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가 이동권 보장을 위해 시위를 벌이는 장애인 단체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대응 문건을 만들고 ‘진보 언론’을 싸울 대상으로 규정한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공사의 ‘언론 공작 시도’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공사의 여론 조성 보도자료를 그대로 기사화한 언론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YTN은 지난 17일 ‘“장애인단체 실점 찾아라”…서울교통공사 대응 문건 논란’ 리포트를 통해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언론팀 직원 명의로 작성한 장애인 시위 대응 문건 내용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문건은 장애인이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을 무너트리기 어려우니, 시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를 찾아내 언론에 알려야 한다는 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해당 문건에는 장애인 단체 뿐 아니라 장애인 전문 매체를 포함한 진보언론에 대한 대응 방안도 나타나 있었다. 문건은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은 함께하는 장애인단체들과 직접적 물리적인 활동,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활동가들과 언론의 힘으로 여론을 이끌어내 결정권자를 압박, 법 개정 등을 이뤄내려 한다”며 ‘장애인 언론 매체’와 ‘약자 공감 중시하는 기타 언론 매체’를 전장연과 관계가 있는 단체로 규정했다.

[관련 기사: 미디어오늘: 장애인 지하철 시위 대응 문건 '진보언론' 겨냥했다]

▲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문건은 “‘약자는 선하다’ 기조의 기성 언론+장애인 전용언론 조합과 싸워야 함”이라며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언더도그마가 사회의 보편적 흐름으로 자리잡은 이상 언론은 이를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며 특히 진보의 가치를 높이 사는 특정 매체일수록 더더욱 그러함”이라고 했다.

예시로 경향신문 기사 ‘장애인의 권리찾기 행동…불편하다고 때리지 말자(2022.2.16)’, 한겨레 기사 ‘지하철 시위 장애인 단체에 사이버 공격…혐오를 멈추십시오(2022.2.15)’와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를 게재한 오마이뉴스 기사 ‘언론이 장애인 시위를 어떻게 보도했나 살펴봤더니(2021.12.23)’를 제시했다.

장애 전문매체인 비마이너를 거론하면서는 “비마이너로 대표되는 장애인 전용 언론의 당연한 장애인 입장 보도” “비마이너는 전장연 대표가 창립멤버로 포함되어 있는 완전한 당 기관지. 마이너한 매체이나 기본적으로 언론인 만큼 여론전 용도는 충분”이라고 썼다.

▲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여론 조성 보도자료 기사화한 언론에 대한 지적 이어져

이에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는 18일 성명을 통해 “서울교통공사는 언론플레이를 중단하고, 장애인과 소통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연대는 “공사의 교통약자를 바라보는 저열한 인식과 함께 해당 문건이 언론 매체들에 의해 그대로 인용됐다는 점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연대는 서울교통공사의 그릇된 언론관 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사는 경향신문과 한겨레, 오마이뉴스를 지목해서는 “약자는 선하다는 기조의 기성 언론”으로 치부했다. 또한 비마이너는 “장애인 전용 언론”, “당 기관지” 등으로 매도해버렸다”며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온 언론사와 기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공사의 여론 조성 보도자료를 기사화한 언론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연대는 “공사가 지난달 22일 장애인 시위로 인한 ‘시민 불편’을 부각한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공사의 의도대로 많은 언론매체들에 의해 기사화됐다”고 했다. “특히, ‘할머니 임종’ 사례는 언론에 의해 자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장애인들의 정당한 시위를 중단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중앙일보는 아예 “임종 놓쳤다”로 기정사실화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며 “해당 매체들은 이제라도 사과하고 관련 기사를 정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월 22일 “전장연과 지하철 이용 시민 간의 갈등도 점차 심화되고 있다”며 “한 시민은 2월 9일 오전 출근길 5호선 전동차 안에서 자신의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야 하는데 전장연 측이 열차를 막아 갈 수 없다며 현장에서 울면서 항의하는 등, 안타까운 사연도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다수 언론은 ‘할머니 임종’ 사례를 기사화했다. ‘서울교통공사 ‘할머니 임종 못가 운 승객도…장애인 단체 시위 중단 요청’’(조선일보 2월 22일), ‘‘승객이 할머니 임종 놓쳤다’ 교통공사, 장애인 시위 중단 요청’(중앙일보 22일), ‘‘할머니 임종 지켜야…’ 장애인단체 출근길 시위에 공사 자제 요청’(동아닷컴 22일), ‘‘임종 지키러 가야하는데’ 절규에 장애인단체 ‘버스 타라’’(서울경제 23일), ‘‘임종 가야해요’ 커지는 불만 장애인단체, 지하철 시위 멈춘다’(머니투데이 23일) 등 해당 사례를 부각하는 언론 보도는 이어졌다.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닷컴 기사 갈무리.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닷컴 기사 갈무리.
▲ 서울경제, 머니투데이 기사 갈무리.
▲ 서울경제, 머니투데이 기사 갈무리.

문건은 이를 ‘대응을 잘한 사례’로 소개하며 “여론전 위한 보도자료 준비 중 고객안전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사실 확인 후 시민피해 상황을 알리는 소재로 (이 사건을) 활용(했다). 2월 23일 보도 후 여론이 급격히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연대는 “이번 사건에서도 언론매체들의 단순 받아쓰기 관행은 여실히 드러났다“며 “집회·시위를 보도할 때에는 행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도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시민불편’ 프레임에 대해서도 “이 같은 프레임 짜기는 실질적인 책임자를 가린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경고해왔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론은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가. 언제까지 이 같은 행태를 봐야 하는지 개탄스럽다”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18일 논평을 통해 공사의 문건을 ‘언론공작 시도’라고 규정했다. 전국언론노조는 “보편적 이동권 요구를 짓밟는 서울교통공사의 언론공작 시도를 규탄한다”며 “서울교통공사 언론팀의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문서는 공공교통체계가 갖는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언론을 갈라치기와 공작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저열한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회적 약자를 제압의 대상으로 여겨 그들을 이길 여론을 만들겠다는 이 천박한 문구에서 우리는 공공의 영역까지 만연한 혐오와 차별의 뿌리를 확인한다”며 “담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분노를 담아 이를 규탄한다”고 했다. 

▲ 사진출처=비마이너.(비마이너 측의 동의를 구한 사진 게재입니다.)
▲ 사진출처=비마이너.(비마이너 측의 동의를 구한 사진 게재입니다.)

한편, 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는 18일 서울 성동구 서울교통공사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의 공개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공사의 언론공작 문건에 경악했다”며 “개인 일탈이 아닌 조직의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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