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가 최근 SBS·MBC 일부 아나운서 쪽에 검은색 옷차림으로 방송에 나선 이유를 물어본 것은 야당 추천위원이 YTN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SBS·MBC 아나운서들을 제재하는 전 단계로 출석·서면 진술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YTN 때와 달리 이들의 옷차림에는 문제가 없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자 내부 모순을 드러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방통심의위 보도분야 자문을 맡고 있는 방송제1분과특별위원회는 최근 회의를 열어 SBS·MBC 아나운서들의 검은색 옷차림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방송심의소위에 건의했다. 이 민원은 YTN 제재를 반대한 한 야당 추천 방통심의위원이 직접 제기한 것으로, 방송사 아나운서나 기자들이 검은색 옷차림을 할 때마다 이를 제재할 것인지를 따져보기 위해서였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심석태)가 지난해 10월30일 'YTN과 공정방송을 생각하는 날'을 맞아 '블랙투쟁'을 벌였다. 사진은 <8뉴스> 신동욱, 김소원 앵커와 보도를 맡은 기자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화면. ⓒSBS  
 
   
  ▲ 9일 MBC 9시 뉴스데스크에서 검은 옷을 입고 진행하는 박혜진 아나운서. (TV화면 촬영) 이치열 기자 truth710@  
 
   
  ▲ 9일 MBC 뉴스데스크 날씨예보에서 검은 옷을 입고 진행하는 박은지 기상캐스터. (TV화면 촬영)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러나 특위는 YTN 때와 달리 '문제없음'으로 건의했다. 특히 'YTN 블랙투쟁에 동조한 것이 아니다'라는 SBS·MBC 회사 쪽 의견이 방송심의소위에 접수된 뒤 일이 커졌다. 이들 회사 쪽 의견에 따라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처리한다면, YTN '의견진술' 당시 회사 쪽 간부의 징계를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참고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의결한 것과 형평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검은색 옷차림으로 방송에 나선 SBS·MBC 아나운서·앵커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자는 야당 추천위원들의 의견이 나와 진술요구서가 각 회사 쪽에 발송된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오늘(9일)까지 의견을 진술하라고 요구했지만, 오늘 오전 현재까지 접수된 진술서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들의 의견진술서가 없어 회사 쪽 진술대로 SBS·MBC를 제재하지 않는다면, 방통심의위의 심의에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26일 YTN 제재 당시 방통심의위는 방송심의규정 제7조(방송의 공적책임)와 9조(공정성) 외에도 27조(품위 유지) 조항에 위배됐다고 발표했다.

YTN 앵커·기자들이 자사 문제를 옷차림을 통해 알렸기에 공정성 조항에 저촉된다고 해석한다 해도, 방통심의위 '판례'에 따르자면 집단적으로 검은색 옷차림을 한 SBS·MBC 아나운서들도 27조 조항을 비켜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27조는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여야 하며 시청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으로, YTN 제재 당시 이에 찬성한 한 위원은 "혐오감을 준다"고 말한 바 있다. 방통심의위는 어느 선까지 검은색 옷차림을 하면 위원의 '혐오감'을 유발하고 시청자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인지 판단 내린 바 없다.

   
  ▲ 지난해 10월8일 YTN 박신윤 앵커가 검은색 옷차림으로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아울러 SBS·MBC 아나운서 쪽에 검은색 옷차림의 이유를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30일과 11월20일 'YTN과 공정방송을 생각하는 날'을 맞아 검은색 옷차림으로 방송에 나섰으며, YTN '블랙투쟁'을 지지하는 차원이었다는 것은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본부장 심석태)의 인터뷰 등 일련의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은 YTN 제재 당시 여당 추천위원들의 논리와 일치하는 것으로, 'YTN 노조 쪽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는 야당 추천위원들의 의견은 '이미 다 알려진 것 아니냐'는 여당 추천위원들의 거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심의규정 27조 등을 들어 YTN은 제재해놓고 SBS·MBC는 제재하지 않는다면 자의적인 규정 적용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10월8일 YTN 앵커와 기자들은 이틀 전 내려진 회사 쪽 징계에 항의하는 의미로 검은색 옷차림으로 방송에 나섰으며, 방통심의위는 같은 해 11월26일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를 의결했다. 뉴스보도프로그램에서 앵커나 기자의 옷차림이 문제가 되거나, 일반 프로그램에서 선정적인 이유 외에 출연자의 옷차림이 문제가 돼 법정제재가 결정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다.

   
  ▲ 지난해 12월23일부터 27일까지의 MBC <뉴스데스크> 미디어관계법 관련보도. ⓒMBC  
 
한편 방송제1분과특위는 8일 회의를 열어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의 MBC <뉴스데스크> 미디어관계법 관련보도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 9명의 위원 가운데 '주의' 이상의 법정 제재를 요구한 위원이 3명, 이에 반대한 위원이 3명이어서 다음 회의에 이를 재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9명으로 구성된 특위 위원의 면면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신문-방송 겸영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관계법 관련보도를 다루는 위원 9명 가운데 신문사에 몸담고 있는 위원이 위원장 포함 3명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해 6월 방통심의위가 위촉했으며, 임기는 1년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