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이 ‘한국의 전문기자들’ 기획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저널리즘의 가치가 추락하고 선정적인 이슈 경쟁과 가십성 낚시 기사가 범람하는 시대, 격동의 취재 현장에서 전문 영역을 개척하면서 뉴스의 사각지대와 이면을 파고들고 저널리즘의 본질을 추구하는 ‘진짜 기자’들을 찾아 나서는 기획입니다. <편집자 주>

북한 관련 보도는 차고 넘치지만 정확한 건 많지 않다. 그래서 어떤 분야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전문기자’가 필요하다. 시사IN의 남문희 대기자(한반도 전문기자)는 북한 관련한 몇 안 되는 전문기자로 꼽힌다. 미디어오늘이 ‘한국의 전문기자’ 인터뷰를 위해 지난 10일 시사IN 사무실 인근에서 남문희 기자를 만났다. 

그는 대학을 다니던 80년대부터 한반도와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 기자는 “3학년 때인 1983년 구 소련 공군에 의한 KAL 기 격추사건과 일본의 교과서 왜곡으로 대학가가 술렁였다. 당시 상황에서는 민주화, 군부독재 타도가 학생운동의 주 관심사였는데 두 사건을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실감했다”며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정세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 남문희 시사IN 대기자. 사진=본인 제공

 

 

남문희 기자는 대학졸업 후 프리랜서 기자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89년 시사저널 경력기자로 입사해 국제부에서 활동했다. 그가 한반도와 북한에 대한 기사를 쓰기 시작한 시점은 남북고위급 회담이 시작되던 1990년부터다. 남문희 기자의 제안으로 시사저널에 ‘한반도’ 지면이 생겼다. 기획특집부, 사회부를 거치다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94년에 한반도 담당기자로 복귀했다.  시사저널 사태 이후 시사IN으로 옮겨온 그는 한반도 전문기자, 편집국장을 거쳐 대기자로 활동 중이다.

북한 관련된 보도에는 부정확한 정보가 많다. 김정은의 잠행을 둘러싼 루머와 장성택 숙청을 둘러싼 ‘설’이 대표 사례다. 남문희 기자는 북한 관련 오보의 배경에 ‘북한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있다고 꼬집었다.

- 북한 관련 오보가 많은 이유가 뭘까. 
“북한을 일단은 부정적으로 보려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인 집단이고 뭐든 이상하다고 보니까 그런 오보가 난다. 이데올로기적인 편견이다. 전후 맥락을 잘 몰라서 오보를 하는 경우도 있다.”

- 장성택 숙청을 둘러싼 보도도 같은 이유 때문일까.
“장성택이 북한의 2인자라는 고정관념이 잘못된 판단을 낳았다. 장성택은 2008년 8월 김정일이 쓰러지고 난 뒤 김정남과 손잡았고, 김정일이 다시 일어나자 권력 중추에서 밀려났다. 돈줄을 차단당했다. 장성택은 김정은-김경희-김옥-김설송과 대척 관계에 있었다. 장성택은 김정은 집권 이후 늘 감시당했다. 그러다 순식간에 처형 당한 사람이 무슨 2인자인가.”

- 장성택 숙청을 두고 벌어진 호들갑에는 희망사항이 담겨 있을까.
“북한 붕괴가 멀지 않았다는 희망사항이 아니었을까. 북한 내부에서 권력다툼이 벌어졌다는 것, 또 장성택도 없는 나이 서른의 김정은이 지도자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는 것. 하지만 장성택이 입지가 탄탄한 사람이 아니었고, 경쟁세력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김정은 체제는 오히려 안정됐다고 보는 게 맞다.”

