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시위를 이어간 장애인 단체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대응 문건을 만들고 ‘진보 언론’을 싸울 대상으로 규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YTN은 17일 ‘‘장애인 단체 실점 찾아라’ 서울교통공사 문건 논란’ 리포트를 통해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언론팀 직원 명의로 작성한 문건이 장애인 단체의 실수를 찾아내 언론에 알리라는 등 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문건은 “공사는 실질적 약자, 실점방지 & 디테일 발굴 중요…여론전 승부는 디테일이 가른다”며 ‘여론전’ 방안을 담고 있다.

비마이너·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 ‘싸울 대상’ 규정

해당 문건을 확인한 결과 장애인 단체 뿐 아니라 장애인 전문 매체를 포함한 진보언론에 대한 대응 방안도 나타나 있었다.

해당 문건 속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과 함께 하는 곳들 & 그들의 전략’ 대목을 보면 “전장연은 함께하는 장애인단체들과 직접적 물리적인 활동,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활동가들과 언론의 힘으로 여론을 이끌어내 결정권자를 압박, 법개정 등을 이뤄내려 한다”며 ‘장애인 언론 매체’와 ‘약자 공감 중시하는 기타 언론 매체’를 전장연과 관계가 있는 단체로 규정했다.

▲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문건은 ‘여론전도 기본적으로 불리!’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약자는 선하다’ 기조의 기성 언론+장애인 전용언론 조합과 싸워야 함”이라며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언더도그마가 사회의 보편적 흐름으로 자리잡은 이상 언론은 이를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며 특히 진보의 가치를 높이 사는 특정 매체일수록 더더욱 그러함”이라고 규정했다.

문건은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장애인 시위 관련 기사와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를 게재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예시로 제시했다.

문건은 장애 전문매체인 비마이너를 거론하며 “비마이너로 대표되는 장애인 전용 언론의 당연한 장애인 입장 보도” “비마이너는 전장연 대표가 창립멤버로 포함되어 있는 완전한 당 기관지. 마이너한 매체이나 기본적으로 언론인 만큼 여론전 용도는 충분”이라고 썼다.

문건은 지하철 역사 내 노숙인 차별 논란과 국가인권위원회가 고 변희수 하사 지하철 광고를 막아선 안 된다는 판단을 한 사실을 언급하며 “장애인 뿐 아니라 노숙인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의 대사회투쟁” “일반 여론과 상관없이 언론+시민단체 공격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비마이너는 17일 오후 입장을 내고 “비마이너는 기성 언론이 장애와 빈곤에 대해 정확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며 “지난 12년간 비마이너는 전문언론으로서 이제까지 주류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던 장애와 빈곤 문제에 대해 가장 정확한 목소리를 내왔다”고 밝혔다.

비마이너는 “서울교통공사는 문건에서 공사에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비마이너를 ‘당 기관지’라고 칭하며 언론으로서의 존재를 깎아내렸다”며 “그러나 공사야말로 기자단 중심으로 구성된 현 언론 구조를 활용해 출입 언론사를 공사 기관지처럼 이용한 것은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공사 ‘개인 일탈’ 주장… 전장연 규탄 기자회견 예고

언론 보도로 인해 논란이 불거지자 서울교통공사는 사과 입장을 냈다. 

서울교통공사는 17일 사과문을 내고 “한 직원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사내 자유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공사의 공식적입 입장이 아니다”라며 “공사가 조직 차원에서 여론전을 전개했다는 내용 역시 사실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번 보도는 개인이 작성한 문서를 마치 공사의 공식 의견인 것처럼 비춰지게 하여 시민분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사진출처=비마이너.( 비마이너 측의 동의를 구한 사진 게재입니다.)
▲ 사진출처=비마이너.( 비마이너 측의 동의를 구한 사진 게재입니다.)

사과문이 나오자 전장연은 “이 문제는 개인 일탈이 아닌 조직의 잘못이다. 교통공사는 꼬리자르기로 사태수습을 꾀하지만 전장연은 공사가 이미 수차례 악의적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장연은 18일 서울교통공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앞서 전장연은 성명을 내고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는 법에 명시된 법적 권리를 지키라는 것이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는 서울교통공사가 이행해야 할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며 “전장연을 죽이기 위해 작성된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지침을 즉각 폐기하고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공개적인 방식으로 공식 사과하고 즉각 사퇴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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