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집단적 오보는 실수가 아니라 나쁜 습성이다
집단적 오보는 실수가 아니라 나쁜 습성이다
[민실위보고서]

히딩크 감독이 말했단다, 축구를 해야지 왜 야구를 하냐고. 아르헨티나 전 패배가 못내 아쉬웠던 많은 사람들은 고개 끄덕이며 기사를 클릭했다.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 축구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 전 패인을 지적하며 한국 대표팀에 쓴소리를 했다는 이 기사는 국내 방송과 신문,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화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오보였다.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을 언론사 수십 곳이 베끼고, 베낀 것을 또 베꼈다. 이렇게 언론이 사실관계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다른 언론을 베끼면 집단적 오보 사태가 일어난다. 집단적 오보는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키므로 해악이다. 한 언론의 오보는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집단적 오보는 실수가 아닌 나쁜 습성에서 비롯된다.

지난 5월20일 천안함 침몰 사건의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파편 정도 기대했던 사람들 눈앞에 ‘결정적 증거’라 명명된 둔중한 어뢰 추진체가 놓여졌다. 조사단은 과학으로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조사단이 내놓은 과학적 근거가 얼핏 많아 보이지만, 사실 천안함 함체와 어뢰 잔해에서 동일한 폭약 성분이 검출됐다는 것 말고는 마땅히 없다. 나머지는 대부분 정보에 대한 판단이요, 가설을 뒷받침하는 참고용 실험이었다. 그래서인지 언론도 ‘폭약 성분이 나왔다’ ‘함체와 어뢰의 흡착물질 성분이 동일하다’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집단적 오보다.

조사단이 내놓은 자료와 설명을 그대로 옮겼으므로 ‘히딩크 오보’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폭약 성분은 함체에서만 발견되었다. 그것도 해저에 남아 있다 묻은 것인지, 어느 나라 것인지조차 특정할 수 없으므로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함체와 어뢰 잔해에서 동일한 물질이 나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모래와 소금 등 해저 물질 말고 다른 물질이 나왔다면 말이다. 결론은? 의미를 둘만한 동일한 물질이 없었다. 그런데 언론은 조사단의 설명을 그대로 믿고 어뢰와 함체에 묻은 ‘하얀색 물질’을 엄청나게 중요한 물질인 것으로 보도했다. 정작 조사단은 이제와 말을 바꾸었는데도 언론은 창피해서 그런지 입을 꾹 다물고 있다(미디어오늘 6월17일자 “ 합조단 발표, 치명적 오류 드러났다” 참조).

최근 한 유력 신문 사설 제목은 ‘도덕성에 이어 전문성도 낙제점 받은 참여연대’였다.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천안함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한을 보낸 것을 맹렬히 비난하는 내용이다. 이 신문은 장문의 기사를 통해 참여연대의 의문 제기 내용을 괴담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문을 괴담이라 하면서 끌어댄 논리 중에는 안타깝게도 이미 조사단마저 번복한 ‘비과학적 실험 결과’도 포함돼 있다. 여전히 어뢰와 함체에 묻어 있는 ‘하얀색 물질’을 증거로서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복잡한 얘기를 잠깐 걸치자면, 6월11일 조사단은 국회에서 ‘기존 실험에서 못찾았던 결정화된 알루미늄 산화물을 재실험을 통해 찾았다’며 기존 실험 결과의 오류를 인정했다.

‘폭발력을 높이기 위해 들어가는 알루미늄이 모두 산화되어 결정질은 남지 않고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만 남는다’던 기존 입장도 철회했다. 이렇듯 문제의 ‘하얀색 물질’을 본격적으로 의심해 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이러한 의심을 괴담이라 할 수 있는가? 또한, 없다던 TOD 영상이 나오고, 정말 없다던 TOD 영상이 또 나오는 상황에서 이젠 정말 없냐고 하는 의문은 시민단체보다 언론이 가져야 할 당연한 의문 아닌가? 이 신문은 조사단의 발표, 감사원의 발표에 감히 ‘증명된 사실’이라고 명명했다. 위에 언급한 사설 한 대목을 패러디 하자면 ‘이들에게 할 말이라곤 당신 자신을 알라’는 것밖에 없다.

히딩크 감독이 언론 문제에도 일가견이 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취재를 해야지 왜 베껴?”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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