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백수의 왕(百獸之王)이다. 힘과 전투력에서 일반 동물을 압도한다. 표정과 풍기는 겉모습도 다른 동물과 품격이 다르다.

호랑이와 우리 민족은 뗄 수 없는 문화적 DNA를 공유하고 있다. 호랑이는 단군신화에서 주연급으로 등장한다. 또 옛날 이야기의 단골 소재다. 학교와 군부대의 상징적 동물이기도 하며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였다. 소설속 임꺽정도 백두산에서 호랑이 잡는 용맹스런 여성을 부인으로 택했다. 호랑이가 들어간 속담과 표현도 부지기수다. 민화 등 시각 예술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백두산 호랑이는 우리 생활의 큰 부분으로 뿌리박고 있다.

이 백두산 호랑이의 고향이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지역 일대다. 하얼빈(哈爾賓) 쑹베이취(松北區)에는 세계최대의 호랑이 사육번식센터인 동북호림원(東北虎林園)이 있다. 중국은 호랑이를 1급 보호동물로 보호하고 있다.


필자는 2004년에 <미디어오늘>에 호림원에서 본 백두산 호랑이에 대한 느낌을 기고한 적이 있다. 필자는 수년의 세월이 흐른 2010년 5월 또다시 호림원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백두산 호랑이는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이번에는 중국 문헌 등을 토대로 새로운 사실을 추가했다.



백두산 호랑이는 ‘둥베이후’(東北虎)와 동일혈통…일제시대때 백두산 호랑이 초토화

우리는 한국 호랑이를 백두산 호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중국은 ‘동북지역 호랑이’ 라는 뜻으로 ‘둥베이후’ (東北虎)라고 부른다. 러시아 사람들은 시베리아 호랑이라고 한다. 세 나라가 호랑이 앞에 자신들의 지명을 갖다 붙였지만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

국내 언론은 서울대 수의대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2012년 2월 한국 호랑이와 시베리아(아무르) 호랑이가 유전적으로 완전히 같은 혈통임을 보도한 바 있다. 실제 백두산 호랑이는 20세기 초까지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를 무대로 광범위한 서식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서로 연결된 육로에서 백수의 왕답게 무소불위의 영역을 구축했던 것이다.

한반도는 일본 침략때 탄압 정책으로 한민족의 상징물인 호랑이가 총포에 무차별 포획되면서 멸종됐다. 1903년에 전남 진도에서 엽총에 맞아 드러누운 사진기록<2012년 2월에 공개>이 있을 정도로 호랑이는 우리 땅을 누볐었다. 그러나 백두산 호랑이는 1921년 한반도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춘 것으로 돼 있다.

동북호림원 번식에 성공해 현재 1천마리 돌파…매년 관광객 30여만명 수입 짭짤

동북호림원은 하얼빈의 강북에 위치하며 서울의 여의도격인 태양도(太陽島)에서 가깝다. 총 면적은 144만㎡이다. 이곳에는 ‘남녀노소’ 호랑이들이 1천여마리가 있다. 호림원은 사육과 번식, 과학연구, 야생훈련, 관광 등의 종합목적으로 설립된 기업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호랑이를 호랑이로 보호한다’라는 기치아래 1996년에 설립해 개방했다.
 

현재는 매년 30여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등 국내외 고위지도자 수천여명이 구경했을 정도로 인기다.

호랑이는 19세기 중엽까지 만주벌판을 호령…호림원 1996년 개장하면서 호랑이 급증

백두산 호랑이는 19세기 중엽까지만 하더라도 만주벌판을 호령했다. 한반도와 중국 동북, 화북과 몽고, 중러 변경지역과 러시아 서시베리아와 연해주 대부분의 지역이 활동무대였다. 그러나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까지 호랑이의 분포는 급감해 1950년대에는 지린성(吉林) 일대로 축소되었다. 조사결과 1970년대 다싱안링(大興安嶺)에서 호랑이가 근절됐다. 샤오싱안링(小興安嶺)에는 1950년대까지 호랑이가 여전히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1976년 4마리의 기록을 끝으로 1980년대에는 샤오싱안링에서도 완전히 사라졌다.