- 김정은 건강과 관련해 많은 루머가 떠돌았는데 이런 루머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트리는 것일까.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 루머가 양산됐는데 의도가 있어 보였다. 주가 조작을 위한 소재로 활용했다는 생각도 들고. 특히 중국 발 소스로 이런 정보가 많이 나왔는데, 지금 북중 관계가 상당히 안 좋다. 중국에서 의도적으로 북한을 비아냥거리기 위해 흘린 것일 수도 있다. 어느 나라든 지도자 건강은 극비인데 인터넷에 그런 정보가 떠돈다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 국정원이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정말 많나.
“국정원이 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국정원을 무시하면 안 된다. 다만, 정보는 접촉에서 나온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처럼 남북대화가 잦고 여러 채널에서 고위층을 만날 수 있다면 정보수집에 들어가는 비용이 절약된다. 채널이 살아있을 때와 죽었을 때 질적인 차이가 있다.”

- 요즘 종편에 탈북자들이 많이 나온다. 그들 말에 신빙성이 있을까. 
“종편을 본 적이 없다. 종편을 봐서 도움이 됐다면 봤겠지만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북한 사회가 못 살고 힘들고 가난하다는 정보가 대부분인데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는 정책 정보다. 저들이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유용하다.”

“탈북자들 중에도 북쪽에 채널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은 귀담아 들어볼만하다. 하지만 북한은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사회다. 살던 동네는 잘 알지만 어떻게 북한 전체를 알고 김정일이 어떤지 알겠나. 한 탈북자한테 들었는데, 한국에 왔더니 여기저기서 북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그 때부터 북한에 대해 공부했다고 한다. 팩트가 섞인 거짓정보가 더 위험한 법이다. 원래 정보를 왜곡할 때는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섞는다.”

남문희 기자의 기사에는 다른 기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색다른 관점과 정보가 있다. 김정은 시대 북한 권력의 실세로 장성택이나 김여정이 지목됐지만 그는 김정은의 이복누나 김설송을 실세로 꼽았다. 그는 또한 북일, 북미관계 대신 러시아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남문희 기자는 어떻게 취재하고, 또 어떻게 쓸까.

   

▲ 남문희 기자의 기사가 메인에 실린 시사IN 290호(왼쪽)와 295호.

 

 

- 북한 기사,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나. 
“단편적 사건이나 정보가 아니라 맥을 짚어야 한다. 기자는 길목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근대사를 알아야 한다. 열강들이 과거 어떻게 한반도에 진출했는지. 역사는 변해도 지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야 북한의 움직임도 보인다.”

- 러시아에 주목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
“북일관계가 끊어졌다가 복원되는 시점, 즉 북한이 일본에 접촉을 제의할 때 러시아를 끌어당겼다. 나진-핫산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일본과 막후접촉을 시도한다. 그러면 일본은 북한만 보지 않게 되고, 러시아를 보게 된다. ‘내가 끼어들지 않으면 북러관계가 깊어지고 러시아가 나진-청진-원산까지 먹어버리겠구나’라고. 그런 조건을 만들고 일본을 끌어당기면 일본은 당연히 대화에 응한다. 북러관계를 가지고 북일관계를 조종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북일관계를 가지고 북러관계를 조종하며 경쟁을 붙인다. 장성택 숙청 이후 사이가 소원해진 북중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지정학적 장점을 이용해 주변국들을 끌어당기고 경쟁시킨다. 이걸 볼 수 있어야 북한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주변국의 행보 대신 남북관계만 생각한다. 주변국들은 남북관계 별로 관심 없다, ‘your business’다.”

- 남문희 기자의 기사를 보며 취재원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사회는 80년대부터 북한과 교류 및 접촉을 이어왔다. 20-30년 되니까, 다양한 접촉망들이 있다. 지금은 많이 (접촉망이) 사라졌지만 오래 일을 하다보면 어디 가서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지 안다. 어마어마한 소스가 있는 건 아니다. 기자 본인이 맥락을 잡고 취재하는 것이 기본이고 취재원을 통한 정보는 플러스 알파다. 취재원 이야기를 들으면 막혔던 부분이 뚫어지는 정도랄까.”

- 전문가 풀도 가지고 있나. 
“전문가의 경우 북한만으로는 부족하고,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있는 툴을 구축하기 위해 미국, 일본, 러시아 등의 정치·경제 전문가 풀과 취재원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자 본인이 공부를 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행위자들의 행동패턴을 알아야 한반도 문제를 읽어낼 수 있다. 전문가 몇 사람 코멘트로 되는 게 아니다.”

