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놀러 다니니 부럽다”

‘여행기자’ ‘관광기자’가 흔히 듣는 평가다. 언론사 내부에서도 ‘꿀보직’이라 불린다. 15년 차 관광전문기자, 박강섭 국민일보 기자는 이 말에 “다른 기자들이 부러워할 때도 있는데 가끔 목발짚고 나타나면 그런 소리 싹 사라진다”며 웃었다. 

미디어오늘이 ‘한국의 전문기자’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지난 5일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를 만나 관광기자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에 대해 물었다. 박강섭 기자는 90년 국민일보에 입사했고 편집부, 인터넷 팀을 거쳐 2001년부터 관광기자를 맡았다. 관광기자 7년 차부터 ‘관광전문기자’라는 직함을 달았다.

- 일주일 스케줄이 궁금하다
매주 출장을 간다. 그간 차를 세 대 썼는데, 10년 가까이 탔던 두 번째 차는 44만 킬로를 뛰고 폐차됐다. 지구 열 두 바퀴를 돈 셈이다. 목요일에 출장을 떠나고, 수도권 근처처럼 가까운 곳은 1박 2일, 지방은 2박 3일 다녀온다. 기사 마감은 화요일인데, 자료조사도 해야 하고 출입처에서 나오는 기사도 써야하니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도 출근한다. 수요일은 어디를 취재할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 주로 국내를 자주 다니나
해외는 자주 안 간다. 많아야 1년에 한두 번? 관광이 지역민들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국내를 지키고 있다. 해외는 갈 일 있어도 후배들 보낸다. 

   
▲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사진=본인제공
 

- 출입처는 따로 없나
출입처가 많다. 문광부나 관광공사가 공식적인 출입처라 볼 수 있고 취재를 위해서 각 지자체 관광과, 국립공원, 리조트, 여행사 등 출입처가 전국각지에 있다. (웃음) 다른 기자들과 같은 의미의 출입처라 보기는 어렵고 내 출입처는 산과 바다, 자연이다.

-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했나. 어쩌다 관광전문기자를 하게 됐나
전임 관광기자가 그만두면서 우연히 발령이 나서 하게 됐다. 기자가 시간이 부족한 직업이지 않나. 이전에는 여행을 거의 다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매주 여행을 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웃음)

- 왜 이렇게 오래했나. 다른 출입처는 보통 2-3년이면 바뀌는데.
2-3년이면 많아야 가을을 네 번 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돌아다니기에는 부족하다. 잘 알지도 못하는데 바뀌는 셈이지. 누가 ‘겨울에 어디가면 좋아요?’라고 묻는데 상세히 대답하려면 10년은 돌아다녀야 한다.

- 관광기자는 여행기자와 다른가
관광은 산업적 측면이 강하다. 여행은 물론 숙박, 음식, 항공, 해운까지 분야가 다양하다.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한다. 주로 칼럼을 통해 이런 시각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관광전문기자에게는 ‘한량’ 혹은 ‘회사 돈으로 놀러 다닌다’는 부정적 딱지가 붙을 때가 많다. 박강섭 기자는 “밖에 나가면 사무실에 있는 것보다 좋다”면서도 “여행이 아니라 취재라서 편한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여행 다니면서 겪은 아찔한 에피소드들도 털어놨다.

- 말이 ‘관광전문기자’지 회사 돈으로 놀러 다닌다는 부정적 인식도 있다. 
그냥 놀러 다니는 게 아니라 일이고, 직업이다. 편하지 않다. 일단 챙겨야할 장비가 많다. 카메라 풀세트에, 산에 갈 때는 스틱에 아이젠, 먹고 마실 것들에 상비약 등. 그걸 다 넣으면 군장 못지않다. 그러다보니 먹고 마실 것들은 덜 집어넣는데 그래서 춥고 배고프다. (웃음) 주말에 산에 가면 사람이 많지만 나는 목요일에 가니까 산에 사람이 없다. 부상이라도 당하면 힘들어진다. 취재도 쉽지 않다. 바위나 강을 인터뷰할 수 없으니까.  

-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
자주 있다. 2년 전 말벌한테 심하게 쏘였다가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의사가 손을 잘라야 할 뻔했다고 하더라. 차 사고도 많다. 차가 절벽 쪽으로 미끄러져서 차 문을 열고 나온 적도 있었다. 

- 조난사고는 없었나
강원도 정선에 상정바위산이 있다. 산 위에서 보면 한반도처럼 생긴 지형이 보이는데 안개가 껴서 잘 안 보였다. 안개가 그치면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남아 있다 안개가 걷히지 않은 채 저녁이 됐다. 어두워지니까 얼른 내려갔는데 등산로가 있는 산이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갔다. 11월 말인데 야간 산행을 생각한 게 아니라 장비도 없었고 핸드폰 배터리만 있었는데 핸드폰도 안 터지더라. 10시 쯤 어느 계곡으로 내려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핸드폰이 터져서 구조요청을 했고 산악인들이 찾아왔다. 조난당한 적이 여러 번 있다.

   
▲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사진=본인제공
 

- 가족들이 걱정하겠다.

이야기를 하면 걱정하니 표시 안 나는 건 잘 말을 안 한다. 수술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조난당한 경우는, 어쨌든 살아 왔으니 이야기 안 한다. 