중국내 야생 동북호랑이는 1974~1976년 151마리, 1980년대에는 100여마리로 줄었다. 당시 세계적으로 호랑이 개체수는 400여마리였다.

중국은 동북호랑이 보호의 필요성을 느꼈다. 1986년에 허쯔(河子)고양이과동물사육번식센터를 설립했다. 그뒤 1995년 10월 동북호림원 공사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크기도 36만㎡의 규모로 확장했다. 호림원은 1996년 1월 23일 정식으로 개방됐다. 그 뒤 호랑이 수도 170마리로 늘어났다. 1999년에 여행객이 100만명을 돌파했다. 수입이 3000만위안(약 54억원)에 달하면서 호림원은 자리를 잡아갔다.

호림원의 호랑이수는 2009년말 900여마리로 늘어났다. 2011년 4월에는 1000마리를 처음으로 돌파했다.

현재 야생 동북호랑이는 350~450마리로 추정된다. 대부분은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 있으며 중국은 20마리 정도 서식중으로 보인다. 한반도는 최근 야생 호랑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사파리 차타고 호랑이 무리속 지나가…쇠꼬챙이에 끼운 먹이에 호랑이 ‘풀쩍’ 다가와

호림원은 호랑이들에게 야생훈련을 시킨다. 잠재된 야성을 일깨우기 위한 처방이다. 누렁소 한마리를 산 채로 서식지에 몰아 넣기도 하며 산 닭이나 오리를 공중에 던지기도 한다. 호림원은 이러한 훈련을 통해 달리는 속도, 사냥 기술과 추위극복 등 호랑이의 야생능력이 크게 향상됐다고 평가한다. 야생 호랑이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만주지역의 겨울에도 끄떡없다.
 

호림원에서 외부로 공개중인 호랑이는 100마리 정도다. 굵은 철망이 쳐진 사파리 차를 타고 호랑이 무리속을 지나가는데 섬뜩한 느낌이 든다. 차 안에서 날 고기 먹이를 사서 쇠꼬챙이에 끼워 철망틈으로 내밀면 호랑이가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풀쩍 몸을 세워 차에 기댄다. 이때 여행객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나오는데, 호랑이의 주둥이 앞에 고기 덩어리를 내밀면 호랑이가 먹이를 길고 커다란 혀로 낚아채면서 폭포수같이 침을 흘리는 장면을 생생히 볼 수 있다.
 

호랑이를 1~2m 정도 가까운 거리에서 훑어보면 우선 긴 몸통과 다리 굵기에 압도당한다. 온 몸에 가로로 난 굵은 검은 줄이 문신처럼 몸 전체를 휘감고 있는데 본능적으로 위축감이 든다. 만약 호랑이 눈을 마주치게 된다면 그대로 압도당할 수 밖에 없다. 호랑이 눈은 상대를 제압하는 신령스런 정기를 내뿜고 있다. ‘으르릉~’ 포효할 때는 눈에서 섬광이 번뜩인다.

호랑이의 이마는 검은줄로 ‘王’(왕)자를 그리고 있다. 마치 ‘백수의 왕’으로 태어난 운명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실제 한자 왕(王)자는 호랑이 이마 무늬에서 상형문자화했다고 한다.

호랑이의 최대무기는 이빨과 발톱이다. 이와 관련된 중국 문헌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호랑이의 발톱과 송곳니는 강철칼과 같이 예리하다. 길이는 9~15㎝ 정도된다. 사냥감을 잡아서 갈기갈기 찢을 때는 요리용칼과 같다. 이는 생존을 위한 강력한 무기이다. 호랑이는 강철봉과 같은 꼬리를 가지고 있다. 호랑이는 사냥을 할 때 관목속에 숨어있다가 소리없이 목표물에 접근한 뒤에 사냥감을 쳐서 넘어뜨린다. 그뒤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대의 목부분과 주둥이를 움켜쥔 뒤 힘으로 머리를 꺾어 놓는다. 혹은 날카로운 이빨로 상대의 목줄을 끊어놓는다. 보통 한번 물면 숨이 끊어진다. 혹은 목등뼈를 쳐부수어서 숨통을 끊는 방식을 쓴다.

