 오프라인 괴롭힘과 같은 ‘폭력’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각 언론사는 법률적, 의학적 차원의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들이 자가진단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온라인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피해에 대한 ‘핫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기본적인 창구 마련부터 법·제도적 보완 요구도

토론회에 참석한 언론계 종사자들은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대응을 강조했다.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는 “기자들의 의심은 ‘이게(괴롭힘에 대한 대응) 얼마나 가겠어’라는 것이다. 그런 것이 좌절을 가져오고 구조적·전체적 문제 해결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인식될 수 있기에 얼마나 의지를 확고하게 유지하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각 언론사 환경을 따져보는 동시에 한국기자협회, 언론노조 등 회원사에 속하지 않은 기자들의 창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3월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주최로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이사(위)와 은사자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3월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주최로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이사(위)와 은사자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작년 4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업무와 관련해 고객 등 제3자의 폭언으로 근로자에게 건강장애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할 우려가 있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회사가 취하도록 돼 있다”며 “최소한 신문법 내부에 편집위원회 의무화와 함께 이런 보호조치를 어떻게 강구해야 하는지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도록 하고, 방송법에도 보호조치, 의무 조치를 신설하고 기금지원 등 항목을 두는 게 어떨까 제안한다. 무엇보다 이 논의가 오늘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활동, 공조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왜 여성기자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느냐’ 묻기보다 드러난 문제를 직면하고 함께 안전해질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모였다. 류란 언론노조 SBS본부 성평등위원장은 “꼭 여성기자 문제이냐, 젠더 문제로 부를 필요가 있느냐는 백래시가 있다는 것도 들었는데, 여성과 남성이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떻게 취약성 민감도가 다른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여성기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양상이 다르다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돼야 한다”며 “사회과학 연구에서 교차성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온라인 폭력에 대해) 더 정확히 이야기하기 위해 여성기자에 대한 폭력은 어떻게 다른지를 이야기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은사자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여성이 겪는 차별이 공론장에 꺼내지면 ‘남성들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며 “‘남성 기자는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구조적으로 보다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 기자가 안전한 공간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때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날 토론회에선 혐오를 양산하는 댓글창에 대한 언론사 차원의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성범죄, 아동학대 피해자에 대한 댓글을 언론사가 관리하고 없애는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댓글창이) 저널리즘 품질, 2차 피해 관련, 내부 조직원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도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조직 안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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