- 동유럽 갔다가 털린 적도 있다고 들었다. 
최근 일인데,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는 야간열차였는데 자고 일어나니 카메라 지갑 모조리 도난당했다. 2천만 원 상당의 카메라와 현금 백만원, 카드도. 천만다행으로 노트북은 안 털렸다. 15년 치 자료가 들어있었는데 큰일 날 뻔했다. 돈은 3유로 6원 남았더라. 물론 호텔 예약은 다 해서 다니는 데 불편함은 크지 않았다. 

취재할 맛도 안 나고 다시 돌아오고 싶더라. 근데 그럴 수는 없어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로 했다. 페이스북에 곤란한 상황을 알리고 ‘3유로 60원으로 여행하기’ 뭐 이런 시리즈로 글을 올렸다. 그래서 페이스북 친구가 많이 늘어났다.(웃음) 

- 꿀보직으로 여기는 이유는 ‘홍보성’ 기사가 많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업 제품을 홍보하는 것과 지자체 축제 홍보 등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니까 홍보성 기사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지자체 축제는 어렵다. 주민들 먹고사는 문제가 달렸다. 객관적으로 떨어진다 해도 여기 가면 숨겨진 매력이 있다는 식으로 덧붙여서 기사를 쓴다. 단순한 홍보라는 생각은 안 한다. 요즘 중국관광객이 많이 온다지만 거의 쇼핑에 돈을 쓴다. 제조업이나 대형 유통업만 돈을 벌지 지역으로 돈이 안 간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래서 지방 축제를 소개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또 협찬 안 받고 회사 출장비로 간다. 관광기자 처음 할 때는 지자체에서 오라면 잘 모르니까 쪼르르 쫓아갔는데 이제는 지자체에서 좋다고 오라고 해도 ‘거짓말 하지 마, 좋을 리가 없어’라며 안 간다. 

‘좋은 여행기사’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독자들은 눈으로 보지 못하는데 글만으로 좋은 여행지를 소개할 수 있을까. 여행기사는 어떻게 취재해야할까.

- 취재할 장소는 어떻게 물색하나
어떤 지역에서 ‘A’에 대해 취재해 기사를 쓴다고 하면, 거기 가서 A 말고 B, C, D까지 보고 온다. 가을에는 B에 대해, 겨울에는 C에 대해 써야겠다는 식으로. 돌아올 때도 고속도로 타고 슝 오는 게 아니라 빙글빙글 돌면서 온다. 지자체와의 정보교류도 중요하다. 

- 좋은 여행 기사란 무엇일까
처음 이 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열식 기사가 많았다. 어디 가면 뭐가 있고 몇 시간 걸린다 등등. 이런 기사는 아무것도 아니다. 인터넷에 다 나올뿐더러 십 년 뒤에 검색하면 길이 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내가 쓴 기사를 보고 다음주에 그 장소에 갈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1%만 가도 엄청나게 많이 가는 거다. 중요한 건 나머지 99%로 하여금 언젠가 그 장소에 가고 싶은 로망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라는 말은 아니지만, ‘스토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그 장소의 역사와 문화, 동식물, 문학작품 등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

사진도 직접 찍으신다고 들었다.
- 그렇다. 어려운 점 중에 하나다. 관광기자의 사진에는 좋은 풍경은 물론 이야기 거리가 담겨 있어야한다. 

관광전문기자가 보는 한국의 관광정책은 어떨까. 한국은 항상 외국인 관광객 유치 ‘2000 만명’ 등의 수치적 목표를 앞세운다. 박강섭 기자는 이런 하드웨어적인 목표에서 벗어나 관광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To your imagination’이라는 이벤트를 해서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외국인들에게 가고 싶은 곳을 써내라고 한 다음 보내주는 행사였는데 깜짝 놀랐다. 관광기자를 15년이나 한 나도 모르는 장소들이 수두룩하더라. 인터넷을 통해 한국을 구석구석 뒤져 찾아내더라. 우리 눈이 아니라 그들 눈에 보이는 관광자원이 있다. 어떤 이들은 마트 가서 물건 사고, 포장마차 가서 소주 먹고 싶다고 하더라. ‘이게 무슨 관광이야’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도 관광이다”

   
▲ 한국관광공사의 'To your imagination' 홍보 이미지
 

“국토가 넓고 유적지가 많다고 관광객들이 찾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거다. 우리도 해외가면 뒷골목 야시장 찾아다니지 않나. 파리 뒷골목가서 맥주집 마시고 참 맛있다고 하지 않나. 사실 한국이 더 맛있는데. 일부러 가공해서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게 관광이다. 일상 밖은 다 관광이다”

“영월군 지역민들 대상으로 ‘우리 동네의 볼거리’에 대해 설문조사했다. 지역민들이 ‘볼 게 없다’고 답했다. 내 경험으로는 내륙에서 가장 볼 게 많은 지역이 영월이거든. 주변에 널려 있으면 가치를 알 수 없다. 가치 있게 보는 사람에겐 모든 것이 다 관광자원이다. 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무궁무진한 것이 보인다. 이런 관광을 해야 대기업이나 유통업체가 아니라 지역민들에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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