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혐오감" "굉음 왜 넣나" 인상비평 압박
"검은색 혐오감" "굉음 왜 넣나" 인상비평 압박
'추적60분' 중징계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어떤 곳인가 …"형평성 잃은 잣대"

"휴메인 소사이어티 도축현장 사진부터 시작해서 정부관계자가 발언하거나, 한(승수) 총리가 담화를 하는데 왜 그렇게 큰 굉음이 들어가야 되는지 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손태규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부위원장)

"혹시 위원님 댁의 TV 볼륨을 너무 크게 해 놓고 보신 것은 아닙니까?"(정호식 MBC 전 시사교양국 국장)

2008년 7월 16일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를 방청하던 이들은 이 대목에서 배를 잡고 크게 웃었다. MBC 의 그해 4월 29일과 5월 13일 방송분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1·2편'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어겼다며 MBC 쪽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야당추천 위원 3명이 안건 상정 전에 퇴장하고 정부여당 추천 위원 6명만 남아 2시간 20분 동안 이뤄진 '의견진술'은 시종일관 고압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정부여당 추천위원들은 "불순하다"거나 심의규정에도 없는 질문으로 제작진을 몰아세웠다. 이에 MBC 쪽이 난감해하자 박명진 위원장은 "규정이 아니라 상식이고 윤리다"라고 거들기도 했다. 급기야 손 부위원장의 '굉음' 질문까지 나오자 정 국장이 '볼륨'으로 답한 것이다.

위원들의 고압적인 질문에 차분하게 응대하던 정 국장이 뼈 있는 우스개를 던지자, 기자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바로 정 국장이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위원들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뒤였다. 방송심의규정 9조3항 '방송은 제작기술 또는 편집기술 등을 이용하는 방법으로…사실을 오인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를 적용할 요량이었는지는 몰라도, 보수신문의 출입기자와 사무처 일각에서도 일부 위원의 '트집잡기'에 고개를 젓고 있던 참이었다.

▷"굉음은 왜 넣나"이어 "검은색 혐오감 준다"까지=그로부터 2년 반이 흐른 지난 5일 2기 방통심의위(위원장 이진강)가 내린 결정이 또 한 번 '쓴 웃음'을 주고 있다. 정부여당이 추천한 권혁부 위원은 이날 KBS 쪽에 "<추적60분> 방송 6일 만에 일어난 연평도 피격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나", "천안함 피격사건이나 격침사건이라는 일반적인 용어가 아닌 천안함사건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뭔가" 등을 물었다. 지난해 11월 1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천안함 의혹, 논란은 끝났나' 편에 대해 일반시민이 낸 민원과는 상관없는 질문이었다.

   
  ▲ 2008년 10월8일 YTN 박신윤 앵커가 검은색 옷차림으로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TV화면 촬영). 이치열 기자 truth710@  
 
방통심의위가 2008년 출범한 뒤 2011년 1월까지 1기와 2기를 거치면서 주목할 만한 의결과정은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인상비평, 둘째는 형평성 잃은 잣대 들이대기, 셋째는 제재수위 결정 후 조항 꿰맞추기다. 인상비평의 문제는 2008년 7월의 '위원님 댁의 TV볼륨'과 함께 그해 11월 26일의 '블랙투쟁' 의결이 대표적이다.

방통심의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같은 해 10월 8일 앵커, 기자, 기상캐스터가 검은색 의상, 넥타이, 리본 등을 착용한 채 방송된 YTN 뉴스 프로그램에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의결했다. 법정제재 가운데 '주의'와 '경고'를 넘는 최고 수준의 제재다. 엄주웅, 이윤덕, 백미숙 등 3명의 야당추천 위원들은 검은 옷차림으로 방송에 나선 앵커와 기자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퇴장했고, 정부여당 추천위원들만 남아 내린 결정이었다.

