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보도국에서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다 해고된 방송작가 A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사내에 신고했지만 MBC가 불인정했다. MBC 인사부는 가해자로 지목된 팀장과 앵커가 업무상 우위에서 정신·신체적 고통을 준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MBC 인사부는 지난달 16일 낮뉴스 프로그램 ‘뉴스외전’에서 일하던 방송작가 A씨가 신고한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A씨에게 통보했다. 통보 이메일을 보면 MBC는 직장 내 괴롭힘의 세 가지 요건 가운데 △직장 내 지위상 우위를 이용한 행위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행위라는 점은 ‘충족’됐으나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행위’가 ‘미충족’됐다고 했다.

앞서 A 작가는 지난해 말 MBC 측 계약 종료(해고)로 퇴사하기 앞서 MBC 감사국과 인사부에 뉴스외전의 전영우 주간뉴스팀장과 권순표 앵커를 각각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진정했다. A 작가는 진정서에서 전 팀장과 권 앵커가 A 작가에 대해 일상적인 부당 지시를 했고, 전 팀장의 경우 그에게 수차례 고성으로 지시했다고도 주장했다.

▲MBC ‘뉴스외전’에서 일방 해고된 방송작가 A씨가 사측에 진정했던 직장내 괴롭힘 조사 결과 통보 이메일 전문
▲MBC ‘뉴스외전’에서 일방 해고된 방송작가 A씨가 사측에 진정했던 직장내 괴롭힘 조사 결과 통보 이메일 전문

A 작가는 팀 내 업무량이 많아 팀장과 앵커에게 업무 조정을 수차례 요청해오던 터다. 뉴스외전 작가들은 기자들에 비해 2배가량(주 5개)의 코너를 맡았는데, A작가의 경우 주 3일 새 게스트를 섭외해야 해 업무부담이 추가됐다. A 작가는 “과중한 업무에 수 차례 코너 수 조정을 요구했던 차였다. 그러나 거부당했고, 수시로 업무 외 지시까지 받아 더 큰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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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작가 진정서와 그가 제출한 재직 당시 기록에 따르면, 권 앵커와 전 팀장은 A 작가가 근무한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다수의 업무외 지시를 내렸다. 이 중 A 작가가 수행한 업무는 유튜브 섭외부터 취재원 연락처 수집 등이다. 모두 추가 급여나 계약 없이 이뤄졌다. A 작가는 “계약 연장을 받고 길게 일하고 싶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지시에 따랐다”고 했다.

권 앵커의 경우 자신이 진행하는 유튜브 ‘외전의 외전’ 게스트 섭외를 A 작가에게 지시했다. 전 팀장도 섭외를 재촉했다. 일례로 지난해 7월7일 A 작가가 정치인 L씨의 유튜브 출연 답변을 아직 받지 못했다고 전하자 전 팀장이 “안다”면서도 “앵커의 요청”이라며 “가능하면 빨리 알려달라’고 부탁 좀 해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권 앵커는 코너와 무관한 범죄 프로파일러 연락처 수집 지시도 했다.

지난해 8월 당시 통화 기록에 따르면 권 앵커는 A 작가가 본업인 당일 대본을 쓰는 중이라며 ‘일을 마치고 드려도 되느냐’고 묻자 ‘지금 달라’고 재차 말했다. 결국 A 작가는 바로 프로파일러 연락처 리스트를 정리해 전달했다.

▲ MBC가 평일 2시에 방영하는 낮뉴스 프로그램 ‘뉴스외전’
▲ MBC가 평일 2시에 방영하는 낮뉴스 프로그램 ‘뉴스외전’

A 작가는 전 팀장이 그에게 고성으로 지시했다고도 했다. 일례로 지난해 10월15일 부조정실에서 자막을 콜인, 콜아웃하던 그에게 전 팀장에 자막 내용에 대해 고성으로 질타했다. A 작가는 “소리를 지르시니 생방이 들리지 않아 (방송 내용에 맞춰) 자막을 넣을 수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같은 공간에 있었던 MBC 정규직 직원은 통화에서 “그 날이 기억 난다. 작가님이 반박한 것이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라면서도 “고성인지를 내가 말하기는 애매하다”고 했다.

