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MBC 보도국 지휘 하에 매일 같은 시간 출·퇴근하며 10년을 일한 보도국 작가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모두 각하했다. 당사자들은 “방송계 ‘위장 프리랜서’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례 흐름조차 부정한 시대착오적 지노위”라고 규탄했다. 

서울지방노동위는 지난 10월21일과 11월23일, MBC '프리랜서' 보도국 작가였던 이아무개씨와 김아무개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각각 각하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볼 수 없어 부당해고를 따져 볼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이씨와 김씨는 매일 새벽 6시~7시40분 간 방영된 ‘뉴스투데이’에서 일부 코너를 맡아 10년 동안 일한 작가다. 그러다 지난 5월 말 ‘프로그램 개편으로 1달 후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듣고 6월 말 퇴사 처리됐다. 12월31일 계약 종료를 6개월이나 남긴 때였다. 

두 작가는 자신들이 10년 간 MBC 직원처럼 일했다고 주장했다. 업무 내용을 MBC 보도국이 정했고 관련한 결정권도 정규직 데스크가 가졌으며 데스크의 긴밀한 지휘·감독 아래 일했다는 입장이다. 생방송 뉴스였기에 이들은 매일 프로그램 시간에 맞춘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했다. 다른 제작진과 신속히 협업해야 해 매일 MBC 사옥 7층 사무실에서 일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2일 성명을 내 MBC 보도국 '뉴스투데이' 에서 일했던 작가 2명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각하한 서울지노위를 규탄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2일 성명을 내 MBC 보도국 '뉴스투데이' 에서 일했던 작가 2명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각하한 서울지노위를 규탄했다.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대법원 판례도 실질적인 업무 내용과 관계를 중시한다.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져 있었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했는지, 사회보장제도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았는지 등은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이런 기준으로 노동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94다22859)

판정서를 보면 서울지노위는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로 정할 수 있는 사항들을 근거로 썼다. “인사규정(취업규칙 등) 적용되지 않았고 별도 근태관리나 인사평가를 받지 않았으며, 기본급이나 고정급 없이 방송프로그램 단가로 보수가 책정됐다”는 등의 이유다. 이들의 입사 과정이 정규직 채용과 다르고 업무 위임 계약서(프리랜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이들이 매일 프로그램 시작 2시간 30분 전 출근해 프로그램이 끝날 때 퇴근했다는 사실은 “생방송 뉴스 특성에 따른 것”이라고만 일축했다. 사무실 출근 이유도 “다른 제작진과 긴밀히 협업할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들 주장은 기각했다. 대신 “외신 영상을 방송사 외부에서 볼 수 없었고 저작권 문제가 관련돼 있었다”는 회사 주장만 반영했다.

작가들은 업무 내용 결정권이 없었다. 어떤 아이템을 어떤 순서로 배치할지는 정규직 데스크가 결정했다. 마음대로 원고를 적어 납품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지노위는 이를 “PD(데스크)가 주도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협의를 하는 건 불가피하다”며 “아이템 선정 후 원고는 자율로 작성했다”고 해석했다. 

▲김아무개 작가가 '뉴스투데이' 코너를 맡았을 때 썼던 원고. 검은색 글씨는 데스크의 수정내용이다.
▲김아무개 작가가 '뉴스투데이' 코너를 맡았을 때 썼던 원고. 검은색 글씨는 데스크의 수정내용이다.

 

“서울지노위, 코미디 수준”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2일 성명을 내 “코미디 수준”이라고 지노위를 비판했다. 출·퇴근 시간 경우 “아침 생방송 특성상 작가들은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원고를 작성해 넘겨야만 한다”며 “그래야 방송사고가 생기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으며, 해고되지 않고 업무를 이어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작가 김씨는 수 년 전 부친이 사망한 날에도 업무를 보기 위해 회사에 출근해 일했다. 이씨도 지난해 5월 새벽 출근길 운전 중에 차를 폐차시킬 정도로 큰 사고를 입었지만 병원을 가지 않고 회사로 곧장 출근했다. 방송작가지부는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생방송 시간에 맞춰 출근해야 하는 작가의 처지가 왜 근태관리의 자유로움으로 둔갑되는가”라 물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의 이용우 변호사는 “(유사 판례를 보면) 출·퇴근 시간이 딱 고정되지 않더라도 업무 수행상 일정한 패턴을 보이면 근무시간에 구속을 받았다고 인정한다”면서 “노동자성 판단의 부차적 징표를 근로자가 아니라는 주요 근거로 삼는 등 법리오해로 일관해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밝혔다. 

‘원고를 자율적으로 썼다’는 지노위 판단엔 “학원 강사의 노동자성 판례를 예로 들면, 강사의 강의 기법이나 세부적 내용, 노하우 등을 학원이 정해줄 순 없다. 이처럼 작가들 경우도 MBC가 업무 내용과 범위를 정해준 것이지 원고를 어떻게 쓸지까지 회사가 세세하게 정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두 작가는 지노위 판정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다시 다퉈 볼 예정이다. 이씨는 2일 재심 신청서를 접수했다. 김씨는 이달 중순 지노위 판정서가 송부되면 재심을 신청한다. 김씨는 “지노위원들이 방송작가는 노동자로 인정된 사례가 없지 않으냐고 일관되게 물었는데 선례 여부가 사건의 핵심이냐”며 “‘우리가 결정하기 무거운 사안’이라는 등 책임자들이 판단을 방기하는 무책임한 태도도 보였다”고 비판했다.

방송작가지부는 “중노위는 작가들의 근로실질을 기준으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인지 명확히 판결해주길 기대한다”며 “향후 피해 작가들과 함께 보도국 작가의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법정투쟁을 중단하지 않고 굳건히 싸워나갈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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