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만나려는 한국 상업 영화가 개봉 일을 잡지 못하고 줄줄이 밀려 서 있다. 새해 첫 달 배급사별 라인업을 집계해보니 60편이 넘는다. 코로나19가 잠식한 지난 2년 동안 영화관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탓인데, 유례없는 현상이다.

영화관의 1년은 53주로 돌아간다. 배급사는 여름 휴가나 명절, 공휴일 같은 ‘시즌’은 물론이고 경쟁작의 개봉 전략까지 고려해 관객과 만나는 최적의 타이밍을 정해왔다. 매주 수, 목요일쯤 개봉해 관객이 많아지는 첫 주 금, 토, 일 3일 성적을 잣대로 영화의 성패를 가늠하는 식이다.

이 전통적인 방식은 2022년에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을 것 같다. 60편 넘게 밀려 있는 한국 상업 영화가 한 주에 한 작품씩 바쁘게 개봉한다고 해도 53주로는 모자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더 배트맨>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히어로물,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아바타2> 같은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대작도 2022년 개봉을 예고했다. 독립, 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까지 합세하면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도 한국 상업 영화가 제 몸에 꼭 맞는 개봉 시기를 찾아 들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올해 개봉 예정인 ‘더 배트맨’과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영화 포스터
▲ 올해 개봉 예정인 ‘더 배트맨’과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영화 포스터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 몇몇 작품이 승부를 걸기 시작한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가 배급한 <경관의 피>는 다른 한국 상업영화 경쟁작이 없는 2022년 1주 차(5일)를 선점했다. 뒤이어 NEW의 <특송>이 2주 차(12일)를 택했다. <경관의 피>는 조진웅, 최우식이 각자의 신념으로 부딪히는 경찰 역을 연기하는 범죄 영화물이고, <특송>은 특송 전문 드라이버 역을 맡은 박소담이 도심 한복판 추격전을 벌이는 액션물이다.

기대가 모이는 시점은 주말을 낀 긴 설 연휴(1월29일~2월2일)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의 <킹메이커>가 바로 그 앞자락인 4주 차(1월26일) 개봉을 확정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설경구)과 선거전략가 엄창록(이선균)의 관계를 다룬다. 물론 다른 배급사가 황금연휴를 <킹메이커> 홀로 독식하게 둘 리는 없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해적: 도깨비 깃발>도 같은 자리로 들어간다. 866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성공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의 후속작이다. 강하늘이 의적단 두목을, 한효주가 해적선 주인, 권상우가 보물을 차지하려는 역적 역을 맡았다. 

고민스러운 건, 코로나19라는 위협이 종식되지 않는 한 이 일정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이병헌, 송강호, 전도연 주연의 항공재난물 <비상선언> 경우가 그렇다. 쇼박스는 오미크론 변이 때문에 당초 설 연휴로 염두에 두었던 개봉 일을 선제적으로 연기했다. 전통의 강호 CJ ENM도 걱정이 큰 건 마찬가지다. <국제시장>(2014) 윤제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안중근 의사 뮤지컬 영화 <영웅>, <도둑들>(2012) <암살>(2014) 최동훈 감독이 1편과 2편을 동시에 촬영했다는 SF물 <외계+인>, 박찬욱 감독과 탕웨이가 호흡한 <헤어질 결심>까지 작품이 쌓여간다.

▲ 지난 1월5일 개봉한 ‘경관의 피’와 1월26일 개봉 예정인 ‘킹메이커’ 영화 포스터.
▲ 지난 1월5일 개봉한 ‘경관의 피’와 1월26일 개봉 예정인 ‘킹메이커’ 영화 포스터.

박 터지는 경쟁이 예고됐으니, 손해를 면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입장이라면 자연스럽게 OTT 플랫폼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팬데믹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영화관 관람에 특화된 히어로물 <블랙 위도우>마저 개봉과 동시에 디즈니+에서 스트리밍하는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 주연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영화관 매출에 연동된 수익금 권리를 따져 물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영화관 배급만으로는 제대로 된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세울 수 없다는 월트디즈니의 판단은 쉽게 접힐 것 같지 않다.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SF물 = 큰 화면’이라는 공식을 깨고 <승리호>가 넷플릭스 단독 공개, <서복>이 영화관과 티빙 동시 공개를 택했으니까. 올해는 이 모든 선례가 더욱 다채로운 계약 옵션 안에서 논의될 것이다. 과연 어떤 작품이 영화관에서 살아남고 어떤 작품이 OTT에서 웃게 될까. 영화계 배급 체질이 완전히 바뀌게 될 길목에 서 있는, 2022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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