덩치가 큰 소를 공격할 때는 등뒤쪽에서 후방 공격법을 쓴다. 소의 등을 잡고 평형을 유지한뒤 날카로운 이빨로 목덜미나 경추를 깨문 뒤 죽음을 기다리는 방식이다.

 

야생 호랑이의 주식은 멧돼지이다. 호랑이의 먹이중 멧돼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60%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말과 사슴은 25%정도이다. 호랑이 수컷은 18㎞행진때마다 한번씩 사냥을 하며 암컷은 12㎞때마다 사냥을 한다.

호랑이는 고양이과 동물로 장거리에는 약하다. 사냥을 할 때 단거리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고양이과 동물들은 몰래 다가가서 갑자기 공격하는 방식을 취한다.

호랑이는 전설중의 신과 같이 눈에서 정기가 나온다. 몸둘레도 두텁고 등과 앞발의 강인한 근육이 기복을 이루고 있다. 커다란 네 다리로 앞으로 나아갈 때 안정감이 있으며 수풀에서 미끄러지듯이 나와 송곳니와 갈고리 발톱을 사용해 공격한다. 5개의 발톱은 사용할 때 뻗어나오며 걸을 때는 칼을 칼집에 넣듯이 발톱이 안으로 들어간다.
 
중국의 과학자들은 숨진 동북호랑이를 해부했을 때 가장 뛰어난 스포츠 선수들의 근육보다 튼튼하며 근섬유가 질기고 근육속에서 지방질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강인한 골격에 강대한 근육이 붙어있으며 이런 신체구조에서 강력하고도 폭발력인 힘이 분출된다.


호랑이는 300만년 진화의 결과물…호랑이 평균 수명은 28살 전후로 단명

호랑이는 300만년 진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백두산 호랑이는 현존하는 체중이 가장 많이 나가는 고양이과 동물에 속한다. 그중에서 수컷의 몸이 가장 긴 것은 3m 정도된다. 꼬리의 길이는 약 1m이다. 체중은 350㎏. 어깨높이는 1m에 달한다. 지금까지 포획된 가장 큰 호랑이는 384㎏으로 러시아에서 잡혔다고 <소련포유동물>서적에 기록돼 있다. 인공사육된 호랑이는 465㎏으로 1986년에 측정이 됐다. 혼혈 호랑이는 540㎏도 있다.

체색은 여름에 짙은 갈색이고 겨울은 담황색이다. 등과 몸통의 측면에는 폭이 좁은 검은 색이 가로로 나 있다.

활동범위는 100㎢이상된다. 행동이 민첩하며 성질이 사납고 헤엄을 잘 친다. 나무도 잘 타며 순록, 양, 멧돼지 등 큰 포유동물을 먹이로 하고 또한 작은 포유동물과 새도 잡아먹는다. 사람을 해치는 이리와 늑대의 천적이다. 이런 면에서 사람들에게는 이로운 동물이다.  

호랑이는 고정된 장소가 없이 이리저리 이동한다. 매년 늦겨울과 초봄의 발정기에는 둥지를 틀고 암컷을 맞아들인다. 다음은 대부분 떠나는데 암컷이 호랑이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이며 기르는 임무를 맡게된다. 암컷의 임신기간은 100~105일이며 봄여름의 교차시점이나 여름에 새끼를 낳는다. 보통 2~4마리를 낳는데 신경이 날카로와 지며 먹이를 구하러 다닐 때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새끼를 감춰둔다. 돌아올 때는 원래의 간 길을 택하지 않고 바위를 타는식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새끼가 조금 자라면 어미 호랑이가 나갈 때 같이 데려가서 사냥 능력을 기른다. 1~2년 뒤에 새끼호랑이는 독립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호랑이는 4살이면 완전히 성숙한다. 호랑이가 백수의 왕이지만 백수(白壽)를 누릴 수는 없다. 호랑이의 수명은 보통 28년전후이다. 인공사육할 경우 30여살까지 살 수 있다.