이 자리에서 박천일 위원은 "YTN 뉴스를 보는데 기상캐스터가 쾌청한 날씨를 보도하면서 검은 옷을 입고 있어 황당했다. 요즘 비 오면 비옷을 입지 않나"라고 말했는가 하면, 박정호 위원은 "혐오감을 준다"고도 했다. 결국 이는 방송심의규정 27조(품위 유지)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여야 하며, 시청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조항에 저촉됐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정부여당 반감 사면 중징계, 반대는 솜방망이?=하지만 이 '판례'가 타 방송사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 의결 직후 방통심의위 방송제1분과특별위원회는 SBS·MBC 기자·아나운서들의 검은색 옷차림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방송심의소위에 건의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심석태)가 지난 2008년 10월30일 'YTN과 공정방송을 생각하는 날'을 맞아 '블랙투쟁'을 벌였다. 사진은 '8뉴스' 신동욱, 김소원 앵커와 보도를 맡은 기자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화면. ⓒSBS  
 
이들은 그해 10월 30일과 11월 20일 'YTN과 공정방송을 생각하는 날'을 맞아 검은색 옷차림으로 방송에 나섰으나, 위원회는 이들이 당시 출연했던 프로그램을 제재하지 않았다. 방통심의위의 '잣대'가 널을 뛴 사례들이다. 방통심의위는 어느 선까지 검은색 옷차림을 하면 '혐오감'을 유발하고 시청자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인지 2011년 1월까지도 그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기 위원회와 2기 위원회의 '잣대'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2008년 11월 1기 위원회는 27조 외에 9조(공정성)4항 '방송은 당해 사업자 또는 그 종사자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는 사안에 대하여 일방의 주장을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를 오도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을 적용해 '블랙투쟁'을 제재했지만, 2010년 9월 29일 2기 위원회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7월 4일 KBS가 방송 송출 도중 '노조 불법파업' 흘림자막(스크롤)을 내보낸 데 대해 2기 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권고'를 의결했다. '권고'는 행정지도 성격으로 방송사 재허가 심사 때 감점요인으로 작용하는 법정제재가 아니다. 특히 이날 의견진술 과정에서 '당시 자막을 파업이 아닌 불법파업으로 내보낸 게 적절했느냐.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위원들의 질문에 KBS 쪽은 "타당했다. 편성국장으로서 동일하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 MBC '뉴스데스크'에서 검은 옷을 입고 진행하는 박혜진 아나운서(TV화면 촬영). 이치열 기자 truth710@  
   
  ▲ MBC '뉴스데스크'에서 검은 옷을 입고 진행하는 박은지 기상캐스터(TV화면 촬영). 이치열 기자 truth710@  
 
KBS 쪽이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 법정제재까지는 내리지 않으려던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의 의도가 엿보인 질문이었는데, 오히려 KBS 쪽이 불을 댕긴 것이다. 이 위원장이 "나도 (법정제재가 아닌) '의견제시'로 생각하고 왔는데 하는 얘기 들어보니까 '일방적 주장을 전했다'는 구성요건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정부여당 추천위원들의 '엄호' 속에 9조4항이 적용되면서도 행정지도인 '권고'에 그쳤다.

▷위원회 존립 위협하는 것은 위원회 자신=2기 위원회가 그래도 1기 위원회보다 낫다는 평가도 있다. 1기 위원회는 2008년 7월 16일 에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의결할 때 박 위원장 등 6명의 위원이 비공개 간담회를 통해 결론을 내렸다. 회의록도 남기지 않았다. 야당추천 위원들이 비공개 회의와 회의록을 남기지 않는 것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는 방통위 설치법 22조(방통심의위 회의 등) 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지만, 이마저도 무시했다. 2기 위원회는 적어도 이런 면에서는 1기와 달랐다.

하지만 제재 수위를 의결 하고 난 뒤 심의규정 어느 조항에 위배되는 지 꿰맞추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5일 <추적60분> 의결 당시에도 "'법정제재'가 불가피하다", "법정제재는 해도 최소 수준에서 그치자"는 말이 위원 사이에 오간 선에서 제재 수위를 결정했다. 의결에 이르러서야 사무처 실무진이 위배된 조항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일은 이날에도 반복됐다. 구체적으로 방송 내용과 적용 조항의 상관관계를 뚜렷하게 제시한 위원은 전용진 부위원장과 엄주웅 상임위원 정도였다.

그래서 제작진 '의견진술'이나 위원 간 논의 과정에서 제재 여부나 수위가 바뀐다기보다, 이미 작심한 대로 결론난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기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내용을 방송하면 중징계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솜방망이로 대응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합의제 독립기구를 표방하는 방통심의위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은 외부의 비판세력이 아니라 위원회 자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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