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리호’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넷플릭스가 5일, 전 세계 동시 공개한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의 약진이 뚜렷하다. 공개 2일 만에 해외 28개국 1위, 8개국 이상에서 TOP 10순위에 들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미권과 덴마크, 핀란드, 이집트 등에서도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선 ‘승리호’는 한국에서 드문 SF 우주 영화로 주목을 받았다. 우주를 배경으로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SF는 처음이라는 평가다. 뛰어난 CG도 호평이다. 

이러한 ‘새로운 장르’는 넷플릭스 흥행 공식 중 하나다. 지난 9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김덕진 인사이트 연구소 부소장은 넷플릭스 흥행 공식에 대해 ‘새로운 장르’를 꼽았다. 이미 넷플릭스에서 흥행에 성공한 한국 콘텐츠 ‘킹덤’이나 ‘스위트 홈’은 ‘한국 좀비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승리호’는 ‘한국 우주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는 넷플릭스가 시청자에게 영화나 시리즈물을 공개할 때 아주 세분된 카테고리로 콘텐츠를 나누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넷플릭스 '승리호' 스틸 사진.
▲넷플릭스 '승리호' 스틸 사진.

‘한국 우주물’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우주 배경과 함께 한국 특유의 ‘1000만 영화 공식’이다. 눈물을 짜내는 신파극스러운 전개와 가족 중심, 교훈 중심의 이야기 말이다. ‘승리호’는 호평만큼 혹평도 많은데 혹평의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이 ‘너무 신파스럽다’, ‘억지로 눈물을 쥐어 짜낸다’는 평이다. 

극 중에서 배우 송중기가 연기하는 승리호 조종사 김태호는 전직 UTS(우주 시민) 기동대 에이스 출신이다. 불법 이민자를 검거하는 작전을 나갔다가 한 아기를 보게 된다. 이 아이를 죽일 수 없어 키우게 되면서 작전을 완벽히 실행하지 못하게 된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니지만 아기를 정성껏 키운 김태호는 작전을 수행하지 못한 죄로 직업을 잃고 우주 청소부가 된다. 아이는 김태호가 도박에 빠져 부주의한 사이 죽게 된다. 김태호는 우주에서 아이의 시신을 찾기 위해 돈에 집착한다. 이런 과정에서 시청자의 눈물을 짜내는 듯한 부분 때문에 혹평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신파 가족극’은 전형적이진 않다. 신파 가족극을 전형적이지 않게 만드는 요소는 극 중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소수자성이다. 우선 승리호 안에서 모인 가족은 전형적인 가족이 아닌 대안 가족이다. 김태호와 같이 화성 프로젝트에서 요직으로 일했지만 화성 프로젝트의 부정의한 부분을 깨닫고 혁명군이 된 장선장(배우 김태리). 그러나 그의 혁명은 실패하고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장이 된다. 이 여성이 이끄는 승리호 속 가족은 장선장과 돈에 미친 김태호, 지구에서 수배범 신세인 타이거 박(배우 진선규), 트랜스젠더 서사를 보여주는 업동이(배우 유해진)다. 새롭게 추가된 가족 구성원으로 ‘인간 폭탄’으로 오해받는 꽃님이(아역 배우 박예린)까지. 

여성 가장을 내세운 대안 가족의 구성원이 트랜스 젠더, 수배범, 아이를 잃은 아버지, 세상의 편견을 받는 아이라는 점은 이 영화가 소수자를 최대한 끌어안으려 한 것으로 읽힌다. 

▲영화 '승리호' 스틸.
▲영화 '승리호' 스틸.

사실 최근 흥행하는 넷플릭스의 콘텐츠는 꼭 이런 소수자성이나 다양성을 드러낸다. 최근 메가 히트한 넷플릭스의 연애 드라마 ‘브리저튼’ 시리즈도, 역사에서 아주 짧게 언급되거나 확실치 않은 부분인 ‘흑인 여왕’이라는 캐릭터를 활용한다. 이에 더해 흑인 공작을 주인공으로 둔다. 이제 어쩌면 소수자성이나 다양성은 ‘세련된 콘텐츠’의 한 요소이다.  

물론 이렇게 다양성이나 소수자성을 세련된 흥행요소로 활용하는 것에는 긍정 평가와 함께 부정 평가도 있다.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1975년 작)에서는 온 가족을 잃은 여성 주인공이 자신의 동지라고 생각했던 한 친구가 부잣집 대학생이었던 것을 알게 되자 이렇게 말한다. “부자들이 가난을 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에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고. 이러한 관점에서 다양성이나 소수자성을 흥행 요소로 쓰는 것은 소수자성을 도둑질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승리호의 경우 다양성과 소수자성을 그저 ‘활용’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호평을 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우주 쓰레기를 치우는 우주 청소노동자, 부자들과 잘난 사람들은 하늘 위 쾌적한 낙원에 살고 가난하고 못난 자들은 황폐한 지구에 남은 설정, 또한 이렇게 불평등한 우주 프로젝트를 강행하는 이들을 없애려는 혁명군들. 그들이 만든 대안 가족까지. 전형적 신파가 아닌 새로운 대안 가족 이야기와 만난 우주 SF라는 장르의 성공적 만남이 ‘승리호’를 승리하게 만든 건 아닐까. 

[기사 수정 : 2월13일 오전 9시58분]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