호림원의 우두머리는 52호와 53호…호림원의 대미인(大美人)은 30여마리 새끼 낳아

호림원에는 백호(白虎)외에 미주 흑호랑이와 아프리가 흰사자, 벵갈호랑이, 흑표범, 스라소니, 치타, 라이거(사자와 호랑이의 교배종) 등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은 호랑이중 가장 우두머리인 52호와 53호가 사는 후왕취(虎王區)가 있다. 또한 털에 빛이 나고 청결한 위생을 좋아하며 항상 몸치장을 해서 호림원의 양귀비격인 ‘대미녀’(大美人)란 별명이 붙은 37호는 우수한 유전자로 9년동안 30여마리의 자손을 낳아 ‘어머니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다.

이곳에서 놓아 기르는 호랑이들은 7~8살된 장년들이다. 이들은 사냥감을 함께 공격하는데 사냥감은 한순간 해체돼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한다.

2살된 호랑이들은 유치원에 해당하는 유호원(幼虎園)에서 사육된다. 이들은 수중사냥의 명수들이다. 여름에는 사육사들이 매일 연못에 살아있는 오리를 던져넣는다. 이들은 오리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데 위험을 눈치 챈 오리들은 잠수로 몸을 숨긴다. 호랑이는 기다렸다가 오리가 떠오르면 제2차 공격을 하는데 이 과정이 몇차례 반복되다가 결국 오리는 새끼 호랑이의 입속에 들어가고 만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끼들은 야성적으로 성장해간다.
 

라이거(liger) 혹은 타이온(tion)은 호랑이와 사자의 교배종이다. 사자머리에 호랑이 몸뚱이를 갖고 있다. 몸 무늬의 색깔이 연하며 번식능력이 없다. 세계에서 10마리 정도로 희귀하다.
 

교배종을 만들려면 어린 호랑이와 어린 사자를 한 우리에서 키운다. 둘 사이는 어느덧 서로에 대한 애정이 생기며 교배로 이어진다. 라이거를 중국말로 스후서우(獅虎獸), 타이온을 후스서우(虎獅獸)라고 한다.

보행로를 따라서 걷다보면 1살~1살 반정도 된 아기 호랑이들의 재롱도 볼 수 있다.

한국의 백두산 호랑이 보존 대책 시급…북한의 백두산 호랑이와 ‘상호 교류’ 추진필요

동북 호림원(東北虎林園)은 세계 최대규모의 사육번식기지이다. 이곳은 동북호랑이의 거대한 유전자 창고가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은 일찌감치 멸종위기에 처한 동북 호랑이의 가치를 인식했으며 생태보호와 우성형질의 유전자 개량을 통한 번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다. 반면 한국의 백두산 호랑이 보존 대책은 중국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이미 백두산 호랑이와 동북 호랑이가 유전적으로 동일하다고 인정했다. 이와함께 한국은 2011년 10월 동북호림원에서 들여온 금강과 금송 한쌍을 2014년에는 경북 봉화군 백두대간 산자락에 방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뒤늦었지만 백두산 호랑이가 한국땅에서 야생을 시작하는 일로 반길만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백두산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애환을 함께 해온 신령스런 동물이다. 뒤늦었지만 동북호림원이 일군 보존과 번식이라는 장기적인 백두산 호랑이 복원사업계획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그간 중국과 러시아의 지도자들의 호의로 호랑이 한쌍씩을 기증받기도 했으나 국내 부적응과 미숙한 관리로 죽거나 번식에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러와 협력해 번식을 위한 호랑이의 개체수를 더 확보할 필요가 있다. 국내 동물원에는 현재 10마리 이내의 호랑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관상용으로도 미흡할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만약 북한에 백두산 호랑이가 발견되거나 존재한다면 ‘상호 교류’도 추진해 볼 만하다. 그래서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한국 호랑이 보유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백두산 호랑이의 기상을 심어줘야 한다.

이대로라면 이땅에 백두산 호랑이는 영원히 사라지고 중국의 ‘둥베이후’만 남을 것이다. 멸종위기 동물인 백두산 호랑이에 대해 한국도 ‘영유권’이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한국 호랑이의 보존과 존재 확대에 적극 힘써야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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