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태어난 송건호 선생은 대한통신 외신부 기자를 시작으로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을 거쳐 1974년 유신체제 하에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정권을 비판하는 대학생들의 시위 보도로 중앙정보부는 그를 연행했고, 이에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정권의 광고탄압이 이어졌고 이듬해인 1975년 기자 134명이 해직됐다. 송건호 선생은 1980년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주도했고 계엄령 위반으로 체포됐다.

지난 16일 열린 청암 송건호 선생 20주기 세미나(청암언론문화재단·민주언론시민연합·한겨레 주최)에서 나온 메시지는 여전히 울림이 컸다. 특히 언론의 독립성을 강조한 생전 송건호 선생의 현실 인식은 2021년 현직 기자들이 한 번쯤 되돌아볼 지점이다.

송건호 선생은 1979년 ‘언론의 독립과 자유’라는 글에서 “언론기업이 권력에 예속되어 기업의 독립성을 상실하게 되면 그들은 권력과의 결탁으로 이윤을 올리려고만 생각하고 언론자유 같은 것은 전혀 원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한국언론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글에선 “탈사상적인 한낱 기능인으로 자기를 인식하게 될 때 기자들은 주어진 현실이 바람직한 상황이든 아니든 현실에 아무런 고민이나 갈등을 느끼지 않고 쉽사리 적응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 청암(靑巖) 송건호 선생. 사진=청암언론문화재단
▲ 청암(靑巖) 송건호 선생. 사진=청암언론문화재단

두 대목은 2021년 정파적인 보도를 하거나 광고주 눈치를 보거나 기능인으로 전락한 언론인을 꾸짖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데스크는 포털에서 클릭 장사를 유도하고, 기자들은 막장드라마 수준의 기사를 올린다. 그러면서 좋은 보도를 봐 달라고 하고, 역으로 독자들을 훈계하기도 한다.

세미나 현장에서 현직 기자들의 문제의식은 송건호 선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권태호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은 “아무리 언론 독립을 주장해도 실체가 있는 건 최순실 보도”였다며 사실 확인이라는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불신은 언론 혐오로 진행됐고, 시민과 언론의 갈등과 긴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보수언론뿐 아니라 진보언론에까지 전방위에 걸쳐 형성돼 있다. 오늘날 후배 기자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언론과 시민사회의 진영 속에서 ‘기레기’라는 비난 속에 실존적 고민과 갈등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박상규 셜록 대표기자는 “어느 때보다 뉴미디어 담론은 활발하지만 공허한 느낌을 받는다. 기자들을 만나면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같은 얘기는 전혀 없다. 언론 보도의 수단과 방식에 대한 얘기뿐”이라며 “사실의 조각을 모아 진실의 큰 그림을 보여준, 새삼스럽지 않은 그 당연한 일을 한 언론과 언론인을 독자는 외면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공영방송 독립성을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다”며 언론의 정치화가 오히려 심화했다고 지적했다.

송종호 서울경제 기자는 “똑똑한 기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언론사를 떠나려고 한다.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게 아니다. 기자라는 직업에, 언론사에 희망이 사라져서”라며 “버티면 회사의 인정을 받지만, 기자로부터는 점점 멀어지는 구조, 기자들은 떠나고 남은 회사원들은 언론이 아닌 회사를 위해 더욱 분투하는 구조. 이는 한국언론의 자화상”이라고 꼬집었다.

‘기레기’라는 비아냥이 팽배한 언론 불신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기자 개인 책임만 강조하는 건 무책임한 현실 진단일 뿐이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답이지만 그 길은 쉽지 않다.

그래서 제안한다. 2022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언론이 저널리즘 가치와 윤리의식을 높일 수 있는 실천방안을 한가지라도 내놓고 ‘가치 경쟁’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해 매년 반복되는 매체 대표들의 디지털 혁신 같은 얘기는 잠시 미뤄놓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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