   

▲ 지난 1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론’을 언급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YTN 방송 갈무리

 

 

박근혜 정부가 들어설 무렵 이명박 정부 때보다 남북관계가 잘 풀릴 것이라는 예측도 많았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통일은 대박’ 등의 구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성과는 미비하다. 남문희 기자는 박근혜 정부 초기 기사를 통해 대북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금의 평가는 어떨까.

- 박근혜 정부가 대북정책 잘하고 있다고 보나. 
“굉장히 실망스럽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망친 정권이기에 이명박 정부 때랑 비교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보다 잘하리라고 봤다. 박 대통령은 2002년 직접 북한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다. 북한과의 인맥을 가지고 시작한 사람이다. 물론 북한의 책임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등장하기도 전에 핵실험을 해버렸다. 보수정권이 북핵에 대해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스스로 입지를 줄여버린 것이다.” 

-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원칙론’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몇 가지 정책을 내세우고, 틀에 현실을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 같다. 정책은 현실에 맞게 유연하게 변해야하는데, 현실을 재단하고 이를 정책에 맞추려 하니 하나도 진행이 안 된다. 규칙은 이거니까 북한 당신들이 들어오려면 들어오고 말라면 말라는 식이다.”

- 왜 이렇게 유연성이 없는 걸까
“지지기반 때문 아닐까. 삐라살포도 마찬가지다. 보수세력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브레인의 한계도 있다. 민주당 정권 10년을 거치며 북한전문가는 대부분 민주당 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다.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 쓸 사람이 없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의지의 문제라 본다.”

- ‘통일은 대박’ 구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에도 보수정권이 북한붕괴론에 근거한 통일대통령의 꿈에 젖었던 때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 김정일이 쓰러졌고 김영삼 정부 때 김일성이 사망했다. 북한에서 변고가 발생해서 신기루 같은 환상을 준다. 보수정권이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간만 탕진했는데, 박근혜 정부도 그럴 소지가 있다. 또 국내정치에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통일을 보수의 아젠다로 끌고 가고, 국민들에게 착시를 일으켜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것이다.”

- 삐라살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무엇을 노리고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 내부 이반을 유도하려는 것인지 그냥 북한 정권의 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것인지. 그 정도로 내부 이반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북 정권을 자극할 수는 있겠지만 자극해서 뭘 하겠다는 것인가. 헷갈린다.”

남문희 기자는 남북관계가 이렇게 꼬여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 빼고 다른 국가들은 주도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나아가 북한도 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이미 변하고 있다. 중국의 전문가들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최근 북한에서 ‘5.30 조치’라는 것이 시행 중인데, 이는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던 생산, 분배와 대외무역권을 기업체, 농장, 지방정부에 하방하는 것이다. 중국 개혁개방 초기의 조치와 유사하다. 2004년 5.30 조치와 비슷한 아이디어에 대해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당시 김정일 정권 내 브레인들이 대외무역권 하방을 포함하는 획기적인 개선조치를 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 내각총리였던 박봉주가 지금 다시 내각총리다. 북한 변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미 10년 전에 있었다. 김정일 시대에는 여건이 안 됐을 뿐이다.”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정책도 마찬가지다. 혹자들은 핵무장에만 초점을 두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국방비가 많이 들어가니 국방은 핵으로 지키고 재래식 무기에 투입되는 돈을 경제개발로 돌리자는 것이 병진정책이다. 5.30조치는 그 연장선에서 경제개발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처방전이라 볼 수 있다. 외부 정보를 아무리 차단해도 몇십 년 인민을 굶주리게 만들고 정권이 유지되겠나. 북한 수뇌부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가만히 있다. 러시아는 이미 움직였고 일본도 움직였다. 그럼 중국이 가만있겠나. 미국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중간선거에 진 민주당 정권이 단시간에 외교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 북한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주도권을 다 놓쳐버렸다. 이제 북한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려면 러시아를 찾아가야하고, 일본 아베를 찾아가야한다. 이런 치욕이 어디 있나.”

   

▲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주차장에서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대북전단 풍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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