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 MBC 뉴스프로그램에서 일하다 계약이 일방 해지돼 부당해고를 다투는 보도국 작가 2명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싸움을 계속한다. 자신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지방노동위원회 결정은 작가에게 유리한 내용은 배제하고,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로 정할 수 있는 내용만 취사 선택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22일경 공개된 전 MBC 보도국 작가 A씨의 서울지노위 판정서를 보면 지노위는 ‘보도국 데스크 등의 지휘에 종속돼 일했다’는 A씨 주장을 기각했다. 작가와 다른 보도국 기자, PD 등의 관계를 “업무 위임에 따른 협력관계”라고 판단해서다.

앞서 서울지노위는 지난 11월 A씨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각하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므로 부당해고를 주장할 당사자 자격이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크게 9개 근거를 나열했다. △A씨는 ‘일반 직원 채용 절차’로 뽑히지 않았고 △근로계약서가 아닌 ‘업무위임계약서’를 썼으며 △위탁 업무별 보수가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MBC를 상대로 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한 작가 A씨.
▲지난 9월 MBC를 상대로 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한 작가 A씨.

또 △한 달 보수가 일정했지만 회당 보수를 합산한 금액이며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고 MBC 취업규칙 등을 적용받지 않은 데다 △‘직원 신분증’이 아닌 상시 출입증을 썼다고 제시했다.

A씨는 자신이 10년 간 계속 일한 사실과 매일 MBC에 출근해 차장·국장 기자의 구체적 지시를 받은 사실을 강조했다. 지노위는 △이 관계는 종속이 아닌 협력관계로 보이고 △오래 일했지만 계약서상 종료 가능성은 예정돼 있었고 겸직 금지 조항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MBC에 출근해 회사 비품을 쓴 데 대해 △저작권 문제로 기사정보시스템에 접속해야 하거나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 특성에 근거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는 지난 10월 또 다른 MBC 보도국 작가 B씨가 받은 판정서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A·B씨 모두 MBC 아침 뉴스 ‘뉴스투데이’에서 2010년부터 지난 6월 말까지 10년 연속 일했다. 계약 기간은 오는 31일까지였지만 지난 5월 말 ‘한 달 후 계약 해지한다’고 구두 통보받고 해지됐다. 이에 B씨는 지난 8월, A씨는 지난 9월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었고 모두 각하됐다.

A씨는 카카오톡, 메시지, 통화내용 등 업무 지시를 받은 근거 자료를 지노위에 제출했으나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 한 통화 녹취록을 보면 데스크는 “○○일보 기사를 먼저 배치하지 마시고요. ●●일보 것이 앞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일보 기사는 빼세요” 등의 지시를 내렸다. 또 다른 날의 녹취록을 보면 “부자 증세는 회사 논조와 관련 있어서 민감한 부분이니 해당 기사는 빼고 5번, 6번 아이템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지시했다. 이런 지시가 일상이었다는 A씨 주장에 지노위는 ‘협력관계’라고 선을 그었다.

▲작가 A씨가 서울지노위에 증거로 냈던 업무 지시 관계 근거 자료 중 일부.
▲작가 A씨가 서울지노위에 증거로 냈던 업무 지시 관계 근거 자료 중 일부.

A씨 판정서를 검토한 이용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부위원장)는 “업무 시간·장소의 구속성, 업무 지휘 상당성과 같은 노동자성 판단의 핵심 징표에 대해서는 업무상 특수성이란 이유로 배제하고 부차적 요소를 강조했다. 근로 실질이 아닌 계약서상 내용을 강조하는 식”이라고 분석했다. 또 “단절 없이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를 보는 근로 제공 계속성, 한 사업장에 전속돼 일했는지를 보는 전속성 등은 노동자에 유리한 징표인데 제대로 고려치 않거나 생략했다”며 “법리에 비춰 심각한 문제가 있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A·B씨 사건을 지원하는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의 원진주 지부장은 “노동자성을 부정한 근거인 채용 방식, 계약 형태, 4대 보험 미가입, 출입증 등은 MBC가 우월적 지위에서 일방으로 정할 수 있는 요소”라면서 “업무 지휘 감독 등 작가가 제출한 근로 실질에 대한 증거물들은 철저히 무시하고 협력 관계로 치부해버렸다”며 지노위 결정을 규탄했다.

A씨는 곧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예정이다. 한 달 전 판정서를 받은 B씨는 이미 이달 초 재심을 신청했다. 방송작가지부는 “피해 작가들과 함께 보도국 작가의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법적투쟁을 중단하지 않고 굳건히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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