주말이나 휴일, 결방 기간에도 밤낮없이 업무 지시가 왔다. 그는 “회사 사정으로 아무 급여도 못 받는 결방 기간에 일을 시키는 것이 가장 서러웠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올림픽 결방 때도 결방이 끝나면 출연할 정치인을 미리 섭외해 보고하라는 팀장의 연락을 받았다. A 작가가 “일당이 있느냐”고 묻자 전 팀장은 “없다”고 했다. A 작가는 “팀장 지시 전부터 이미 섭외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결국 섭외는 기자들이 했지만, 출연자 소통과 사전 질의지 작성, 대본은 모두 작가 몫이었다”고 했다.

팀 내 정규직 동료들도 A 작가가 겪는 부당대우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 작가와 동료들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를 보면, 직원 B씨는 A 작가가 무리한 지시로 인한 스트레스를 토로하자 “캡쳐해 두고 일 생기면 제시하겠다. 저도 쓰러지면 무조건 팀장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직원 C씨도 “작가님이 넘 괴로워했다 증언 가능”이라며 “쉽지 않다. 업무 과중이다”라고 했다. D씨는 지난해 6월 퇴근하는 A 작가에게 “‘노비, 잘 가요’ 할 뻔”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A 작가는 “입밖으론 내지 맙시다. 슬프잖아요. ㅠ”라고 답했다.

▲팀 내 동료들도 A 작가가 겪는 부당대우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 작가가 MBC 뉴스외전 동료(정규직)들과 나눈 대화 갈무리
▲팀 내 동료들도 A 작가가 겪는 부당대우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 작가가 MBC 뉴스외전 동료(정규직)들과 나눈 대화 갈무리

A 작가와 일했던 한 정규직 직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일과 후에도 추가 섭외 지시를 받거나 전화나 톡으로 업무 지시가 계속돼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며 “직접 보지 않았지만 정황으로 보면 (A 작가 호소가) 다 맞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또다른 직원은 “긴 대화를 나눠서 아는 건 아니다”라며 “그런(일과 외 지시) 얘기는 많이 들었다.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안다”고 했다.

A 작가가 겪은 일은 ‘무늬만 프리랜서’라는 방송작가의 열악한 신분과도 뗄 수 없다. A 작가의 사건을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원곡볍률사무소)는 “이번 괴롭힘은 방송작가의 열악한 지위에 맞닿아 있다. 방송사 제작진과 긴밀히 협업하면서도 노동자 지위를 가지지 못해 고용 불안에 시달리기에 일상적으로 도 넘은 지시를 받고도 거절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MBC 인사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결과를 두고 “인터뷰를 10명 넘게 진행한 결과다. 그것(A 작가 주장)을 뒤집을 만한 내용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내용이 무엇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MBC는 조사 과정에서 진정 당사자 A 작가와는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았다.

권순표 MBC 뉴스외전 앵커는 통화에서 진정 내용이 “A 작가의 악의적으로 과장된 주장”이라고 주장했다. 권 앵커는 연락처 수집 지시를 두고 “요구가 아닌 문의”라며 “예를 들어 옆동네 기자에게도 섭외 전화번호를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전화번호를 많이 아는 분이길래 물어본 것”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섭외 지시를 두고는 “섭외할 때 하나만 더 물어보면 되는 것을 업무 외 지시라고 하는 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에 A 작가는 “섭외는 한 번 물어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게스트에게 인터넷방송과 인터뷰 취지에 대해 새로 설명하고, 답변 확인 전화를 하고, 정치인의 경우 공문도 보내야 한다. 유튜브 출연자로 인해 본방의 다른 출연자 시간을 바꾸는 일도 작가 몫이었다”라고 반박했다.

전영우 MBC 주간뉴스팀장은 전화와 문자를 통한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최 변호사는 “MBC에 팀원에게 고성으로 지시하고 비번인 날에도 수시로 연락하는 행위는 명백히 업무 범위를 벗어난 행위이자 기록이 남아 있기에 가장 증명 또는 반증이 쉬운 부분이다. 다른 부분은 ‘충족’이라고 밝히면서도 직장 내 괴롭힘을 불인정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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