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이 ‘한국의 전문기자들’ 기획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저널리즘의 가치가 추락하고 선정적인 이슈 경쟁과 가십성 낚시 기사가 범람하는 시대, 격동의 취재 현장에서 전문 영역을 개척하면서 뉴스의 사각지대와 이면을 파고들고 저널리즘의 본질을 추구하는 ‘진짜 기자’들을 찾아 나서는 기획입니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사람 세 명 중 한 명은 일을 한다.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는 하지만 아직도 ‘약자’다. 노동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관심한 만큼 또 적대적이다. 한국의 주요 일간지 가운데 노동 전문 기자가 드문 것도 이런 현실이 반영된 건지도 모른다.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 전문 기자도 처음부터 노동을 담당한 건 아니었다. 1992년 경향신문에 입사한 강 기자는 사회부에 5년, 정치부에 5년, 경제부에 5년, 정·경·사를 두루 거친 기자였다. 

노동과의 ‘인연’은 뒤늦게 찾아왔다. ‘노동과 세계’에서 한국 언론의 노동 보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다룬 좌담회 기사가 머리를 탁 쳤다. 강 기자는 “대한민국 노동자가 1700만인데 여행, 건강, 머니 섹션은 있어도 한겨레나 경향 등 진보언론을 포함해 노동 섹션이 하나도 없다는 건 대한민국 언론이 노동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내용이었다”면서 “내가 그 빈 구석을 채워주는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경향이 언론 최초로 노동 섹션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뒤늦게 ‘노동판’에서 뛰어들자니 “전문성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1년 경향신문 노조위원장(전국언론노동조합 경향신문지부)을 하면서 노무사 자격증도 땄다. 기자 최초로 노무사 자격증을 따게 된 계기다.  

20년 연차에 노동 전문 기자로 전환

그렇게 2013년부터 노동 전문기자가 된 강 기자는 ‘몸’보다는 ‘마음’이 힘들었다. 강 기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했다. “개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과정에 대해 감정적으로 거리 두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굉장히 심한 감정 노동이다.”

노무사이기도 하니 법률상담을 해주는 때도 적지 않다. 강 기자는 “상황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연락이 올 때는 기사 쓰는 건 둘째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알려준다”면서 “사실 기사화되는 순간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사 쓰는 건 정말 마지막 순간이다. 노무사로서 직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는데 안 돼서 기사로 넘어오면 고통스럽다”고 했다.

파괴되는 노동자의 삶에서 고통도 얻지만, 감동을 느낄 때도 있다. JTBC로부터 2번 해고된 한 여성 노동자로부터 그런 감정을 느꼈다. 강 기자는 “10년 동안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해고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체념하고 감정이 무뎌졌을 법도 한데 이 노동자는 의연히 잘 싸우고 있다. 방송사의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 프리랜서인데, 이 해고 노동자는 혼자서 전체 프리랜서를 대신해 싸우는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부당한 자본에 의해 밀리고 체이고 볼품없이 망가진 존엄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같은 인간으로 가슴이 훈훈해진다”고 했다. 

   
▲ JTBC 프리랜서의 부당해고를 다룬 기사. 경향신문 9월1일자 8면 기사 
 

강 기자는 노동자가 당한 부당한 상황이나 기업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기사를 쓰다 보니 기업으로부터 심리적 압박을 느낄 때도 있다. 지난해 <500대 기업의 고용과 노동>란 기사를 썼을 때였다. 이 기사는 “국내 500대 기업의 고용·배당 동향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고용이 준 135개 기업 중 절반이 넘는 73개 기업은 주주 배당을 하면서 직원 수를 줄인 것으로 파악됐다”란 내용이었다. 배당을 한 기업 중 고용 감소 규모가 가장 큰 기업은 삼성전자였다. 

강 기자는 “기사가 나간 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반박자료를 만들어서 던져줬다. 삼성경제연구소란 상징이 주는 무게감을 노렸을 것이다. 처음엔 ‘내가 기사를 잘못 쓴 게 아닌가’란 심리적 압박도 느꼈지만 보는 순간 웃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기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이 기사는 45회 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파괴당하는 노동자 삶 고통스럽지만…

인터뷰 내내 노동에 대한 강 기자의 철학은 확고했다. 강 기자는 ‘노사관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하다’란 기자의 질문부터 바로잡았다. “노동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고 인간의 삶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노사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란 질문은 주객이 전도됐다. ‘경제가 노동자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는 질문으로 바꾸어야 한다.” 경제가 아닌 ‘노동’에 방점이 찍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생각하는 노사관계 해법 역시 비슷한 맥락 선상에 있다. 강 기자는 “임금이나, 복리후생, 분배적 정의를 뛰어넘어 실존의 문제,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인가’ 란 문제에서 노사관계가 출발해야 한다. 노동자를 경제성장의 도구가 아닌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바라봤을 때 기업과 경제의 경쟁력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 전문 기자(사진제공=강진구 기자)
 

노동으로 수단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노동운동의 침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노동운동 밖과 안 모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노동을 국가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판단하고, 노동자 스스로도 노동 자체를 의미 있고 사회의 공공성에 기여하는 착한 노동으로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생계수단을 확보하는 차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노동을 수단으로 여긴다는 점에서는 자본이나 노동가나 마찬가지다. 자본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먼저 바꿔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의료민영화 저지, 참교육, 공정보도도 중요한 근로 조건에 속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대의를 노동해방이라고 하지만 임금과 복지투쟁, 고용안정성 등 1차적 생존확보에 머물러 있다. 단순히 임금을 많이 받고, 고용안정성이 보장되면 좋은 노동인가. 노동 자체를 좋은 삶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동운동의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돈 잘 벌고, 정년 보장되면 좋은 노동인가

강 기자는 동시에 노동운동을 왜곡하는 ‘귀족노조’ 프레임도 비판했다. 그는 “노동시장이 양극화되면서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로부터 배제되고, 고용안정성이 보장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노조라는 이중적 보호장치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이 프레임은 ‘귀족노조 때문에 비정규직이 고통 받는다’는 식의 접근법이므로 노동자들을 이간질시키는 프로파간다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자와 노조에 대한 보수언론의 적대감은 많이 알려져 있다. 최근 매일경제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자살 특공대를 꾸려 회사와 싸웠다는 왜곡보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보언론의 노동 보도도 문제점이 없지 않다. 

강 기자는 “처음엔 진보언론에 ‘노동섹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차원을 넘어 매일 노동현장에서 일이 터지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사회 1,2,3면 중 매일 1면을 노동 면으로 특화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지면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있는 그대로 비춰야 한다. 진보언론은 자신들의 지면에 노동 기사가 과잉됐다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일종의 자기검열”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종합일간지 가운데 노동 면이 있는 신문은 어디에도 없다. 

강 기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경향신문 내 노동문제도 지적했다. 강 기자는 “청소나 경비 관련 인력은 당연히 간접고용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인식이 기업 문화로 자리 잡았다. 우리 회사 역시 이런 문화에 이미 젖어 큰 문제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①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② 안윤석 CBS 통일전문기자 
 ③ 최현수 국민일보 군사전문기자
 ④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⑤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⑥ 권혜진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 소장
 ⑦ 심재억 서울신문 기자 
 ⑧ 남문희 시사인 남북관계전문기자
 ⑨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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