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는 결국 제 목에 '방울'을 달지 못했다. 방통심의위는 30일 오후 13차 전체회의를 열어 엄주웅 상임위원이 올린 '제11차 방통심의위 회의 및 심의결정의 적법성과 효력에 관한 질의회신 요청 안건' 수정안을 부결시켰다.

   
  ▲ 박명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안건은 지난 16일 중징계와 관련된 것으로 당시 박 위원장 등 6명의 위원이 제작진 의견청취 뒤 4시간 넘게 취한 간담회 형식과 녹취록·회의록 부재에 대한 법적 타당성을 권위 있는 외부기관에 묻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6인 논의'가 회의 비공개와 회의록을 남기지 않는 것에 대해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는 방통위 설치법 22조(방통심의위 회의 등) 2항, 방통심의위 회의 등에 관한 규칙 제3조(회의 공개)와 제6조(회의록 작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논란은 심의안건에 대한 제재조치를 정식 회의가 아닌 간담회에서 결정했다는 것이다.

   
  ▲ 제11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  
 
이 안건에 대해 30일 엄 위원과 이윤덕 위원, 백미숙 위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국민권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또는 복수의 법무법인에 의뢰하자는 입장을 밝혔으나 의안 상정부터 진통을 겪었다. 박명진 위원장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 불참한 위원 3인 중 2인이 '의안 성립이 안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규정에 어긋난 발언으로, 위원 3인 이상이 발의하면 의안은 자동으로 성립된다.

우여곡절 끝에 의안이 상정됐으나, 지난 16일 간담회에서 회의록도 남기지 않고 제재를 논의한 위원들은 의안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백미숙 위원이 "공개 비공개는 정할 수 있으나 비공개로 해도 회의록은 남겨야 한다"며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면서 왜 회의록 작성은 안 했나"라고 물었다. 이윤덕 위원도 "밀실협의고 불법적이라 판단하고 있지만 우리 판단이 잘못됐을 수도 있기에 외부에 묻자는 것 아닌가"라며 엄 위원을 지원 사격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우리 스스로 일을 저질러 놓고 적법성 문제를 외부에 묻는다면 그것 하다가 세월을 다 보낸다. 우리 스스로 겸손할 수도 있지만 우리 능력 없다고 공포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박천일 위원도 "'간담회 모드로 하겠다'는 말은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였는데, 말꼬리를 붙잡는 것"이라며 "보다 더 공정하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비공개로 하는 게 낫겠다 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위원 역시 "절차에 문제가 생기면 결과에도 문제가 생겨 따로 질의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외부 질의 자체가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 제11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  
 
   
  ▲ 제11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  
 
반면 엄 위원은 "우리가 감독관청이 있나, 감사원 감사를 받나. 완전 독립적인 합의제 위원회다. 우리는 헌법 위에 있나"라며 "알아보고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고치고 앞으로 잘하면 되는 것인데 왜 두려워 하나"라고 반박했다. 공방 끝에 엄 위원은 심의결정의 적법성에 대한 부분을 삭제하고 전체회의 일부 진행이 적법하게 진행됐는지 여부만 묻겠다는 수정안을 재차 올렸다.

하지만 표결 결론은 3대 3, 수정안은 올릴 필요가 없었다. 엄 위원은 부결 직후 발언에서 "사소한 성찰 부분도 결정을 못해 대단히 안타깝다. 이런 사례가 또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을 주는 결정이기에 앞으로 비공개 사례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은 비공개회의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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