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엔 ‘정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20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SF영화 ‘정이’(연상호 감독)에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공개 이후 정이는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1위를 차지했고, 공개 일주일이 흐른 후에도 2위에 머무는 등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영화 평점이 낮고 연기와 설정 등에 대한 혹평도 이어지고 있다. 

우선 정이의 플릭스페트롤(넷플릭스 콘텐츠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 순위를 살펴보면, 공개 되자마자 세계 1위를 차지했고 공개 뒤 사흘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5일에는 넷플릭스 영화 ‘나르비크’가 1위를 차지해 정이는 2위로 내려왔지만, 26일에도 세계 2위를 기록하는 등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1월 넷째 주 기준으로 살펴보면 정이가 1위를 차지했다. 공개 사흘 만에 193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영화 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했고 한국을 포함해 미국, 독일, 스페인, 대만, 싱가포르 등 총 80개 국가의 TOP 10 리스트에 올랐다.

▲1월 4째주 넷플릭스 영화 순위에서 '정이'가 1위를 차지한 모습. 사진출처=플릭스페트롤. 
▲1월 4째주 넷플릭스 영화 순위에서 '정이'가 1위를 차지한 모습. 사진출처=플릭스페트롤. 

반면,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IMDB) 평점은 낮은 편이다. 정이는 5.5점을 차지했다. 이 점수는 순위권에 있는 다른 영화 나르비크 6.7점, ‘글래스 어니언: 나이브스 아웃’ 8점, ‘미션 마지누’ 7.9점, ‘페일 블루 아이’ 6.7점 등과 비교하면 낮은 점수다.

연기나 설정에 대해서도 혹평이 대다수다. 강수연 배우의 유작임에도 연기가 “1980년대 같다”는 평이 나오고 주연급인 류경수 배우 연기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 영화의 전반적 설정 역시 기존의 잘 알려진 SF영화 ‘공각기동대’나 ‘아이로봇’, ‘로보캅’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이 대다수다.

‘정이’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 이야기다. 이런 설정이 ‘어딘가에서 본 듯한’ 설정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모성애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전개가 ‘한국형 신파’라는 비판도 많다.

▲영화 '정이'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정이'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정이’가 ‘한국형 신파’ 때문에 먹혔다고?

왜 이런 괴리가 생기는 걸까. 그 이유를 살펴보면 △넷플릭스 콘텐츠 특성에 맞는, 쉽고 빠른 전개 △한국형 SF영화라는 신선한 장르 △여성 서사 △한국형 신파 혹은 감정이 고조되는 연출에 대한 글로벌적 긍정 평가를 들 수 있다.

우선 정이의 러닝타임은 98분으로 매우 짧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지구는 폐허가 되고, 우주에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이주한 이들의 내전’ 등과 같은 앞선 전개는 과감하게 생략해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는 연출을 선택했다. 이것이 ‘머리를 식히는 콘텐츠’를 찾는 넷플릭스 시청자들 특성과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존 SF 팬들이나 영화 매니아들 사이에 혹평이 나와도 높은 인기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정이에 혹평을 내리는 이들을 보면, 기존 SF를 좋아하는 팬들이나 영화 평론가들이 많은 것 같다. 흔치 않은 한국 SF영화로 좀더 나은 장르물을 기대한 분들은 함량 미달이라고 여기는 것”이라며 “다만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를 살펴보면, 영화도 아니고 통속 드라마도 아닌, ‘씨네라마’(씨네마+드라마) 정도라고 부를 수 있는 콘텐츠 포맷인데 이런 포맷에선 정보 과잉이어선 안 된다. 정보가 오히려 너무 많으면 시청자들이 빠져나간다. 쉽게 볼 수 있어야 몰입하여 빠르게 시청한다”고 말했다.

▲영화 '정이'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정이'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김 평론가는 “최근 인기 끄는 콘텐츠들을 분석해보면 여성 서사가 강화되고 있는데, 정이는 김현주와 강수연의 모녀 관계를 중심으로 극이 펼쳐진다. 특히 전쟁 영웅이 여성이라는 설정과 그 딸이 어머니를 영원한 영웅으로 남기려는 설정은 흔치 않다”며 “누군가는 정이가 모성애를 중심으로 한 신파라고 해석하지만, 딸의 관점에서 어머니를 해방시키려는, 신선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무조건 신파라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정이에서 가장 신파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을 꼽으라면 전쟁 영웅 정이가 AI로 만들어지면서도 계속 전투에 패배하는 이유가 밝혀지는 장면일 것이다. 아픈 딸이 수술하는 날 전투에 나가는 정이, 그런 정이에게 딸은 작은 인형을 하나 건넨다. 그 인형을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정이가 그 인형을 다시 찾는 순간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이다. 패배 원인을 발견한 딸(강수연)이 연구소에서 오열하는 장면은 혹평하는 시청자들도 눈물을 흘릴 만하다. 

김헌식 평론가는 “신파적 장면도 있지만 딸과 어머니의 관계, 딸이 어머니를 해방시키려는 전투 장면 등은 가족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며 “얼핏 보면 설정이 신선하지 않다고 보이지만 이런 전복은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고 전했다.

▲영화 '정이'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정이'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글로벌 관점에서 ‘신파’ 개념 다시 살펴봐야”

한국에서 ‘신파’는 식상하다고 평가 받지만, 최근 K-콘텐츠를 선호하는 글로벌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해 보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를 잘 그려내는 K-콘텐츠의 강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평론가는 “‘더 글로리’도 굉장히 한국적인 이야기와 소재를 다룬 드라마였지만 글로벌적으로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한 설정과 감정이어도 글로벌 시청자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며 “글로벌 OTT 시대에 감정을 잘 끌어내는 한국형 콘텐츠는 우리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국내에서 신파라고 하면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많다. 눈물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들이 노골적이거나 의도적이면 ‘식상하다’는 평을 하고 ‘신파’라면서 평가절하된다”며 “그러나 외국 시청자들은 이런 코드를 새롭게 받아들인다. 그 편차 때문에 상반된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정 평론가는 “한국 콘텐츠가 어필하고 있는 요소 중 하나는 감정적 ‘펀치’라고 생각한다”며 “장르가 달라져도 그 안에서 감정적 서사를 잘 쌓아나가는 것이 K-콘텐츠 강점이다. 이런 면을 신파라고 깎아내리는 것은 강점을 지우는 일이다. 신파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해볼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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